다가오는 맥주축제의 계절을 맞이하며, 메르첸에 대하여
메르첸의 역사
앞의 기사에서 설명했듯 메르첸은 옥토버페스트 기간에 주로 소비되는 맥주다. 현대에 와선 굳이 3월에 만들어 10월까지 묵힐 필요는 없고 실제로도 옥토버페스트를 기념하기 위해 9월이 다가올 때를 맞춰 양조 되기에 메르첸(독일어로 3월이란 의미)이라 부르기엔 이젠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긴 하나 최근엔 그 어원의 의미는 그다지 중요치 않게 여기기에 그냥 ‘메르첸=다소 도수가 높고 몰티한 독일식 앰버 라거’ 정도로 인지하면 될 것 같다. 마치 포터(Porter)가 더 이상 짐꾼이랑 아무 연관이 없는 것과 비슷하달까.
태초의 메르첸은 옥토버페스트에 소비되는 맥주였던 만큼 옥토버페스트 참가가 허락됐던 뮌헨의 6대 양조장-스파텐(Spaten), 뢰벤브로이(Lowenbrau), 아우구스티너(Augustiner-Brau), 호프브로이(Hofbrau), 파울라너(Paulaner), 하커-프쇼르(Hacker-Pschorr)-에 의해서만 양조 되었으나 최근엔 다른 독일의 양조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독일에 있지도 않은 사무엘 아담스(Samuel Adams) 등의 미국이나 여타 국가의 양조장들도 옥토버페스트 시즌을 기념하여 메르첸을 만들곤 한다. 아울러 태초의 메르첸은 보리 건조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 실정에 맞게 검은색에 가까웠으나 1872년부터 짙은 구리색으로 색이 조금 옅게 바뀌었으며 20세기에 이르러선 한층 더 밝아져 현재의 구리색과 황금색의 중간 정도 같은, 호박색을 띠게 되었다.
메르첸의 ABV
메르첸의 가장 큰 특징은 ABV이다. 5.8~6.3%로 사실 5.0% 내외의 일반적인 독일 라거들과 그렇게 큰 차이는 없으며 막상 마셔 봐도 뭐가 다른지 정확히 판별해내긴 쉽지 않을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가량 높은 ABV가 메르첸의 정체성으로 꼽히는 이유는 탄생 배경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메르첸은 라거 양조가 가능한 날씨인 3월에 양조 되어 다시 양조 가능한 날씨가 돌아오는 10월까지 여름을 버텨야 하는 맥주였기에 보존성이 가장 중요시되었다. 당시 보관 도중 맥주를 망치는 가장 주된 원인은 야생의 잡균들에 의한 오염이었으며 이러한 균들을 막기 위해선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방법이 효과적이었다(어지간한 균들은 알코올이 존재하는 환경에선 생존하기 힘들다. 손 소독제나 살균용으로 쓰는 소주를 떠올려보자). 때문에 메르첸은 다른 라거에 비해
ABV가 높게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전통은 보관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메르첸의 특징으로써 상징화된 덕에 최근 나오는 메르첸들도 1~2% 정도 높은 ABV를 지니고 있다.
메르첸의 풍미
메르첸은 당연하게도 독일의 맥주순수령에 준하여 만들어진 맥주이기에 몰트, 홉, 효모, 물 이외의 다른 재료는 사용하지 않아 그 캐릭터가 여타 독일의 라거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나름의 개성은 가지고 있다. 메르첸은 그 색에서 추측해 볼 수 있듯 구수하고 그레이니(Grainy)한 캐릭터를 띄나 달진 않고 오히려 다소 드라이하다. 또한 홉의 캐릭터도 조금 더 눈에 띄어 비터는 강하지 않지만 허브나 꽃과 같은 독일 노블 홉(Noble Hop)의 캐릭터는 잘 느껴지는 맥주다. 결과적으로 메르첸은 ABV로 인해 바디감도 조금 더 높은 데다 몰트와 홉 캐릭터까지 풍부한, 통상의 독일 라거에 비해 약간(정말 약간) 중후한 라거라 보면 쉽게 와 닿을 것이다.
노블 홉
좀 뜬금없단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왕 노블 홉에 대해 언급했으니 혹시나 호기심을 느끼실 분들을 위해 한번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노블 홉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최근 우리나라 맥주 대기업들의 광고 문구 등에서 자주 들어는 봤을 것이다. 노블 홉은 이름 그대로 귀족(Noble)과 같은 취급을 받아 온 홉을 나타내는데 오직 독일의 세 지역-테트낭(Tettnang), 할러타우(Hallertau), 스플라터 (Spalter)-과 체코의 자텍(Žatec) 지방에서만 수확된 홉들-각 지 역의 이름을 따 테트낭(Tettnanger), 할러타우(Hallertauer), 스플라트(Spalt), 그리고 자텍 지역에서 자란 사츠(Saaz)-만이 노블 홉으로써의 호칭을 부여받는다. 이들은 알파산의 함량은 낮아 쓴맛은 덜 주지만 그 특유의 향-공통으로 약간의 스파이시함과 꽃(Floral), 허브와 같은 캐릭터-이 풍부하단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유럽의 다른 홉들과는 달리 굳이 ‘노블’이라는 칭호로 분리되어 취급됐다. 앞서 언급한 메르첸 뿐 아니라 많은 필스너, 둔켈 등의 독일 맥주에 자주 사용되다 보니 독일식을 표방하는 우리나라 대기업 맥주들에도 이에 따라 노블 홉을 사용하곤 한다.
여기까지 메르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몇 가지 곁다리 지식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메르첸이 최근 맥주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스타일도 아님에도 자세히 설명을 한 이유는 일단 앞으로 옥토버페스트 시즌을 맞아 곧 만나볼 수도 있으리란 것, 또 메르첸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음에도 독일의 라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같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점 때문에 이렇게 얘기를 해 보았다. 필자도 재작년 옥토버페스트를 다녀온 이후로 오랜 기간 메르첸을 다시 접해보지 못했기에 올해 가을엔 메르첸들을 우리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