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하우스 오브 카드>, 그리고 ‘스텔라’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를 마시며
그러니 나는 글을 쓰는 지금도, 한 마리의 나비처럼 맥주잔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부드러운 거품 속에 부끄럽게 숨어있는 이 황금빛 스텔라를 봄꽃처럼 맛볼 수밖에 없다. 영화나 틀어두고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일요일이라면 더더군다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맥주다.
그러니까, 운 좋게도 이 맥주에 대해서 써보려 마음먹은 것은 영화 <버드맨>(원제는 <버드맨 혹은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 Birdman Or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을 보기 전이었다. ‘배트맨’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저 익살스러운 제목은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다섯 번째 장편 영화다. 굳이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개 같은 사랑’이라 옮길 수 있는 그의 첫 영화 <아모레스 페로스>때부터 팬이 되기 시작하여, 이후 그를 거장 반열에 오르게 해준 <21그램>, <바벨>, <비우티풀>과 다수의 단편들을 격하게 아꼈던 나로서는 그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호주 촌구석에서 옥수수를 까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고 있었으니, <버드맨>의 활약과 수상소식은 그저 먼 나라의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여러 도시를 거쳐 멜버른에 정착한 이후에야 그동안 미뤄둔 영화와 맥주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스텔라를 마시지 않았다면, 이러한 장면을 눈여겨 보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이 맥주는 누가 선택한 것일까. 알레한드로 감독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주인공인 리건 역할을 맡은 마이클 키튼(그는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 시리즈의 배트맨이다)이 좋아하는 맥주였을까. 어쩌면, 이 극중극 형식을 담고 있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소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의 작가인 레이먼드 카버가 즐겨 마신 맥주일지도.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들은 진과 토닉을 섞어 마시고 있다. ‘진과 토닉 워터가 오고 갔고, 우리는 어쩌다 보니 사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The gin and tonic water kept going around, and we somehow got on the subject of love.’ 그가 사랑을 얘기할 때 술을 빼놓을 수 없었듯 우리가 레이먼드 카버에 대해 말할 때도 술을 빼 먹을 수는 없다. 그가 한때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하긴, 모든 소설의 주인공이 작가를 투영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 해도 연극 무대 뒤의 대기실에서 전처와 함께 딸에 대한 토론을 나누며, 답답한 공간에서의 유일한 일탈인 마냥 벌컥벌컥 마셔대는 그 맥주가 바로 스텔라 아르투아라는 건 내게는 이상하리만치 특별하게 다가왔다. 왜 기자들은 감독에게 이런 질문은 하지 않는 건가? 궁금한 건 나만의 몫인가? 아카데미에서 그렇게나 많은 상을, 그것도 최근 2년 연속 감독상(<버드맨>, <레버넌트>)을 탄 감독인데 쿨하게 답하지 않겠는가.
당신이 즐겨 마시는 맥주는 뭔가요? 왜 코로나(멕시코의 대표 맥주)가 아닌 스텔라 아르투아였던 건가요?
미국의 정치계를 기반으로 구성한 <하우스 오브 카드 House of card>(연출 데이비드 핀처)는 미국의 상원의원인 프랜시스(케빈 스페이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모와 그를 헤치려는 자들 간의 갈등을 속도감 있게 펼쳐낸 드라마다. 카드로 만든 집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답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드라마는 어찌 되었건 새로운 시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극적이고 신선한 소재를 얻어내기 위해 성 상납도 불사하던 여기자 조이 반스(케이트 마라)는 프랜시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를 파헤치던 남자친구 루카스(세바스찬 아셀러스)의 사무실로 이전 워싱턴 헤럴드 편집장이었던 톰 헤머슈미츠(보리스 맥기버)가 찾아온다.
“어이 루카스, 네 심정은 알겠지만 조이가 죽은 이후에 너 폐인 같아. 맥주나 한잔 하지그래? 스텔라 아르투아 좋아하지?”
나는 왜 이렇게 집착적으로 스텔라 아르투아를 찾아다니고 있는 걸까. 그건 아마도 내가 찾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지게끔 하여놓은 디자인 탓이 클 것이다. 1926년 크리스마스 시즌 맥주로 기획되어 출시된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는 별이라는 뜻을 가진 세례명인 스텔라와 양조장을 설립한 세바스티안 아르투아의 이름이 모여 만들어졌다. 벨기에의 뤼뱅(Leuven) 지방에 설립된 양조장은 자그마치 650년 전인 1366년이었기에 자랑스럽게 그해의 연도를 라벨에 찍어내고 있다. 체코 스타일의 라거 필스너를 벤치마킹했지만 옥수수가 첨가되어 보다 고소하고도 달콤한 향을 선사한다. 청량감이 좋아 목이 타는 상황에는 더없이 일품이다. 배우나 기자는 늘 목이 타고, 그래서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스텔라로 소품을 활용했는지도 모른다. 거품은 혀 앞쪽에서 풍성하게 터져 이름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음식 맛에 눌리지 않는 거친 질감이 입속에 한참이나 머무르기도 한다. 굳이 어울리는 안주를 찾으라면, 나는 올리브를 권하겠지만, 에일보다는 가볍기에 간장이나 고추장을 양념으로 한 한국 음식들과도 조화롭게 마실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이 맥주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까닭은 병에 붙여진 붉은 라벨의 디자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블릿 잔 형태의 전용 잔은 림 부분이 금테로 둘러져 보다 고상하게 거품을 가둬낸다. 손잡이는 별의 문양이 찍혀있지만, 맥주를 가득 따르고 눈앞에 두게 되면 튤립 한 송이가 활짝 피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나는 글을 쓰는 지금도, 한 마리의 나비처럼 맥주잔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부드러운 거품 속에 부끄럽게 숨어있는 이 황금빛 스텔라를 봄꽃처럼 맛볼 수밖에 없다. 영화나 틀어두고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일요일이라면 더더군다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감독들도 어쩔 수 없이 소품으로 활용한 것일까. 배우들도 어쩔 수 없이 마셔버린 맥주일까.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맥주다.
EDITOR_오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