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맛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든 맥주들
하루를 정리하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맥주를 즐기듯,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맥주를 즐긴다. 그래서일까. 작품 속에서 맥주는 빼놓을 수 없는 소품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결정적 열쇠가 되기도 한다. 여기,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든 맥주들을 소개한다.
# Episode 1.
해리포터 시리즈 (2001~2011)
"해리는 잔을 들어 쭉 들이켰다.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었다. 그걸 마시자 온몸에 따뜻한 온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上, p.262
전 세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시리즈물 ‘해리포터’에는 매우 특별한 맥주가 등장한다. '버터맥주'란 이름이 붙은 무알코올 음료다. 해리포터 세계를 테마파크로 구현해 낸 유니버셜 스튜디오나, 런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면 이 버터맥주를 실제로 마셔볼 수 있다. 진득한 캐러멜 맛이 나는 탄산음료인데 진짜 맥주처럼 거품도 듬뿍 얹어져 있다고. 아. 우리나라에서도 버터맥주를 맛볼 수 있다. 따뜻한 우유에 시럽과 버터를 넣어 버터맥주란 이름으로 판매하는 카페도 있고, 맥주 위에 생크림을 얹은 레시피를 내놓은 펍도 있다.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 Episode 2.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2015)
전설적인 베테랑 스파이 해리(콜린 퍼스)는 백수 청년 에그시(태런 애거튼)를 킹스맨으로 영입하기 위해 런던의 한 펍에서 대화를 나눈다. 해리의 앞엔 기네스 한 잔이 놓여 있다.
동네 양아치들이 시비를 걸자, 기네스를 마시는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은(?) 해리는 멋지게 술집 문을 걸어 잠그고 본때를 보여준다.
"이봐 젊은이들. 내가 기분이 별로라서 말이야. 에그시가 맞을 짓을 한 건 틀림 없겠지만, 조용히 가주면 정말 고맙겠네. 난 이 멋진 기네스를 마저 마셔야 하니까."
라고 점잖게 말하는 해리의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술꾼이라면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보다 이 대사에 더 찬사를 보냈을지 모른다.
# Episode 3.
007 스카이폴 (2012), 007 스펙터 (2015)
스파이의 대명사 '007 제임스 본드'는 마티니를 즐겨 마신다.
이건 이안 플레밍의 007 원작 소설 설정이었기 때문. 그래서 관객들은 작품마다 보드카 마티니를 즐겨 마시는 본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본드의 대사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는 영화 킹스맨에서도 오마주 될 만큼 아주 유명하다. 그런 본드가 격식 없는 자리에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바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맥주 하이네켄. 좀처럼 음료 PPL을 허용하지 않는 007 시리즈였기에, 하이네켄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정이었는지 다양한 한정판 제품을 내놨다. 샴페인 병 디자인을 모티브로 고급스럽게 제작된 1ℓ 용량 '제임스 본드 에디션(James Bond Edition)'을 한정 제작하는가 하면, 브랜드를 상징하는 빨간 별을 배경으로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007 스펙터' 개봉 기념 패키지도 출시했다. 본드의 오랜 팬들은 눈물을 흘리겠지만, 이러다 다음 작품에선 "하이네켄, 따르지 말고 캔째로" 같은 대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 Episode 4.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2015)
시리즈 내내 코로나 맥주는 도미닉(빈 디젤)의 '소울 푸드'마냥 끊임없이 등장한다. 경찰에 쫓기던 도미닉은 도망간 동료들과 다르게 자신을 도와준 브라이언(폴 워커)을 집으로 들이고, 코로나 맥주를 권한다. 도미닉의 집에서 벌어지는 치킨 파티에도 코로나가 빠지지 않는다. 도미닉은 적진에 들어가서도 코로나를 주문한다. 또 동료들과의 파티에서도 코로나가 준비돼 있다. 분노의 질주 7편에서도 마찬가지.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는 도미닉에게 "수도사들 술 참 잘 빚는다"며 자신이 즐기는 벨지안 에일을 권하지만, 도미닉은 어김없이 "난 코로나 스타일"이라며 거절한다. 미스터 노바디는 생명이 위급한 순간에서도 "벨지안 에일 꼭 마셔보라"며 능청스럽게 웃음을 선사한다. 자, 영화를 다 보고 난 당신의 선택은 벨지안 에일 쪽인지 코로나인지?
# Episode 5.
괴물 (2006)
주인공 강두(송강호) 가족은 햇살 가득한 평화로운 한강 공원에서 매점을 운영한다. PPL을 진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설정이다. 강두는 영화 초반 거의 모든 장면에서 하이트 맥주 캔을 들고나온다. 중학생인 딸 현서(고아성)에게 맥주 맛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후 한강 둔치에 괴물이 나타나자, 그는 손님에게 맥주를 배달하다 말고 괴물을 향해 맥주 캔을 던진다. 괴물은 활개 치며 폭주하고 현서는 괴물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친다. 하수구에 갇힌 현서는 "아빠가 맛보여준 맥주를 먹고 싶다"며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하이트를 꼽는다. 그다음 장면에서 괴물은 지금껏 삼킨 사람들을 하수도에 뱉어낸다. 마지막으로 토해낸 건 다름 아닌 맥주캔. 이처럼 하이트 맥주는 영화 속에서 '평범한 일상에 대한 염원'을 상징하는 토템처럼 등장한다.
# Episode 6.
응답하라 1988 (2015)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을 안겨준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는 두꺼운 전화번호부, 교련복, 비락우유 등 화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향수 젖은 소품이었다. 중년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바로 '크라운맥주'. 1952년 출시돼 1993년 단종될 때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국민 맥주다. 크라운맥주는 쌍문동 아줌마 3인방이 평상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 때도, 정팔이 집 거실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드라마 방송에 발맞춰 크라운맥주를 한정 출시한 하이트진로는 거듭된 완판 행진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추억은 마케팅보다 강했던 것.
# Episode 7.
또 오해영 (2016)
'로맨스 명가'로 불리는 케이블 채널 tvN의 또 다른 화제작'
또 오해영'은 보통의 30대 여성을 극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안방 시청자들의 큰 지지를 얻었다. 주인공 오해영(서현진)은 결혼 전날 차인 비참한 심정을 매일 술로 달랜다. 폭식과 폭음을 반복하고, 비틀거리며 귀가한다. 상사인 박수경(예지원)도 만취 귀가가 일상이다. 지나간 옛사랑과의 추억이 남아 있는 술집에서 홀로 추억을 되새긴다. 남자 등장인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래가 보이는 주인공 박도경(에릭)은 "난 술 안 마신다"며 만취한 해영을 한심하게 쳐다보지만, 곧 그도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 친구와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마시고, 화가 나서 마시고, 집 밖 계단에서 마시고… 그의 손엔 터키 맥주 에페스가 들려 있다. 친구 이진상(김지석)의 상상 장면에도 자연스럽게 에페스가 등장한다. '사랑이 뭔데' 라고 물으면 '알싸한 맥주 맛'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지는 장면이다.
EDITOR_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