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과 맥주와 영국
에일과 맥주와 영국
Ale과 Beer. 이 단어들을 들었을 때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오늘날 ‘맥주(Beer)’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써 ‘맥아즙에 홉을 첨가하여 효모로 발효시켜 만든 술’을 뜻하고 있다. 그리고 에일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상면발효 맥주를 뜻한다. 우리가 비교적 흔하게 쓰고 있는 이 단어들이 언제 처음 등장했고, 사용되었던 곳은 어디일까?
지금으로부터 오래전. 그러니까 ‘Beer’와 ‘Ale’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던 시절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
영국의 Ale vs. Beer United Kingdom’s Ale vs. Beer
고대의 역사에서 술이 빠지는 곳은 없다. 지금의 영국, 그러니까 브리튼(Britain) 섬에서도 술은 있었다. 고대의 브리튼에서는 꿀을 발효해서 만든 술인 미드(Mead)가 발달했다. 삼림이 울창했던 이 지역에는 야생 꿀이 풍부했고, 이를 이용한 술이 발달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음껏 술을 빚을 만큼의 꿀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발아시킨 곡물을 이용한 술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때 꿀을 발효시킨 술인 미드와 발아시킨 곡물로 만든 술을 구분하기 위해 등장한 단어가 에일(Ale)이다. 당시의 에일은 귀한 술인 미드와는 달리 저급 술로 인식되었다.
맥주에 홉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1~12세기부터였다. 맥주에 홉이 사용되기 이전에는 구르트(Grutre)라 불리는 약초와 향신료의 믹스가 쓰였는데, 영국의 경우 15세기에 이르러서야 홉의 사용이 정식으로 허가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구르트 대신 홉을 첨가하여 빚은 술은 진짜 에일이 아니다.’라고 하며 홉을 첨가한 에일을 ‘Beer’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홉이 첨가되지 않은 Ale’은 Beer에 밀려 점차 사라졌다.
현대에 이르면서 Beer는 맥주 전체를 총칭하는 의미로, Ale은 상면발효 맥주를, Lager는 하면발효 맥주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영국은 맥주 스타일의 기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나라다. 특히, 현재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들이 주로 선보이는 스타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영국에서 유래된 페일에일(Pale Ale), 인디아 페일에일 (India Pale Ale), ESB(Extra Special Bitter), 포터(Porter)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스타일들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의 열풍과 함께 꽃피게 되었다.
맥주스타일과 영국 Beer Styles and the United Kingdom
영국식의 맥주는 같은 스타일의 미국식 맥주에 비해서 맥아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스타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맥아에서 전해지는 구수함, 캐러멜, 구운 곡물, 에스프레소,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맛들이 도드라진다. 이러한 특징의 이면에는 미국으로 건너간 스타일들이 미국 혹은 신대륙에서 재배된 재료로 만들어지면서 재해석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영국의 지리적 특성 역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은 남동부 끝자락의 켄트(Kent)지역을 제외하면 홉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지역이 없다. 물론, 이 지역에서 퍼글(Fuggle), 켄트 골딩(Kent Golding)과 같은 양질의 홉이 재배되고, 공급되지만 이 지역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하다. 이러한 환경과 함께 몰트위스키가 유명해질 정도로 맥아를 다루는 기술이 발달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에일의 암흑기와 라거
영국이 에일의 나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에일을 양조하기에 적합한 물이 있었다는 자연적 요인과 함께 인디아 페일 에일의 발원지로 알려진 버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양조장들의 기술이 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해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국의 맥주는 라거의 대중화와 함께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루이 파스퇴르가 하면발효 방식이 상면발효 방식에 비해 맥주의 산패율을 낮춘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냉각기술이 발전하면서 하면발효 방식의 맥주를 생산하는데 제약이 사라지면서 이 매력적인 유리잔에 담긴 밝은색의 라거가 맥주 시장을 장악해 갔다. 반면 라거의 성장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영국의 에일의 힘이 점점 약해졌다.
Real Ale과 CAMRA Real Ale and CAMRA(Campaign for the Maintenance of Real Ale)
라거는 대량생산에 적합했다. 대기업들은 대량생산방식에 적합한 몇몇 종류의 맥주에만 집중했다. 강한 맛으로 양조 되어 나무통(Cask)에 담겨서 유통되던 영국의 비터 에일은 점차 입지가 줄어갔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던 네 사람은(Michael Hardman, Graham Lees, Jim Makin, and Bill Mellor) 1971년 3월 CAMRA(진짜 에일을 지키는 단체)를 조직했다. 이들은 Real Ale이란 전통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로 나무통에 담겨 있는 ‘Cask Ale’을 뜻한다.
CAMRA의 활동은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들에게 Cask Ale을 다시 생산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북미로 전파되며 브루펍(Brewpub)을 부활시키는데 공헌을 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우리가 영국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나무통에 담긴 비터 에일’을 지금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영국이라고 하면 현대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모습보다 고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때때로 ‘신사의 나라’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단순히 고지식하거나 변화에 둔감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현대적으로 변형된 무엇인가의 원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맥주가 그렇다. 영국의 맥주는 에일이 처음 시장에 등장하던 시절의 모습, 수백 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원형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새롭고 많은 품종의 홉이 선보이기 전의 홉을 그대로 사용하며, 전통적인 방법으로 양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것. 이를 통해 맥주의 역사를 맛볼 수 있는 것을 영국 맥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