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하고 달콤한 가을 느낌 쉐라플리 펌킨에일
아직 한낮으론 덥지만, 볕이 많이 누그러지고 하늘이 점점 푸르게 높아지는 게 이젠 슬슬 가을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가을하면 먼저 떠오르는 맥주는 물론 독일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퍼진 옥토버페스트(Octoberfest)라 할 수 있지만 한 가지 더 미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로 호박맥주을 꼽을 수 있다. 과연 호박이 맥주와 어울릴까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이미 호박 맥주는 대부분의 브루어리들이 가을 시즈널 맥주로 만들고 있는 이미 하나의 서브카테고리로 구분되고 보편화된 스타일로 어쩌면 미국의 이민 정착 역사와 문화를 한데 응축해 놓은 진정한 미국만의 맥주라 할 수 있다.
매년 매스컴에서 언급되는 대표적인 펌킨 에일로는 도그피쉬 헤드의 펀킨(Dogfish Head Punkin)이나 서던 티어의 펌킹(Southern Tier Pumking) 등이 있지만 오늘 소개할 더 세인트 루이스 브루어리(The Saint Louis Brewery)의 쉐라플리 펌킨 에일 (Schlafly Pumpkin Ale) 또한 빠지지 않는 맥주라하겠다.
세인트 루이스 브루어리는 1991년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단 코프먼(Dan Kopman)과 톰 쉐라플리(Tom Schlafly)가 설립한 지역의 소규모 브루어리로 다운타운에 오랫동안 비어있던 길모퉁이 건물 두 채를 리모델링하여 시작했다. 다들 그렇듯이 처음엔 브루펍 형태로 오로지 드래프트로 페일에일과 밀맥주만 만들었지만 2년 후 컨트렉 브루잉으로 병입생산을 시작하고 쉐라플리라는 브랜드로 지역 슈퍼마켓에 유통을 하면서 서서히 성장해갈 수 있었다. 그러기를 10년째 드디어 2003년 세인트 루이스 교외인 메이플우드(Maplewood)에 생산설비와 자체 병입시설을 갖춘 쉐라플리 바틀웍스(Schla fly Bottleworks)라는 브루어리를 설립하였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곳은 이젠 탭룸 브루 하우스(Tap Room Brew House)로 불리며 지금은 750ml 리미티드 맥주들의 생산과 에이징시설 다양한 탭을 보유한 레스토랑 브루펍으로 탈바꿈하였고 이제 대부분의 맥주는 제2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지금은 미주리주에서 독립 브루어리로는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하였고 터전인 중부지역를 중심으로 동남부지역으로 대략 13개 주 정도에 유통하고 있다. 이어라운드(연중 상시 판매하는) 맥주는 물론 시즈널, 스페셜 릴리스 시리즈, 리미티즈 시리즈, 우드 에이지 등 매년 50여가지의 이상의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고 가성비 또한 좋아서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나 쉐라플리 펌킨 에일은 2년 전만 해도 물량이 너무 부족해서 유통 당일 매진이 될 만큼 인기가 있었다.
지금은 수급사정이 좋아져서 원하는 만큼 넉넉히 살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도 다른 주에서는 만나기 힘든 귀한 맥주로 인정받고 있다.
먼저 외관을 살펴보면 역시 전체적으로 호박색 라벨에 SCHLAFLY라는 브랜드 아래로 잘 여문 호박이 그려져 있다. 호박과 함께 계피(Cinnamon), 육두구(Nutmeg)와 정향(Clove) 등의 스파이시(Spices)가 첨가되었다는 짧은 문구와 병입날짜가 찍혀있다. ABV는 8%, IBU는 16, SRM은 27. 전반적으로 꽉 찬 느낌의 라벨에 부드러운 색감이나 깨끗하고 포근한 느낌의 디자인이 한층 더 맥주에 대한 호감을 일게 한다.
병을 열고 맥주를 잔에 따라보니 달콤하고 톡 쏘는 향이 한데 뒤섞여서 먼저 올라온다. 소개된 문구처럼 스파이시의 독특한 청량감과 호박의 달콤한 자극이 입맛을 북돋는듯하다. 거품은 촘촘하게 잘 깔려있고 아이보리색의 가벼운 느낌은 투명하고 옅은 탐스러운 구리색 맥주와 참 조화롭게 어울린다. 한 모금 마셔보니 중간 정도의 적당한 탄산과 함께 미디엄 이상의 바디감이 제법 느껴진다. 우선 입안에서 전체적으로 풍성한 달콤함이 느껴지고 그 안에서 언뜻 매콤하면서도 묘하게 자극적인 독특한 향과 맛이 복합적으로 한데 섞여 있다. 부재료의 조화가 작위적이거나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상당히 자연스럽게 맥주 속으로 잘 녹아들어 있는 듯하고 마시고 난 후 뒤 맛에서 반복되어 느껴지는 질척거리지 않은 개운하고 산뜻한 달콤함이 매우 인상적이다. 조금 더 마셔보니 달콤함 이외에도 스치듯 지나가는 씁쓸한 맛도 느껴지고 입안이 박하사탕을 먹고 난 뒤의 화한 느낌처럼 웅웅거린다. 탄산이 조금 빠지고 나니 마치 농도 짙은 수정과와 비슷한 느낌도 난다. 도수도 높지만 조금 과하다 싶을만큼의 풍성한 달콤한 맛과 복잡하고 자극적인 향신료 느낌 때문에 쉽고 편하게 술술 마실 수 있는 타입이 아닌 것 같고 이 특유의 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제법 있을법하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일반적이라 할 수 없는 주재료와 부재료의 독특한 맛과 향의 조화로운 균형은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고 조악한 느낌이 없는 고급스러운 입안 느낌은 다른 펌킨맥주와는 차별되는 또 다른 강점인 것 같다. 음식과의 페어링 없이도 오롯이 맥주 하나로도 충분할 것 같은 무게감과 그 맛이 깊이가 느껴지는 게 디저트 맥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 가을 풍족한 결실의 느낌을 입안에서 충만하게 누리기에 더없이 좋을 맥주로 추천할만하다.
EDITOR_최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