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풍미 총정리, 당신이 느끼는 맥주의 풍미는 어디에서 왔는가
2018.11.30
최근엔 사람들의 맥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하게 들이키기 위한 것에서 맛있게 음미하기 위한 것으로 말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맥주의 맛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시음기를 쓰는 것도 이제는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물론 이 잡지를 집어들 만큼 맥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여러분도 그럴 것이고 말이다. 헌데 맥주를 맛보다 보면, 이 풍미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궁금해지진 않던가. 맥주가 지니고 있는 풍미들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떻게 표현하고, 또 맥주의 4대 원소인 맥아, 효모, 홉, 물로 낼 수 있는 풍미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오늘 이 글에서 총정리 해보도록 하겠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맥주의 풍미를 표현하는 데에 자주 쓰이는 용어’들을 학습하는 데에도 이 글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맥아(Malt)는 쉽게 말해 맥주 양조에 사용하는 보리이다. 주 역할은 맥주에 당분을 공급해주는 것이나 그 외에 맥주의 색, 거품의 생성력과 유지력, 질감, 맛, 향 등에도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친다. 굳이 보리가 아닌 ‘맥아’라고 부르는 이유는 보리를 맥주에서 보다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가공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인데, 이를 ‘맥아화(Malting)’라고 한다.
맥아화는 크게 보리를 물에 불리고(Steeping), 싹을 틔운 후(Germination), 건조시키는(Kilning)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싹을 틔우는 과정을 통해서는 맥주를 당화(Mashing)하는데 꼭 필요한 효소를 생성하며, 건조 과정을 통해서는 맥아의 보존성을 기르고 특유의 ‘풍미’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어떠한 보리를 사용했는가, 어떻게 얼마나 건조를 하였는가, 이후 어떠한 추가적인 과정을 더 거쳤는가 등에 따라 맥아의 풍미들이 서로 달라진다.
맥아는 크게 기본 맥아(Base Malt)와 특수 맥아(Specialty Malt)로 나뉜다. 기본 맥아는 당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주로 하며, 특수 맥아는 더욱 풍부한 풍미를 주고 맥주의 색깔을 내는 역할을 주로 한다. 그렇다 보니 기본 맥아는 최대한 당분 추출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앞서 언급한 맥아화 과정만을 거쳐서 만들어지며, 특수 맥아는 추가적인 풍미를 위한 가공 과정을 더 거치게 된다.
맥아의 풍미 1: 곡물의 풍미
기본 맥아든 특수 맥아든 일단은 곡물이다 보니 모두 기본적으로 곡물과 같은 풍미를 지니고 있다. 곡물을 쓰니까 당연히 곡물 같은 맛은 무조건 나겠거니 싶지만, 같은 맥아를 쓰더라도 양조 과정 중에 어떻게 컨트롤 하느냐에 따라 그 풍미를 다르게 낼 수 있다. 곡물의 풍미들은 맥주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아닌 이상 디테일하게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몇몇 양조장이나 홈브루어들이 맥아를 잘 다루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들어가면 이들간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맥아의 곡물 풍미는 크게 ‘Grainy - 곡물 같은 풍미’, ‘Malty - 맥아같은 풍미’, ‘Worty - 맥즙 같은 풍미’로 구분할 수 있다. 통상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하는 Malty와는 다르게 Grainy는 일부 스타일을 제외하곤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잦다. 또한 Worty는 모든 경우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Grainy: 곡물이 모두 같은 맛을 내질 않는 만큼, Grainy는 다시 ’Husky – 곡물의 껍질 같은 풍미’, ‘Corn Grist Like – 빻은 옥수수같은 풍미’, ‘Mealy – 밀가루 같은 풍미’ 등으로 구분이 된다. 이중눈 여겨 볼 것은 Husky다. Husky는 보통 밝은 색의 맥주들 – 아메리칸 페일 라거, 뮤닉 헬레스, 필스너 등 – 에서 자주 발견되며, 강도가 너무 강하지만 않다면 이들 스타일에선 Husky를 하나의 적합한 풍미로 인정해주곤 한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엔 이취(Offflavor)로 취급되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사람에 따라 Husky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는 점이다. Husky가 있음으로써 오히려 구수하니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아무리 적합한 스타일에서 나더라도 Husky만 있으면 질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곡물을 자주 접해서인지 Husky에 대한 거부감은 대체로 낮은 편이다.
서양권에선 Husky에 대해 얘기할 때 곡물의 생 껍질을 씹었을 때 나는 풍미, 왕겨 같은 풍미, 지푸라기 같은 풍미 등으로 표현을 하곤 하지만, 오직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Husky 표현법이 있다. 바로 ‘누룽지’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누룽지 이외에 이 풍미를 더 적확하게 표현할 용어를 떠올려낼 자신이 없다. 그 정도로 누룽지와 매우 유사한 풍미를 보이며, 한국의 양조자들끼리도 누룽지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 누룽지가 어딜 봐서 곡물의 껍질과 비슷한 풍미를 낸다는 말인가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서양인들이 어찌 누룽지를 알고 그 표현을 쓰겠는가. 그들 딴엔 최대한 비슷한 풍미랍시고 Husky라는 표현을 쓴 것일 테니 이해해주도록 하자.
Husky의 주된 원인 물질은 시클로펜틸 메탄올(cyclopentyl methanol)이라는 방향족 물질(Aromatic Compound)이다. 때문에 Husky 풍미가 강한 맥주는 다 마시고 나서도 뱃속에서부터 구수한 향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곤 한다. 이는 Malty와 Grainy 를 구분 짓는 가장 대표적인 요인이다. 이외에 2-아세틸피리미딘 (2-acetylpyridine)이나 트리메틸피라진(trimethylpyrazine) 같은 마이야르 반응에 의해 생긴 멜라노이딘들도 Husky 풍미에 관여를 하곤 한다. 마이야르 반응에 대한 얘기는 후에 다시 나올 테니 일단은 차치하도록 하자.
Grainy는 맥아를 괴롭힐 때 주로 나는 풍미이다. 맥아를 지나치게 잘게 분쇄한다던가, 스파징(Sparging)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던가, 너무 높은 온도나 너무 높은 pH의 물을 이용해서 스파징을 했다던가, 너무 미네랄이 많은 물을 사용하는 것 등이 Grainy를 유발하는 원인들이다.
Malty: 일반적으로 Malty는 ‘맥아의 성향이 강한’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곤 하며, 때문에 Grainy나 Malty, Worty, 혹은 후술할 카라멜 풍미나 탄 풍미 등도 모두 ‘Malty하다’고 뭉뚱그리기도 한다. 즉, 통상적으로 Malty는 맥아에서 기인한 풍미들이 강하게 느껴질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좀 더 엄밀하게는 비발효당인 말토오스(Maltose)나 말토트리오스(Maltotriose), 말토테트로오스 (Maltotetrose) 등 맥아 특유의 당 성분들의 풍미들 만을 Malty라고 지칭하곤 한다. 특수 맥아를 쓰지 않고 기본 맥아 만으로 만든 맥즙을 당화할 때, 당화 온도를 높게 잡으면 Malty의 풍미가 좀 더 풍부하게 우러나온다. 이를 별다른 풍미 없이 깔끔하게 발효시키면 명확한 Malty가 드러나니,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시도해보시라.
Worty: Worty에서 Wort는 맥아를 따뜻한 물에 넣어 당을 분해시킨 즙 - 맥즙을 의미하는 말이다. Worty는 이름 그대로 맥즙 같은 풍미가 나는 경우를 표현하는 말로, 언뜻 Grainy나 Malty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Malty에 비해 세련되지 못한 들쩍지근한 풍미가 나며, 결정적으로 Worty는 Malty와는 다르게 먹으면 먹을수록 쉽게 질리게 만든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는 맥즙을 직접 먹어본 사람만이 이해가 가능하므로 양조를 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이 풍미를 설명하기가 굉장히 난해하다. 그나마 무알콜 맥주에서 Worty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편이니, 맥즙을 먹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면 한번 경험해보는 것을 권한다. 개인적으론 크롬바커(Kromnacher)의 무알콜 필스를 추천한다. 굉장히 명확한 Worty가 느껴지는 맥주다.
맥즙 같은 풍미가 느껴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맥주가 아직 맥즙과 같은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 즉 발효가 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효모가 성장하기에 충분한 영양성분이 없거나, 급격한 온도변화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다른 오염균들에 의해 맥주가 감염되는 등의 경우에 Worty가 느껴지게 된다. 고로 좋지 않은 풍미라는 소리다. 여러분이 홈브루잉 맥주를 심사하는 것이 아닌 이상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풍미일 테니 참고만 하시길.
맥아의 풍미 2: 마이야르 반응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은 열이 가해졌을 때 아미노산과 환원당이 반응하여 갈색의 중합체인 멜라노이딘(Melanoidins) 등을 형성하는 반응이다. 고기나 빵을 구울 때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 모두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것이다. 맥아도 가열을 통한 건조를 거쳐 만들어지므로, 모든 맥아가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맛을 지니고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말이다. 때문에 맥아의 풍미를 표현할 때,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맛을 지니고 있는 음식들로 표현을 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비스킷, 빵, 토스트, 구운 고기 등이다. 특수 맥아는 추가적인 가열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풍미를 기본 맥아보다 강하고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마이야르 반응의 풍미는 크게 Toasty와 Roasty(혹은 Burnt)로 분류를 하곤 한다. Toasty는 그을린 정도의 풍미, Roasty는 구운 풍미를 의미하므로 마이야르 반응의 강함 정도에 따라 분류됐다고 보면 된다. Toasty 풍미를 지닌 맥아들은 주로 갈색을 띠고 있다. 이러한 맥아의 풍미를 표현하는 말들은 크래커, 비스킷, 빵 껍질, 구운 빵, 쿠키, 케이크 등 굉장히 다양하다. 그리고 갈색을 넘어서서 거의 까맣게 태우다시피 해서 만들어지기도 맥아들은 Roasty 풍미들을 지니고 있다. 구운맛, 카푸치노, 커피, 초콜릿, 에스프레소, 탄맛을 넘어 담배, 재떨이, 훈제 등의 단어로도 풍미가 표현되곤 한다.
맥아의 풍미 3: 캐러멜화 반응
캐러멜화 반응은 단백질이 없을 때, 가열을 통한 산화에 의해 당이 갈색으로 변하는 반응이다. 쉽게 말해 당을 구워 갈색으로 만드는 반응으로, 캐러멜을 만들거나 길거리에서 파는 뽑기 등을 만들 때 볼 수 있는 반응이다. 맥아를 가열하여 맥아 내부에 캐러멜화 반응을 일으켜서 만들어진 맥아를 ‘캐러멜 몰트(Caramel Malt)’라 부르며, 얼마나 가열했는지에 따라 캐러멜 맛의 풍미와 강도가 달라지게 된다.
캐러멜화 반응은 가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이야르 반응 또한 자연스레 같이 일어나게 된다. 때문에 캐러멜 몰트의 풍미들은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맛과 캐러멜화 반응에 의한 맛이 조합되어 느껴지곤 한다. 조합에 따라 당밀, 꿀, 캐러멜, 흑설탕, 토피, 감초 등 굉장히 다양한 표현들이 이 풍미를 표현하는 데에 사용된다. 재밌는 점은 마이야르 반응과 카라멜 풍미의 조합으로 보리에서 나지 않을 법한, 말린 과일의 풍미들도 나온다는 점이다. 어두운 색의 벨기에 맥주들이나 일부 까만 맥주들에서 종종 발견되곤 하는 건포도나 무화과, 건자두와 같은 풍미가 이에 해당된다.
맥아의 풍미 4: 그 외
타닌(Tannin)은 맥아의 껍질에 주로 존재하는 폴리페놀이다. 타닌은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맥주에 녹아 들고, 맥주의 마우스 필과 풍미에 은은한 기여를 하곤 한다. 하지만 앞서 Grainy에 대해 이야기 할 때처럼 가혹한 스파징 등을 통해 맥아를 괴롭히면 과도한 양의 타닌이 맥주에 녹아 들게 되고, 이는 맥주에 떫은 (Astringency) 느낌을 주는 악효과를 낳곤 한다.
또한 맥아에는 DMS(Dimethyl Sulfide)의 전구체인 SMM(SMethyl Methionine)도 들어있다. 끓임 과정을 통해 맥즙을 끓이게 되면 SMM이 DMS로 변하게 된다. DMS는 옥수수, 삶은 야채, 양배추 등의 풍미로 표현이 되며 어두운 맥주에 존재할 경우 토마토 주스 같은 풍미를 주는 물질이다. 썩 유쾌하진 않은 풍미이므로 보통 이취로 여겨지며, 양조 시 DMS를 날리기 위해 열손실에도 불구하고 끓임조를 개방해둔 채로 맥주를 1시간 이상 끓이곤 한다. 하지만 필스너 몰트(Pilsner Malt)처럼 애초에 SMM의 함량이 높은 맥아로 만든 맥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DMS가 맥주에 남아있곤 한다. 때문에 대기업 라거 맥주나 필스너 등의 밝은색 라거류에선 거의 항상 DMS가 감지된다.
맥주에서 효모가 하는 주된 역할은 맥아가 공급해준 당을 알코올과 탄산으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허나 효모는 단순 작업만 반복하는 기계가 아니다. 각종 영양소와 효소, 체내 구성물질들을 만들기 위해 당 뿐만 아니라 여러물질들을 먹고 뱉으며, 먹을 것이 다 떨어지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도 치는, 우리 인간과 같은 생물이다. 이렇게 먹고 사는 과정 동안 효모가 만들어내는 부수적인 풍미들 또한 굉장히 다양하다.
효모가 만들어내는 풍미는 에스테르(Ester), 페놀(Phenol), 알코올(Alcohol), 그 외 디아세틸(Diacetyl)이나 황화물 등의 다른 물질들로 분류가 가능하다.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효모의 풍미 1: 에스테르
에스테르는 카르복시산과 알코올의 축합반응으로 인해 생기는 물질로, R’COOR의 구조를 지닌 화합물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산과 알코올이 효모가 만들어낸 효소에 의해 서로 달라 붙어서 만들어진 화합물을 말한다. 이때 어떠한 산과 어떠한 알코올이 서로 합쳐지는가에 따라 풍미가 다른 다양한 에스테르가 만들어지게 된다. 보통은 지방산과 에탄올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간혹 탄소수 3 이상의 알코올들(Fusel Alcohols)과 결합하여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떠한 에스테르가 얼마나 만들어지느냐는 효모의 종과 발효 온도, 용존 산소량, 맥즙의 비중과 발효조의 형태등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에일 효모가 라거 효모보다 더 많은 에스테르를 생성하고, 높은 온도에서 발효했을 때가 낮은 온도에서 발효했을 때보다 더 많은 에스테르를 생성한다. 에일이 라거에 비해 풍미가 풍부한 것이 바로 에스테르의 차이 때문이다.
에스테르는 주로 과일과 꽃의 풍미를 내곤 한다. 그렇기에 굳이 맥주뿐 아니라 향수, 페로몬 등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쌀로만 빚은 전통주나 사케 등이 풍부한 과일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에스테르때문이다. 또한 홉에도 에스테르가 존재하여 맥주의 풍미에 기여를 하나, 효모의 에스테르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기에 에스테르는 보통 효모의 풍미로 치곤 한다.
맥주에서 주로 발견되는 에스테르는 다음과 같다.
시트러스 풍미(Isoamyl Octanoate 등): 주로 오렌지 같은 풍미를 내며 실제 오렌지에도 들어있는 에스테르이다. 여타 에스테르에 비해 맥주에서 발견되는 양은 굉장히 미미한 편이며, 때문에 맥주에서 강하게 감지되는 시트러스 풍미는 홉에서 기인한 시트러스라고 보는 것이 좋다.
사과 풍미(Ethyl Hexanoate, 2-phenyl ethyl acetate 등): 은은한 사과의 풍미를 낸다. 강한 인상을 주는 에스테르는 아니므로 다른 에스테르나 강한 풍미가 존재할 땐 묻히곤 한다. 때문에 쾰시나 일부 라거(가령 하이네켄), 람빅 등에서 보다 잘 감지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이취 중 하나인 청사과(Acetaldehyde)의 풍미와 헷갈리기도 하는데, 청사과보단 잘 익은 붉은 사과의 향에 더 가깝다. 여기서 2-phenyl ethyl acetate는 사과의 풍미뿐 아니라 장미같은 풍미도 낸다.
바나나 풍미(Isoamyl Acetate): 바이젠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가장 대표적인 에스테르다. 강한 바나나 풍미를 낸다. 이소아밀 아세테이트(Isoamyl Acetate) 이외에도 바나나 풍미를 내는 에스테르는 몇 가지 더 있으나 이소아밀 아세테이트에 비해 함량이 매우 낮고, 이소부타날(Isobutanal) 등의 몇몇 알데히드도 바나나 풍미를 내나 이는 미성숙하거나 산화된 맥주에서만 나는 풍미이니 ‘바나나=이소아밀 아세테이트’라고 보면 된다. 씨서론 등의 맥주 공부를 할 때면 종종 나오곤 하는 이름이니 다소 복잡하더라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어두운 색 과일의 풍미(Isoamyl Formate 등): 블랙 커런트(Black Currant)나 레드 커런트(Red Currant), 자두(Plum), 체리 등 어두운 색 과일(Dark Fruit)의 풍미를 내는 에스테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커런트 류의 과일을 접해본 사람이 굉장히 적기에 이해하기가 어려울 텐데, 그나마 오미자가 비슷한 예시라고 볼 수 있다. 건포도, 건자두 등 말린 과일로 표현되곤 하는 맥아의 풍미와는 다소 다른 느낌을 준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나 발틱 포터 등에서 종종 발견된다.
베리류 풍미(Ethyl Lactate, di-ketone 2,3-hexanedione 등): 라즈베리나 딸기, 크랜베리와 같은 풍미가 해당된다. 영국의 에일이나 스코티시 에일, 어두운 색 체코 라거 등에서 종종 발견된다.
배 풍미(n-Heptyl Acetate, Isoamyl Octanoate 등): 한국의 배 보다는 서양배에 가까운 풍미이므로 우리가 아는 그 달달한 ‘배’의 풍미와는 살짝 다르다. 밝은 색의 벨기에 맥주에서 자주 감지되는 에스테르다.
포도 풍미(Methyl isovalerate, Ethyl Methylbutyrate): 청포도같은 상큼한 인상을 주는 에스테르다. 괴즈나 사워 에일에서 좀 더 선명히 감지되는 경향이 있다.
살구, 복숭아 풍미(Gamma-decalactone): 바나나 에스테르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에스테르 중하나이다. 각종 에일류에서 흔하게 존재하나 바나나만큼 풍부한 풍미를 내뿜진 않는다.
열대과일류 풍미(Ethyl Butyrate, Ethyl Valerate): 망고, 파파야, 구아바 등 은은한 열대과일 풍미를 주는 에스테르다. 다만 뉴잉글랜드 IPA 등에서 폭발적으로 터지는 열대과일 풍미는 에스테르가 아닌 주로 홉에서 기인한 풍미이다.
솔벤트 풍미(Solvent-like): 화학 약품 같은 인상이 강하게 드는 에스테르를 표현하는 말로, 한국어인 ‘용매’란 표현을 쓰면 잘 와 닿지 않기에 영어로 표기하였다. 앞서 언급한 다른 에스테르들과는 다르게 이취로 취급되는 에스테르이며, 거칠고 역하고 불쾌한 인상을 준다. 솔벤트 같은 풍미를 내는 에스테르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에틸 아세테이트(Ethyl Acetate)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꼽힌다. 흔히 아세톤, 향수 같은 풍미를 낸다고 표현하곤 한다. 바나나 풍미의 에스테르인 이소아밀 아세테이트도 정도가 과하면 솔벤트 같은 풍미를 낸다.
효모의 풍미 2: 페놀류
페놀은 벤젠 고리에 히드록시기(-OH)가 치환된 방향족 탄소 화합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페놀류들은 저마다 고유의 풍미를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맥주에서 ‘페놀의 풍미가 느껴진다’는 말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페놀은 모노페놀(Monophenol)과 바이페놀(Biphenol), 폴리페놀(Polyphenol) 등으로 구분된다. 모노페놀은 한 분자의 페놀 구조를 가진 화합물, 바이페놀은 두 개의 페놀류 분자가 붙어서 만들어진 화합물, 폴리페놀은 여러 개의 페놀류 분자가 붙어서 만들어진 화합물을 의미한다. 맥주에 존재하는 페놀은 주로 폴리페놀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정작 맥주의 풍미에 주로 기여를 하는 것은 휘발성이 강한 모노페놀들이다.
페놀이 일부 벨기에 에일 등 눈에 띄는 페놀 풍미를 지니고 있는 맥주들에만 존재하는 줄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론 모든 맥주에 페놀이 들어가있다. 맥아의 껍질, 홉의 레진 등은 모두 자연적으로 페놀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타닌’도 일종의 페놀이다. 다만 이들은 주로 폴리페놀이므로 분자의 휘발성이 매우 약해 향이나 맛에 도드라지게 영향을 주진 않는다. 또 페놀을 효모가 직접 만들어내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맥주에 존재하는 페놀의 75%는 맥아에서부터 비롯되며, 나머지 25%도 물과 홉에서부터 나온다. 그럼 대체 왜 페놀류의 풍미를 효모의 풍미라고 분류해 두었는가. 이유는 효모가 이들 중 일부를 대사하여 휘발성의 모노페놀로 바꾸기 때문이다. 맥주에서의 ‘페놀의 풍미’가 얼마나 나느냐는 효모가 페놀을 얼마나 잘 대사하느냐에 달려있다. 바이젠 효모나 벨지안 효모 같은 일부 효모 품종에서만 ‘페놀의 풍미’가 더 잘 느껴지는 것은 이들의 페놀 생산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페놀 대사 능력이 좋기 때문이다.
맥주에서 페놀의 풍미는 굉장히 독특하게 표현된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만 짚어보자.
정향(클로브, 4-Vinyl Guaiacol): 바이젠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감지할 수 있는 페놀 풍미이다. 정향의 향을 실제로 맡아보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향이 나기에, 한번만 알아두면 후에 감지하기가 쉽다. 맥주가 오래될 경우엔 4-Vinyl Guaiacol이 분해되어 바닐라 같은 풍미만 남기며, 정향 캐릭터는 사라진다.
가죽, 말안장(4-Ethyl Phenol): 모든 람빅류에서 느낄 수 있는, 브레타노마이세스(Brettanomyces) 라는 야생 효모에 의해 주로 형성되는 페놀이다. 어딘가 살짝 썩은듯한, 쿰쿰한 인상을 주는 페놀이다. 긴말 필요 없이 람빅 아무거나 하나만 까보면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풍미이다.
스모키(4-Vinyl Syringol 등): 나무를 태운 연기, 혹은 구운 고기 같은 풍미를 주는 페놀이다. 비단 한 두 종류의 페놀만이 가지고 있는 풍미가 아니라 여러 종의 페놀이 스모키 풍미에 관여한다.
향신료: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페놀이 관여하여 만들어지는 풍미이다. 흑후추, 백후추, 올스파이스(Allspice), 등으로 표현되며 뭉뚱그려 스파이시(Spicy)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종 등의 벨기에 맥주에서 흔하게 감지된다.
밴드, 소독약(Chlorophenol, Bromophenol): 이는 효모에 의해 생성되는 페놀은 아니지만 어쨌든 맥주에서 흔하게 감지되는 페놀 중 하나이기에 이 파트에 넣었다. 물에 존재하는 염소 이온과 브롬 이온이 맥주의 페놀과 반응하여 만들어지는 화합물로서, 소독제나 구강 세정제와 같은 풍미를 지니고 있다. 어느 맥주에서나 이취로 취급 받는 풍미이므로, 보통 맥주에 쓸 물은 염소와 브롬을 일정 수준까지 제거해주곤 한다.
효모의 풍미 3: 알코올
일상생활에서의 ‘알코올’은 주류에 들어가있는 알코올인 ‘에탄올’을 칭한다. 하지만 정확한 의미의 ‘알코올’은 탄화수소의 수소 원자가 히드록시기(-OH)로 치환된 화합물의 총칭을 말한다. 에탄올은 그런 많은 알코올 중에서 탄소가 2개이고 히드록시기가 1개인 알코올을 칭하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에탄올의 풍미가 어떠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소주 한잔만 들이키면 바로 느낄 수 있는 풍미이니 말이다. 문제는 효모가 깔끔하게 에탄올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간혹 탄소가 3개 이상인 알코올도 만들곤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알코올을 고급 알코올(Fusel Alcohol)이라고 한다. 고급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에탄올처럼 강한 ‘술 맛’, 혹은 알코올 부즈(Alcohol Booze)을 내며, 이외에 향신료, 와인 같은 풍미, 화학약품, 연료 같은 역한 풍미도 내곤 한다. 당연히 모든 맥주에서 꺼려지는 풍미이다. 여담으로 막걸리나 맥주와 같은 발효주가 증류주보다 숙취가 강한 원인으로 고급 알코올의 존재 여부를 꼽기도 한다.
효모의 풍미 4: 그 외
청사과, 날호박, 페인트 등으로 표현되는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나 버터, 버터스카치 등으로 표현되는 디아세틸(Diacetyl), 썩은 계란 같은 풍미를 내는 황화수소물 등의 이취들도 효모에 의해 만들어진다. 효모가 스트레스 없이 잘 발효하였는지, 맥주가 덜 숙성되진 않았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징표들이다. 극히 일부 맥주 스타일에서 이러한 향들을 허용하긴 하나, 기본적으론 배제되는 풍미들이다 보니 상업맥주에서 자주 발견되진 않는다. 홈브루잉을 막 시작하시는 분들이라면 꽤나 자주 만나보게 되겠지만 말이다.
맥주에 사용되는 홉은 정확히 말하자면 홉이라는 식물의 암꽃을 지칭한다. 수정되지 않은 홉의 암꽃이 성장하여 수정 적기가 되면 꽃잎 내부의 루풀린 샘(Lupulin Gland)이 노랗게 부풀어 오른다. 이때 샘 내부에 들어있는 레진(Resin, 수지: 식물이 분비하는 끈적한 고형물)과 에센셜 오일(Essential Oil)이 맥주의 풍미에 기여하는 주 요인이다. 레진은 알파 산(α Acids)과 베타 산(β Acids)을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에센셜 오일 또한 후물렌(Humulene), 미르센(Myrcene) 등이 섞여있는 혼합물이다. 때문에 알파 산과 베타 산의 함유량과 에센셜 오일이 어떤 식으로 배합되어 있는지 등에 따라 홉이 내는 맛과 향은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같은 홉이라도 양조중에 어떻게 활용하였는가에 따라 그 풍미가 달라지게 된다.
홉의 풍미 1: 이소 알파 산
맥주의 쓴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홉에 들어있는 알파 산과 베타 산이다. 이중 베타 산은 맥주에 쓴맛을 주긴 하나, 알파 산과는 달리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지속적으로 분해되어 쓴맛을 드러내기 때문에 알파 산의 영향에 비하면 약한 수준이다. 때문에 맥주의 쓴맛에 대해 논할 땐 주로 알파 산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이외에도 맥아에서 비롯된 페놀들이나 발효 부산물인 일부 알데히드, 물 속에 녹아있는 몇몇 미네랄 등도 맥주의 쓴맛에 영향을 미치나 모두 홉이 주는 쓴맛에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알파 산은 열을 가하게 되면 이소 알파 산(Iso-α-Acids)으로 이성질체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맥주를 끓이는 과정에서 홉을 넣게 되면 홉 내부의 알파 산이 서서히 이소 알파 산으로 이성질체화하며, 이때 생성된 이소 알파 산이 맥주에 쓴맛을 주게 된다. 따라서 맥주를 만들 때 알파 산의 함유량이 높은 홉을 넣을수록, 또 홉을 더 오래 끓일수록 맥주는 더욱 강한 쓴맛을 지니게 된다. 쓴맛을 나타내는 지표로 잘 알려진 IBU(International Bitterness Units)도 이소 알파 산의 생성량을 계산하여 만들어진 지표이다.
홉의 풍미 2: 에센셜 오일
홉이 지닌 에센셜 오일에서 오는 온갖 다채로운 풍미야 말로 맥주 풍미의 하이라이트이다. 에센셜 오일은 휘발성이 굉장히 강하므로, 소량만 포함되어 있어도 풍미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에센셜 오일 풍미는 홉을 얼마나 가열했는가, 어떤 방식으로 홉을 넣었는가, 어떤 효모와 함께 사용하였는가 등에 따라 같은 홉을 쓰더라도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홉을 썼는데도 다른 풍미가 느껴지곤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에센셜 오일의 구성 요소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때문에 홉 풍미는 이게 정녕 한 식물에서 나온 풍미인가 싶을 만큼 굉장히 다채롭게 표현이 되곤 한다. 이 수백 가지의 홉 풍미는 크게 7가지로 대분류가 가능하다.
시트러스(Citrus):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홉 풍미이며, 수제맥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무조건 접해봤을 홉 풍미이다. 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홉은 시트러스 풍미를 지니고 있다. 귤, 오렌지, 마멀레이드, 자몽, 라임, 레몬, 레몬그라스등 굉장히 다양한 용어들로 이 풍미를 표현하곤 한다.
열대과일(Tropical): 패션후르츠, 망고, 파파야, 파인애플 등의 풍미로 구성되어 있다. 시트라(Citra), 모자이크(Mosaic), 갤럭시(Galaxy), 넬슨 소빈(Nelson Sauvin) 등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홉들은 모두 이 풍미를 지니고 있으니 가장 트렌디하고 인기 있는 홉 풍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일(Fruity): 시트러스와 열대과일 풍미를 제외한 다른 과일류 풍미들을 총칭하는 분류로, 멜론, 살구, 복숭아, 배, 베리류, 포도 등 다채로운 풍미들이 포함된다. 이 풍미들은 보통 열대과일이나 시트러스 풍미보단 흔하게 존재하지 않는 풍미이며, 풍미의 강도도 약한 편이다. 여러 실험적인 홉들에서 이 풍미를 보다 잘 내기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곤 한다.
꽃(Floral): 아무리 봐도 꽃처럼 생기진 않았지만, 어찌 됐건 홉도 꽃은 꽃이니 꽃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장미, 오렌지 꽃, 마리골드, 라벤더, 자스민, 제라늄, 캐모마일, 엘더플라워 등의 다양한 꽃 풍미들이 홉에서 나오며, 일부 특수한 홉을 제외하곤 은은한 꽃 향을 나타낸다.
허브(Herbal): 풀, 민트, 오레가노, 고수 잎, 타임 등의 허브 풍미들이 이에 포함된다.
레진(Resiny): 소나무(Pine)의 풍미로 대표되는 풍미이다. 미국 홉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외에 세이지브러시(Sagebrush)나 대마초(Marijuana) 같은 풍미도 포함된다.
쏘는 풍미(Pungent): 신선한 홉으로 갓 만든 뉴 잉글랜드 IPA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미이며,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양파, 마늘, 고양이 오줌 같은 풍미가 이에 포함된다. 또는 보관 상태가 안 좋은 홉을 사용했을 때에도 이 풍미가 날 수 있는데, 이 경우 이소발레릭 산(Isovaleric Acid)에서 비롯된 치즈 같은 풍미라 표현하곤 한다.
맥주에서 물은 맥아를 비롯한 홉, 효모 등 모든 재료들을 품게 된다. 이때 물의 온도와 pH가 어떠한가, 경수(Hard Water)인가 연수(Soft Water)인가, 추가적으로 어떠한 미네랄이 얼만큼 들어있는가, 생물학적 오염이나 잔류 염소, 소독약, 방사능 수치 등의 많은 변수에 따라 맥주의 풍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에 따른 맥주 풍미의 변화는 물 자체의 맛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물맛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도 물의 성분들과 맥아, 홉의 성분들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성분들의 용해도에 영향을 미치고, 결정적으로 효모의 대사에 물이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물에 따라 맥주의 맛이 달라지게 된다. 많은 양조자들이 괜히 물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물의 풍미는 딱 ‘어떠어떠하다’라고 표현하기가 굉장히 모호하고 어렵다.
굳이 물의 풍미를 표현할 때면 양조에서 물을 컨트롤할 때 쓰이는 물질들인 석고(Gypsum, Calcium Sulfate), 탄산칼슘(Chalky, Calcium Carbonate), 소금(Salty, Sodium Chloride) 등으로 표현하곤 한다. 이들의 풍미는 맥주에서 눈에 잘 띠진 않지만 뒷 배경에서 은은하게, 그러나 깊게 관여하고 있다. 괜히 잘나가는 양조장들이 자기네 맥주를 홍보할 때마다 물 자랑을 해대겠는가.
맥아, 효모, 홉, 물의 풍미들은 언뜻 별개의 요소로 보이지만 서로 굉장히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맥주를 먹을 때면 보통 두세 가지 정도의 도드라지는 풍미만 주로 감지해내곤 하나, 그 풍미 뒤엔 수없이 많은 분자들이 맥주가 맛있기 위한 배경들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걸 누가 다 신경을 쓰나 싶겠지만 맥주를 만드는 양조자들이나 수입사, 맥주 서버들 등은 그 미세한 풍미 하나를 조절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고민과 수고를 들인다. 애초에 크래프트 맥주가 맥주의 ‘맛’에 대한 불만에 의해 생겨난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맥주의 풍미에 대한 글을 쓴 것도 이러한 점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것이기도 하다. 맥주의 풍미도 음식의 풍미만큼이나 복잡하고, 또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