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세 제도와 주세 부과 방식의 사례 비교
2002년 하우스맥주의 태동과 2010년대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성장과 함께 맥주에 대해 50년간 이어진 종가세 형태의 주세 부과 구조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키워가는 가운데, 기존의 대기업 맥주에 비해 비싼 원가 구조를 가진 크래프트 맥주에 더 많은 세금이 매겨지는 것에 불합리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제조자와 소비자를 막론하고 늘고 있다. 가격에 매기는 세금이 다양한 맥주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 주류, 그 중에서도 맥주에 관해서 어떤 세금 제도를 채택하고 있을까? 맥주에 대한 국내외 조세 부과 체계 사례를 통해 주세 제도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을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의 주세법
주세법은 주류에 대한 조세를 부과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률을 말한다. 1949년 제정되었을 당시 주세는 종량세를 기반으로 부과되었으나 1968년 청주, 소주 및 맥주에 대한 주세가 종가세로 전환되는 것을 시작으로 1972년 주정을 제외한 모든 주류의 주세가 종가세로 전환되었다. 비싼 술에는 더 많은 세금을, 싼 술에는 더 적은 세금을 부과하는 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2002년 하우스맥주가 처음 선보이며 종가세는 하우스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과세의 대상이 ‘가격’인 상황에서 기존에 시판되고 있는 맥주에 비해 높은 제조 원가를 가진 하우스 맥주에게는 종가세의 구조가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데 가장 큰 벽이었다. 대기업에 비해 구매 협상력이 높아 원재료를 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을 만큼의 생산의 대량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상황에서 판로의 제한과 맞물려 하우스맥주가 쇠퇴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201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도 크래프트 맥주가 점차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 생산되는 하우스맥주의 유통은 제한되어 있어 초기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수입 크래프트 맥주, 그 중에서도 미국 크래프트 맥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관세,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까지 다양한 세금으로 가격이 높아진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2015년 국내 크래프트 맥주의 외부 유통이 허용되면서 국내에서도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세법은 종가세 방식을 기반으로 소규모 양조장, 중소규모 일반 양조장 등에 대해서 생산량에 따른 과세표준을 인하해서 세제혜택을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양조장 면허 역시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생산량이 아닌 시설 용량을 기준으로 한다. 어느새 100개에 육박하는 크래프트 양조장에서 이야기하는 어려움 중 한 가지가 세금에 관한 것이다. 대기업 맥주에 비해 높은 원가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종가세 형태의 세금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맥주를 마셔온 나라들과 이웃 나라들은 어떤 세금 부과 체계를 가지고 있을까?
유럽, 미국 및 일본의 주세
현재 일본 주세법상 주류는 발포성주류, 양조주류, 증류주류,혼성주류 등 4가지로 구분하고 세부적으로 17개 품목으로 구분하고 있다. 맥주와 발포주는 발포성주류로 분류되어 있으며, 맥주와 발포주의 연간 최저 생산량은 각각 60kL와 6kL다. 발포주는 맥아를 원료의 일부로 한 주류로, 맥아 비율이 66.7% 미만인 것 또는 맥주에 허용되지 않는 재료를 첨가한 것 등이 포함된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주세법에서 맥주를 생산하는 브루어리에 대한 규정은 생산량의 하한으로 정한다. 1994년 연간 생산량 하한선이 60kL로 크게 낮아지면서 일본의 소규모 브루어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편,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 이후 나타난 급격한 엔고 현상은 일본으로 수입되는 맥주의 양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1988년 51,000kL였던 맥주 수입량은 1994년 324,000kL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에 이르렀다. 엔고하에서 수입산 맥주는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으나 국내 맥주는 그리하지 못했다. 이에 1994년 삿포로 맥주는 발포주(happosu)를 개발하며 맥주보다 더 낮은 세금을 내며, 더 낮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 알코올 음료를 개발했다. 이후 일본의 국내 브루어리들은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여갈 수 있었으며, 수입 맥주는 서서히 감소했다. 일본의 경우 맥주와 관련된(유사 맥주로 불리는 발포주를 포함한) 세금 체계는 다음과 같다.
현재 일본에서는 맥주를 포함한 주류에 부과되는 세금 체계로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맥주의 경우 현재 리터 당 220엔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2026년 10월 1일까지 3단계에 걸쳐 리터 당 155엔까지 주세를 인하할 계획이다. 발포주의 경우 맥아 함량이 50% 이상인 경우 맥주와 동일하며 그 이하인 경우 맥아 함량에 따라 맥주보다 더 낮은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 2026년 10월까지 맥주의 주세 인하와 같은 일정으로 맥아 함량이낮은 발포주의 주세는 인상되어 맥주와 동일하게 맞춰진다.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2018년 1월 1일 기준 물품세 표(Excise Duty Tables)에 따르면 EU의 맥주와 관련 주요국의 세금 제도는 종량세의 체계를 따르고 있다. 알코올 도수 0.5%를 초과하는 맥주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며, 알코올 도수 2.8% 이하의 맥주는 저도수 맥주로, 연간 20만 헥토리터1) 이하를 생산하는 소규모 양조장으로 분류하여 이에 대해 기본세율에서 감면하는 제도를 채택한 나라도 있으나 감면 폭은 기본세율의 5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세 대상은 플라토 또는 알코올 도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유럽 내 주요 맥주 생산 국가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벨기에는 기본 세율로 헥토리터/플라토 당 2.0043유로를 부과하고 있으며, 소규모 양조장에 대해 연간 생산량 구간을 12,500hL, 25,000hL, 50,000hL, 75,000hL, 200,000hL로 구분하여 각각 헥토리터/플라토(hL/°Plato) 당 1.7428, 1.801, 1.859,1.9172, 1.9754 유로 씩 부과하고 있다.
독일은 기본 세율로 헥토리터/플라토 당 0.787유로를 부과하고 있으며, 소규모 양조장에 대해서는 생산량 구간을 5,000hL,10,000hL, 20,000hL, 40,000hL 이하의 생산량에 대해서 각각 헥토리터/플라토 당 0.4407, 0.5288, 0.617, 0.661유로씩을 부과하고있다.
영국의 경우 알코올 도수 2.8%-7.5% 구간에 대해서는 19.08파운드, 7.5%를 초과하는 경우 24.77파운드를 헥토리터/알코올도 수 당 부과하고 있으며, 알코올도수 1.2%-2.8%의 맥주에 대해서 는 헥토리터/알코올도수 당 8.42파운드를, 소규모 양조장의 경우에는 헥토리터/알코올도수 당 9.54파운드를 부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맥즙의 당도 12플라토, 알코올도수 5%의 맥주 1 헥토리터를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벨기에의 경우 기본 세금은 헥토리터당 24.0516유로로 1L당 약 0.241유로(약 308원)의 세금이 부과되며, 소규모 양조장의 최저 세율 구간에서는 1L당 약 0.21유로(약268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비교적 주세가 높은 영국의 경우 일반 세율을 적용하면 1L당 0.954파운드(약 1388원)의 세금이 부과되며, 소규모 양조장은 1L당 약 0.477파운드(약 694원)로 줄어든다.
미국의 주세는 연방정부에 납부하는 연방세(Federal Excise Tax)와 주 정부에 납부하는 주세(State Excise Tax)로 구분되어 있으며, 종량세 방식을 따른다.
연방세의 경우 기본 세율은 연간 첫 600만 배럴까지는 배럴당 16달러, 600만 배럴 초과분에 대해서는 배럴당 18달러가 부과되며, 연간 200만 배럴 이하를 생산하는 크래프트 양조장의 경우 첫 6만 배럴까지는 배럴당 3.5달러, 이후 200만 배럴까지 배럴당16달러가 부과된다.
여기에 각 주에서 주세를 부과하는데 주마다 다르지만 갤런딩 최소 0.02달러에서 최대 1.29 달러다. 연방세와 주세를 합산한 금액을 리터당 세금으로 환산하면, 1L당 최소 약 0.137달러에서 최대 1.425달러(최소 151.5원, 최대 1575원)이며,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경우 최소 0.05달러에서 최대 1.32달러(최소 55원에서 최대 1,459원)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서 갤런당 0.4달러 이하의 주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크래프트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맥주의 대부분은 1L당 300원대의 주세(Liquor Tax)를 납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소규모 양조장에 대한 세제혜택이 따로 없으며, 미국 및 유럽의 경우 소규모 양조장의 정의를 연간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가 종량세를 기반으로 한 과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소규모 양조장의 EU 공통 기준은 연간 생산량 200,000 헥토리터 이하로 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기준을 연간 600만 배럴(약 715만 헥토리터) 이하로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양조장의 규모를 시설이 아닌 생산량을 기준으로 나누고 있으며, 생산량에 따른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주요 국가가 주세 부과 방식으로 종량세를 택하고 있는 것은 과세의 간편성이 보장되며, 알코올의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종량세에 맥즙의 당도 또는 알코올 도수에 따라 고도주에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차등 부과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알코올의 사회적 비용 유발이라는 관점에서 고도주가 저도주보다 알코올로 인한 문제를 더 많이 발생시킨다는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더해서 과세의 형평성이나 과세당국의 목적에 따라 소규모 양조장을 보호하는 혜택을 주기도 하고, 인플레이션율을 반영하여 실질 세수를 보전하기도 한다. 또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않더라도 세금이 높아지지 않아 시장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종가세의 부과 방식을 취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조세의 수평적 형평성이 낮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하면 비용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세금의 상승으로 이어져 시장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