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향과 쌉쌀한 맛으로 맥주에 개성을 , 홉의 분류와 종류
홉의 재배가 이루어진 이후로부터, 홉이 맥주의 재료로 정식으로 인정받기까지 몇백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날 모든 맥주를 만들 때 홉을 사용한다. 시원하고 청량한 라거나 부드러운 바이젠, 홉 향이 강렬한 IPA, 로스팅 풍미가 전해져 오는 스타우트에 이르기까지 맥주의 스타일에 따라 사용되는 홉의 종류와 양이 다를 뿐 예외는 없다. 맥주에 필수적인 재료인 홉은 전 세계에 300종이 넘는 품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품종 개량을 통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홉의 품종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거나 특별한 품종으로 취급되는 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와 이들 홉으로 만드는 대표적인맥 주를 알아보자.
홉 재배와 확산의 역사
홉은 유럽 대륙에서 재배가 시작된 작물로 알려져 있다. 홉의 재배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문헌에서는 736년 독일의 할러타우 지역에서 홉의 재배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홉을 처음부터 맥주의 양조에 사용한 것은 아니었으며, 홉을 처음 양조에 사용한 것은 이로부터 343년 후인 1079년이다. 이때부터 홉은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맥주에 사용되는 빈도가 증가하게 되었으며, 1516년 독일의 맥주순수령에서 홉이 맥주의 필수 재료로 공포되었다. 16세기 초 영국으로 전해진 홉은 신대륙이 개척되며 17세기부터 북아메리카 지역에서도 재배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의 홉 중 상당수는 야생종이 아닌 품종 개량을 통해 개발된 것으로 일부는 원산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심어진 종류다. 예를들어 미국식 페일 에일이나 IPA에 많이 사용되는 모자이크(Mosaic) 홉은 품종 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영국의 품종인 퍼글 (Fuggles)은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재배되면서 스티리안 골딩(Styrian Golding)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와 같이 현재 맥주에 쓰이는 홉은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지금도 끊임 없이 품종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홉의 분류: 콘티넨털 홉과 신대륙 홉
홉을 품종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재배되는 지역을 기준으로 유럽 대륙에서 재배되는 것인지, 북미와 오세아니아 등 신대륙에서 재배되는 것인지에 따라 콘티넨털 홉 (Continental Hops)과 신대륙 홉(New World Hops)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콘티넨털 홉은 영국과 아일랜드 등을 제외한 유럽 대륙에서 재배되는 홉을 칭하는 말로, 비교적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홉들이 많다. 반면 신대륙 홉의 경우 야생 홉보다는 유럽산 홉을 옮겨 심었거나 품종 개량을 통해 개발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홉이 가지는 맛과 향의 면에서도 신대륙 홉은 유럽의 홉에 비해 전반적으로 강렬하고 날카로운 특성을 가지며, 시트러스 계열 또는 열대 과일의 느낌을 주는 품종들이 주를 이룬다.
홉의 분류: 노블 홉
한편 유럽 대륙에서 재배되는 홉 중에서 일부 특별한 홉들을 노블 홉(Noble Hops)이라고 부른다. 노블 홉은 수많은 홉의 종류 중 독일의 할러타우 미텔프뤼(Hallertauer Mittelfrüh), 테트낭 (Tettnang), 스팔트(Spalt), 체코의 사츠(Saaz) 등 단 4종의 홉을 가리킨다. 이들 홉은 품종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품종으로서 각각의 품종이 특정 지역에서 재배된 경우에만 노블 홉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사츠 홉이 체코의 자텍(Zatec)지역에서 재배될 경우 노블 홉으로 칭해지지만, 미국에서 재배될 경우에는 노블 홉으로 부르지 않는다. 특징으로는 낮은 알파산(α-acid) 수치와 함께 알파산과 베타산의 비율이 1:1에 가까우며, 높은 후물렌 (humulene) 및 낮은 미르센(myrcene) 수치, 낮은 보존성과 병충해에 취약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알파산과 베타산은 맥주의 쓴맛을 내는 성분이지만 알파산의 경우에는 맥즙을 끓이는 과정에서 쓴 맛을, 베타산의 경우에는 발효 및 숙성 과정에서 쓴맛을 내는 성분이다. 노블 홉의 경우 알파산이 2.5-5.5% 수준으로 일반적으로 IPA 등의 비터링에 쓰이는 홉들이 가지는 알파산이 10% 이상인 것과 비교해 매우 낮다.
또한 꽃이나 허브를 연상시키는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후물렌 수치는 높은 반면 주로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을 연상시키는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미르센 수치는 대체로 낮다. 노블 홉은 대체로 병충해에 약하고 홉의 성분이 보존되는 기간이 다른 품종에 비해 비교적 짧다. 특히 할러타우 미텔프뤼는 병충해에 취약해 고유의 특성은 보존하되 병충해에 강한 품종으로의 개량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경우 역시 품종 개량이 이루어진 것은 노블 홉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블 홉은 주로 옥토버페스트, 메르첸, 둔켈 및 밀맥주 또는 독일식 라거 등과 같은 독일식 맥주나 체코 스타일의 필스너의 양조에 사용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체코 필스너에 사츠 홉이 사용된다
IPA와 4C - 캐스케이드, 센테니얼, 치눅, 콜럼버스
어쩌면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가 성장하면서 함께 발전한 스타일 중 가장 많이 사랑받는 스타일은 미국식 페일 에일(American Pale Ale)과 인디아 페일 에일(IPA: India Pale Ale)일지도 모른다.
강렬한 홉의 향과 쌉싸름함을 앞세워 크래프트 맥주의 열풍을 이끈 이 스타일은 양조할 때 일반적으로 3-5종 정도의 홉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맥주에 여러가지 홉의 특징들을 입히는 것이다. 이들 스타일에는 양조자의 의도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홉들이 사용되는데 이 중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많이 쓰이는 홉이 4Cs다. 4Cs는 홉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캐스케이드 (Cascade), 센테니얼(Centennial), 콜럼버스(Columbus) 홉을 가리키는 3Cs에 치눅(Chinook)이 포함된 것이다.
캐스케이드
미국 농무부 산하 농업 연구청(USDA-ARS)의 육종개발 프로그램에 의해 1956년 개발된 홉으로 1972년 이후 재배되기 시작했다. 미국식 페일 에일 및 IPA를 비롯해서 맥주의 종류를 가리지않고 광범위하게 쓰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꽃을 연상시키는 향기와 함께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과 자몽의 느낌을 준다. 캐스케이드를 사용한 맥주로는 대표적으로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이 있는데 비터링에는 매그넘과 펄 홉을 사용하고 피니싱 홉으로 캐스케이드를 사용해 캐스케이드의 가볍고 산뜻함을 강조했다.
센테니얼
워싱턴 주립대가 1974년 개발하고 1990년 출시한 품종으로 아로마 홉으로 널리 쓰이긴 하지만 알파산의 함유량이 높아 비터링의 용도로도 사용된다. 크래프트 맥주를 양조하는데 가장 인기있는 홉 중 하나이며, 캐스케이드에 비해 알파산의 함유량이 거의 2배라는 의미에서 수퍼 캐스케이드로 불리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캐스케이드와 비슷한 특성을 가지지만 캐스케이드가 자몽을 연상시키는 면이 강한 반면 센테니얼은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의 느낌 중에서도 레몬을 연상시키는 면이 강하다.
콜럼버스
주로 비터링의 용도로 사용되는 홉으로 알파산이 함유량이 14-18%에 이른다. 비터링에 사용되어 완성된 맥주에서 콜럼버스 홉의 향을 강하게 느낄 수는 없는 경우가 많다. 콜럼버스 홉은 검은 후추, 감초 등을 연상시키는 노트와 함께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의 느낌이 옅게 나타난다.
치눅
워싱턴주에서 미국 농무부의 육종 프로그램에 의해 개발된 홉으로 1985년 출시되었다. 알파산의 함량이 11-15%로 주로 비터링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아로마 홉의 용도로도 사용되는 추세이다.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특히 자몽을 연상시키는 맛과 향을 가지고 있으며, 소나무나 솔잎을 연상시키는 향이 있다.
영국과 오세아니아, 아시아의 홉
영국은 유럽 대륙과 함께 대표적인 유럽의 홉 산지 중 하나다.
영국에서 ‘에일’이라고 부르는 맥주의 발달과 함께 홉의 재배 역시 강점을 보였다. 오세아니아 지역은 남반구의 대표적인 홉 생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은 홉 품종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퍼글
영국의 대표적인 홉 품종 중 하나로 영국 스타일의 에일에 많이 쓰인다. 알파산이 3-6%정도로 낮은 편이며 4Cs 등과는 달리 잔디, 민트와 같은 풀과 허브를 연상시키는 향과 함께 흙의 느낌이나 꽃을 연상시키는 아로마를 가지고 있다.
이스트 켄트 골딩
1838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영국 홉으로 꽃이나 허브를 연상시키는 향기와 함께 감귤류의 향을 같이 준다. 이스트 켄트 골딩의 기원은 1700년대 후반에 개발된 캔터베리 화이트바인(Canterbury Whitebine) 품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몇 종의 변종이 개발되기도 했다. 영국의 켄트 지역의 동부에서 독점적으로 재배되는 품종이며 병충해에 약하다.
갤럭시
1994년 Hop Products Australia에서 교배를 통해 개발한 품종으로 시트러스 계열 및 패션프루트를 연상시키는 향이 대단히 좋아 아로마 홉의 용도로 사용했을 때 맥주에 좋은 향을 부여할 수 있다.
넬슨 소빈
뉴질랜드 식 물 식 품 연 구 원 ( N e wZealand Institute for Plant and Food Research)에 의해 넬슨 지역에서 개발된 홉으로 2000년에 처음 선보였다. 소비뇽 블랑품종의 포도를 연상시킨다는 이름으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강한 과일향과 함께 화이트와인을 연상시키는 향을 가지고 있다.
소라치 에이스
일본의 삿포로 브루어리에 의해 1984년 선보인 홉으로 Brewer’s Gold, Saaz,Beikei No.2 홉의 교배종이다. 개발 초기 상업적 이용이 적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 사용 빈도가 조금씩 늘어났다. 레몬을 연상시키는 향기와 허브향을 가지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와 홉의 개발
지금도 다양한 품종의 홉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것은 크래프트 맥주의 발달과 닿아 있다. 크래프트 브루어들은 맥주에 다양한 맛을 부여하길 원하고, 소비자는 같은 스타일이지만 색다른 맥주를 원한다. 물론, 홉의 품종 개량을 통한 수확량의 증대 등도 목적이 될 수 있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맛을 원하는 소비자와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발전이 홉의 개량과 다양화의 일등 공신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양한 홉이 개발되면서 새로 출시된 홉의 품종은 맥주의 유행을 만들기도 한다. 현재의 미국식 IPA에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향을 연상시키는 아로마를 가지고 있는 홉들이 많이 쓰이고, 이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단순히 한 가지 맥주에 한 가지 품종의 홉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는 두세가지, 많게는 예닐곱가지의 홉을 사용해서 맥주에 다양하고 복잡한 풍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크래프트 맥주의 실험정신과 소비자의 선호가 닿아있는 예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맥주를 선보이고자 하는 욕구와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발전은 농업과 맞닿아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
우리가 마시는 맥주에는 반드시 홉이 첨가된다. 그리고 그 홉은 아로마나 쓴맛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맛으로 표현된다. 사람에 따라 음식의 선호와 같은 음식이라도 향신료의 선호가 있듯이 맥주를 마시는 데 있어서도 홉의 품종마다 특성을 안다면 자신의 선호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반대로 내가 마시는 맥주가 어떤 홉을 첨가해서 만들어지는 맥주인지에 관심을 가진다면 좋아하는 스타일을 넘어서 좋아하는 홉의 맛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맥주를 즐기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홉 하나하나의 특성까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짐으로써 맥주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홉의 성분자료 출처: ychhops.com
• DE: 독일, CZ: 체코, US: 미국, GB: 영국, AU: 오스트레일리아, NZ: 뉴질랜드, JP: 일본
• α-Acid: 맥주에 쓴맛을 부여하는 홉의 성분 중 주로 맥즙을 끓이는 과정에서 쓴맛이 생성되는 성분
• β-Acid: 맥주에 쓴맛을 부여하는 홉의 성분 중 주로 발효 및 숙성 과정에서 쓴맛이 생성되는 성분
• Humulene: 맥주에 부여되는 향 중에서 주로 시트러스 계열의 향에 관여하는 성분
• Myrcene: 맥주에 부여되는 향 중에서 주로 꽃이나 허브를 연상시키는 향에 관여하는 성분
• Aroma: 주로 향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홉, Bittering: 주로 쓴맛을 내는 데 사용되는 홉, Dual: 향과 쓴맛의 두가지 목적 모두에 사용되는 홉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