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시음기: 꿀과 과일, 향신료들이 펼치는 달달한 하모니를 경험하다
혹시 비어포스트 4월호(배치016)에 게재된 미드(Mead, 꿀로 만든 술)에 관한 소개 글 ‘’미드’를 본 적 있나요?’를 기억하는가. 맥주 전문 잡지를 표방하면서 웬 미드인가 하는 의아함이 들었을지도 모르나, 최근 미드는 나름대로 영향력 있는 맥주 평가 사이트인 레이트비어(Ratebeer.com)에서 같은 비 맥주 주류인 사케(Sake), 사이다(Cider, 사과로 만든 술), 페리(Perry, 배로 만든 술)와 더불어 하나의 카테고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맥주 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술이다. 하지만 아직 미국에서도 크게 대중화되지는 않은 만큼 한국인들에게도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술일 것이다. 때문에 미드가 도대체 어떠한 맛을 내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게끔, 직접 마셔보고 시음기를 작성해 보았다.
미드에 대한 소개
일단은 미드가 어떤 술인지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 보자. 앞서 말한 대로 미드는 ‘꿀’을 당원으로 하여 발효를 진행해 만든 술이다. 그래서 여러 ‘곡물’에서 당을 얻어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맥주와는 사실 전혀 관계 없는 술이다. 곡물에서 당을 얻어내고 곡물과 기타 재료들의 맛을 넣기 위해 당화(Mashing), 자비(Boiling) 등의 과정을 거치는 맥주와는 달 리 미드는 그저 물과 꿀, 기타 재료를 섞고 바로 발효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술을 빚는 과정은 와인과 더 유사하다. (때 문에 미드를 허니 와인(Honey Win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후 발효를 마치고 바로 완성을 시키는 미드도 있는가 하면 다른 배럴(Barrel)에 추가로 숙성을 진행하여 더 복잡하고 풍부한 풍미를 부여하는 미드도 있다. 이때 미드를 만 드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맥주 재료인 홉을 사용하거나, 혹은 맥주를 담갔던 배럴을 이용하는 등 맥주와의 컬 래버레이션이 심심찮게 이루어지기에 맥주 애호가들에게도 미드가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외에 맥주를 만들던 몇 몇 브루어리가 미드를 같이 만들기 시작한 것도 한몫 했다.) 흔히 배럴 에이징(Barrel Aging)을 거치지 않은 미드는 사 이다와 가까운 맛이, 배럴 에이징을 거친 미드는 스위트 와인 또는 아이스 와인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때문에 미드를 마실 땐 주로 15~18℃ 내외의 온도에서 마신다. 그럼 이제 미드가 실제로 어떤 맛을 내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날 마셔본 4종의 미드는 모두 미국 미시간 주(Michigan)에 위치한 B. 넥타(B. Nektar)라고 하는 유명 미드어리 (Meadery)의 미드였다.
Nektar, Apple Pi
ABV 14%, Apple Mead with Spice Added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달콤한 애플파이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미드이다. 라 벨에 사과색에 이파리를 달고 있는 원주율 표시(π)를 그려 넣은 걸 보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말이다. 미드는 꿀로만 술을 만들 경우 꽤 단조로워지고 질리는 경향이 있기에 과 일과 여러 향신료 등을 섞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 술은 애플파이의 맛 을 재현하기 위해 애플 사이다와 시나몬을 사용했고 이외에도 미시간 주 의 야생화와 올스파이스(Allspice, 향신료의 일종), 넛맥(Nutmeg, 향신료 의 일종)을 추가로 사용하였다.
투명한 꿀 색. 당연하게도 맥주와는 달리 거품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향을 맡아 보니 애플파이에서 느낄 수 있던 들척지근한 구운 사과 향이 시 나몬 향과 더불어 풍부하게 느껴진다. 아카시아 꽃과 꿀의 향기로운 내음 도 은은히 올라온다. 맛에서도 사과와 시나몬, 아카시아 꿀의 달짝지근한 맛이 풍부히 느껴지 는 것이 확실히 꿀을 뿌린 애플파이와 같은 인상을 강하게 준다. 올스파이 스나 넛맥 같은 향신료는 은은하게 이 술의 풍미에 일조한다. 재미있는 것 은 알코올 도수가 14도로 꽤 높은데도 알코올의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저 달달한 꿀물을 마시는 듯한 인상이랄까. 다만 입술이나 목에서의 뜨거운 알코올 느낌이 이 술의 도수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끔 해준다. 그야말로 훌륭한 한 잔의 애플파이
Nektar × Superstition, American Maniacs
ABV 14%, Apple Mead with Prickly Pear Juice Added 이 미드는 미국 애리조나 주(Arizona)의 유명한 미드어리인 슈퍼스티션(Superstition)과 B. 넥타가 슈퍼스티션의 500 번째 배치(Batch)를 축하하며 컬래버레이션 하여 만든 미드 이다. 꿀과 애플 사이다, 그리고 선인장 열매(Prickly Pear)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투명한 구리색. 엠버 에일이 연상되는 색이다. 코를 대보면 아, 이게 선인장 열매의 향이구나 싶은 독특한 향이 먼저 느껴지는데 선인장 열매라곤 본적도 없음에도 친 숙한 느낌이 든다. 선인장으로 만든 술인 테킬라의 향과 배 의 향을 적절히 섞어 놓은 향이랄까. 거기에 꿀에 절인 대추, 약간의 시나몬 향도 느껴지면서 어쩐지 수정과를 연상시키 는 향도 은은히 감돈다.
맛은 향에서 감지된 것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배, 테킬라 같은 선인장 열매의 맛, 거기에 잘 익은 대추, 사과, 시나몬의 맛과 향이 진하고 달달한 꿀의 맛과 함께 느껴진다. 대추를 절인 꿀로 꿀물을 탄 후 약간의 테킬라를 섞어준 듯한 맛 이랄까. 그리고 마찬가지로 알코올의 거부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추와 꿀에 뜨뜻한 알코올의 느낌이 더해지니 감기에 걸리면 종종 떠오를법한 술이다.
Nektar, #DragonsAreReal
ABV 14%, MEAD with Cherry Juice , Chipotle Peppers And Cacao Nibs Added Aged In Dragon‘s Milk Barrel 이 미드는 체리 주스와 멕시코 고추의 일종인 치폴레 고추(Chipotle Pepper), 카카오 닙스를 넣은 뒤 맥덕들에게 ‘용젖’으로 유명한 버번 배 럴 에이지드 임페리얼 스타우트인 뉴 홀랜드 (New Holland, B. 넥타와 마찬가지로 미시간 주 에 위치함) 브루어리의 드래곤스 밀크(Dragon’s Milk)를 묵혔던 배럴에 묵힌 미드이다. 설명만 들어도 얼마나 괴짜 같은 술일지 짐작이 되지 않는가.
살짝 불투명한 진한 체리 색. 외관만 보면 그냥 체리 주스 같다. 진한 체리, 꿀의 향과 더불어 버번 배럴 특유의 바닐라 향과 젖은 나무의 향이 은은히 느껴진다. 그리고 희미하게 느껴 지는 고추의 매운 느낌과 알코올의 향. 생전 느껴본 적 없는 조합의 향이라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맛은 또 의외였다. 진한 체리 주스의 맛과 약한 시나몬, 꿀의 달짝지근함이 먼저 느껴지고 그 뒤로 고추의 알싸한 매운 맛이 입을 자극하며, 이후로 버번 배럴 에이지드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카카오, 커피, 바닐라, 축축한 나무, 그리고 약 간의 알코올 핫이 은은히 감돌며 마무리된다. 이렇게 써 두니 ‘아니 그게 대체 뭐야?’ 싶지만 이날 같이 마신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하며 마셨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떠올린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Nektar, Cherry Chipotle
ABV 14%, Mead With Cherry Juice & Chipotle Pepper 앞서 소개한 #DragonsAreReal에서 배럴 에이징을 뺀 버전이다. 대신 체리의 맛과 치폴레 고추의 매운맛이 더욱 강화되었다. 투명한 진한 체리 색. 고추의 강렬한 매운 냄새와 체리 주스의 들쩍지근한 향이 주로 느껴진다. 기존의 다른 미드들과는 다르게 체리와 고추의 강렬 한 향에 가려서인지 꿀 내음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한입 머금어 보니 진한 꿀의 맛과 고추의 알싸한 매운맛, 진하고 달달한 체리 주스의 맛과 더불어 약간 타닌이 있는 레드 와인 같 은 맛이 주로 느껴진다. 복잡한 여러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술은 아니지만 재료 간의 밸런스가 훌륭하게 맞아 떨어지는 좋은 술 이다. 달달한 꿀맛으로 인해 생기는 미드의 단점인 쉽게 질린다 는 점도 고추의 알싸함으로 잘 잡아주고 말이다.
4종의 미드를 모두 먹어본 결과, 우선 꽤 접근성이 좋은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꿀물과 같은 인상이 전제되는 술이라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맛이며, 알코올의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 람도 꿀의 달달함에 가려지는 알코올 맛 덕분에 큰 거부감 없이 쉽 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장점이 곧 단점으로 연결되는데 아무래도 꿀이다 보니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질색할 것이 고, 또 단맛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도 계속 먹다 보면 금방 질리 는 감이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미드어리가 고추나 향신료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한 미드를 만들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총평? 역시 세상은 넓고 맛있는 술은 많았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