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시는 생맥주는 정말 “生”맥주일까?
우리 주변에서 ‘생맥주’나 ‘Draft Beer’ 또는 ‘Draught Beer’라는 간판이 걸린 맥주집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 곳은 케그에 담겨있는 맥주를 판매하는 집들로, 보통은 ‘생맥주집’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맥주는 뭐니뭐니 해도 생맥주지’ 혹은 ‘역시 생맥주가 더 신선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맥주를 생맥주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리고 생맥주, Draft Beer, Draught Beer는 같은 말일까? 우리가 생맥주라고 부르는 맥주는 정말 살아있는 맥주일까? 생맥주는 병이나 캔에 담겨있는 맥주와 다른 점이 있을까? 맥주를 마시거나 간판을 보며 이런 의문을 가져봤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생맥주라는 단어의 의미를 파헤쳐 보자.
맥주와 효모
맥주는 ‘맥아를 우려낸 맥즙에 홉을 첨가하여 효모로 발효시 킨 술’이다. 특히 이 중에서 효모는 맥아에서 추출한 당분을 발효 시켜 탄산과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발효과정을 담당하며 나아가서 는 맥주가 최상의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인 ‘상미기간’을 결정 짓는 핵심이기도 하다. 사용되는 효모에 따라 맥주를 구분하면 일 반적으로 에일과 라거로 나눌 수 있다. 에일의 경우 18~24도, 라거 의 경우에는 8~12도 정도의 온도에서 발효를 거친 후 0~5도 정도 의 온도에서 숙성과정을 거친다. 숙성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맥주를 발효시켰던 효모는 활동을 멈추고 아래쪽으로 가라앉게 된다. 맥주의 효모 대부분이 아래쪽으로 가라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맥 주 속에 떠다니고 있으며, 적당한 온도가 되면 다시 증식해서 활동 을 시작한다. 즉, 저온 숙성은 효모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멈추게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효모를 제거하지 않은 맥주는 냉장유통이 필수적이 다. 저온(0~5도)으로 맥주를 보관해서 효모의 활동을 억제함으로 써 맥주의 품질을 유지한다. 즉 유리병이나 캔, 페트병, 케그 등에 담겨 공장을 떠난 맥주가 소비자에게 판매되어 소비될 때까지 냉 장보관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렇게 관리를 하더라도 맥주 속의 효 모와 효소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탁이 발생하고, 맛이 변할 가능성이 높아 상미기간이 길지 못하다. 그래서 많은 맥주 제조사 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효모를 걸러내는 필터 링이나 효모를 죽이는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 등의 방법을 이 용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할 경우 맥주의 품질을 비교적 균일 하게 관리할 수 있으며,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맥주의 변 질을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다. 물론, 필터링이나 저온살균 과정에 서 풍미의 감소 또는 변화가 발생할 수 있지만, 상미기간 연장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유통상의 이점이 더 많다.
효모와 생맥주(生麥酒)의 관계
19세기 중반까지의 맥주는 말 그대로 ‘생맥주’였다. 맥주의 효 모는 살아있었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맥주 맛은 변해갔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맥주의 보관 역시 지하의 서늘한 곳에 보관해서 변질을 늦추는 것뿐이었다. 상황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냉장고의 발명과 함께 저온살균법의 개발이다. 19세기 중반 냉장고가 발명되었으며, 비슷한 시기 파스퇴르는 술의 발효가 효모 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발견하고, 열처리를 통한 살균법을 개 발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으로 맥주의 보존 기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효모가 살아있는 생맥주는 아니었 다. 그러나 보존 및 유통의 편의성과 맛의 변화가 적다는 점과 함께 병과 캔과 같은 소포장 용기에 담겨 판매되는 맥주의 증가로 인해 살균처리를 한 맥주가 늘어나며 점차 예전과 같은 ‘효모가 살아있 는 맥주’의 입지가 좁아졌다. 삿포로 맥주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 아가 열처리를 가하지 않고 효모를 제거하는 공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기존의 열처리에 의한 살균 방법이 아닌 세라믹 필터로 여 과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열처리 방식 대신 필터링으로 효모를 없 앤 맥주를 생맥주라고 칭할 수 있는가 라는 논란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효모를 제거하지 않은 맥주를 생맥주 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병이나 캔에 포장돼 유통되는 맥주가 아닌 케그에서 서브되는 맥주를 생맥주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 고 있는 ‘생맥주(生麥酒)’라는 용어는 한자의 뜻ㄴ을 차용하여 ‘살아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효모의 살아있음과 관계 없이 케그에서 추출된 맥주를 ‘생맥주’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에서 용어가 지칭하는 뜻과 실제 적용되는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생맥주의 영문 표기를 Draft 또는 Draught로 하는데 이는 같은 말일까? Draft Beer와 Draught Beer 는 같은 말로 주로 미국에서는 Draft로, 영국에서는 Draught로 표 기하는데 고대 영어에서 끌어당긴다는 뜻을 가진 ‘dragan’에서 유 래했다. 1785년 조셉 브라마(Joseph Bramah)는 맥주가 담긴 배럴 에서 펌프 방식으로 맥주를 뽑아내 서브할 수 있는 ‘beer engine’ 을 개발했다. 이후 이 펌프가 대중화되며 Draught Beer라는 말은 ‘beer engine을 이용해 제공되는 맥주’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두 말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생맥주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는데 엄 밀한 의미에서 같은 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마시는 생맥 주는 핸드펌프 방식이 아니라 탄산을 주입해서 압력을 가해 맥주 를 밀어 올리는 방식의 케그(Keg)에 주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마시는 생맥주는 20세기에 들어 개발된 가압 방 식의 케그에 담겨 있다. 가압 방식의 케그가 일반화되기 이전에는 캐스크 또는 배럴이라고 하는 나무로 된 통에 직접 연결된 비어 탭 (Beer Tap)에서 직접 맥주를 따르거나 비어 펌프를 이용해 맥주를 서브했다. 이 나무통은 1950년대부터 스테인리스로 빠르게 대체 되었고, 맥주를 서브하는 방식 역시 가압 방식으로 빠르게 변해갔 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Draught Beer’라는 말은 탄산을 주입 하는 방식으로 서브 되는 맥주를 지칭하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 었다
Campaign for Real Ale(이하 CAMRA)는 잉글랜드의 세인트 올번스(St. Albans)에 본부를 둔 영국의맥주 소비자 단체다. 1971 년 설립된 CAMRA는 맥주와 관련된 사업, 소비자의 권리 및 법률 적인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이며, 케그 기반의 탄산을 주 입하여 압력을 가하거나 인위적인 탄산을 더해 청량감을 주는 맥 주가 아닌 ‘전통방식으로 추가적인 탄산 주입이 없는 맥주’를 Real Ale로 규정하고 있다. Real Ale이란 캐스크 에일(Cask Ale)로 여과 되지 않고 살균되지 않은 2차 발효 또는 숙성이 가능한 상태의 맥 주를 캐스크에 담은 것을 말한다. 판매할 때도 추가적으로 탄산을 주입하지 않고 캐스크에서 바로 따라서 제공한다.
진짜 생맥주는 있는가?
우리나라에서 ‘생맥주’라고 부르고 마시는 맥주의 대부분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생맥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생맥주(生麥 酒)라는 단어가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이라면, 상당수의 수입 생맥주나 대기업에서 대량생산 방식으로 생 산되고 판매되는 생맥주는 살균 또는 여과 과정을 거치므로 ‘생(生) 맥주’가 아닌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 중에서도 케그 형태로 수입되 는 맥주의 경우 상당수가 열처리 또는 필터링 과정을 거쳐 유통되 고 있다. 그 옛날 영국에서 인도까지 적도를 두 번이나 지나 맥주를 운반하던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더라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우리나 라까지의 항로는 맥주의 상태가 변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헤페바 이젠과 같이 효모의 맛을 즐기는 맥주나 병이나 캔, 케그에서의 2 차 발효를 의도하지 않은 경우라면 ‘생맥주’로의 유통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많은 맥주는 생맥주라고 부르 기보다는 케그에서 가압방식으로 서브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드래 프트 비어(draft(또는 draught) beer)’나 말 그대로의 케그 비어(keg beer)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생(生)맥주는 있을까. 물론, 있다. 수입 맥주 중 에서 2차 발효가 진행되는 맥주.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맥주 중 지역 양조장이나 브루펍과 같은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 되는 맥주 중에서는 효모가 살아있는 생맥주를 비교적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효모를 거르지 않고 유통되는 맥주는 냉장 유통을 통 해 신선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소비될 수밖에 없다. 효모가 살아 있어 맥주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결국, 생산에서부터 판매되기까지 긴 시간을 운송해야 하는 수입 맥주보다는 국내에서 생산된 맥주가 ‘생(生)맥주’로는 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생(生)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국내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생맥주라는 이름은 실제로는 케 그에 담긴 맥주를 의미하지만 우리에 게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케그 로 유통되는 맥주’와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를 구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용 어를 정의하는 것은 어떨까? 영국의 CAMRA가 Real ale을 정의했던 것처 럼 말이다. 앞으로 국내 맥주가 다양해 지면 정확한 용어의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여러 종류의 생(生)맥주가 유통돼 신선하고 살아있 는 맥주를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 한다.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