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의 새콤한 집 캐스케이드 브루잉 배럴 하우스(Cascade Brewing Barrel House)
2017.02.28
두 발로 다니는 포틀랜드 맥주 탐방
포틀랜드 맥주 여행, 충분히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실천해 볼 시간입니다. 지구 상 어떤 곳보다도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많이 있는, 크래프트 맥주의 천국 포틀랜드!
여러분이라면 포틀랜드에서 어느 맥줏집부터 방문하실 예정이신가요?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낸 이틀간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걸어 다니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비행기를 타느라 심신이 지쳐있었지만 저는 고민하지 않고 한 곳으로 향했습니다. 미국 북서부 방식의 새콤한 에일(Northwest Style Sour Ale)을 표방하는, 새콤한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언제나 끊이지 않는 그곳. 바로 캐스케이드 브루잉 배럴 하우스(Cascade Brewing Barrel House) 입니다.
미국 최초의 ‘새콤한 집’을 열기까지
캐스케이드 브루잉(Cascade Brewing)은 1998년 오너인 아트 래런스(Art Larrance)씨와 브루마스터 론 갠스버그(Ron Gansberg)씨가 설립한 회사입니다. 도합 4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맥주 경력을 살려, 포틀랜드 남서부 쪽에 약 1200리터 규모의 양조 설비를 마련한 후 균형이 잘 잡힌 전통적인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점점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맥아와 홉, 효모 어느 하나도 튀지 않고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 줬던 전통적인 맥주의 시대는 가고, 홉의 향과 풍미에 중점을 둔 맥주, ‘호피(Hoppy)’한 맥주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누가 더 ‘호피’한 맥주를 만드나 경쟁하던 홉 군비 경쟁(Hops arms race)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들은, 캐스케이드 브루잉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맥주를 만들고자 결심합니다. 질 좋은 와인 통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신선한 과일이 주변에 잔뜩 있는 좋은 환경에서 그들은 벨기에 스타일의 신 맥주를 재해석하기로 마음먹습니다.
2008년, 브루어리 주변을 떠다니는 젖산균과 함께 오크 통에서 발효시킨 캐스케이드의 새로운 맥주 3종이 탄생했습니다.
체리를 넣은 크릭(Kriek), 살구를 넣은 애프리콧(Apricot), 그리고 트리펠(Tripel)과 플랜더스 레드(Flanders Red), 블론드 쿼드(Blond Quad)를 잘 배합한 후 숙성시킨 맥주인 뀌베 두 종글레르(Cuvee du Jongleur)가 바로 그 맥주들입니다. 그해 가을에 열렸던 그레이트 아메리칸 비어 페스티벌(Great American Beer Festival)에 참가한 캐스케이드의 세 맥주 중, 크릭이 나무와 배럴에서 숙성된 사우어 맥주 (Wood- and Barrel-Aged Sour Beer) 부문에서 동메달을 따 오면서, 캐스케이드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이후 캐스케이드 브루잉은 설비를 점점 늘려나가고, 2010년에는 새콤한 맥주를 전문적으로 파는 새콤한 집(House of Sour)을 포틀랜드 시내에 열게 됩니다.
‘과일’과 ‘맥주’블렌딩의 전문가
캐스케이드 브루잉에서 맥주를 만드는 방법은 독특합니다. 블론드(Blond), 트리펠(Tripel), 쿼드루펠(Quadrupel) 등 어떤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지는 브루어가 결정하지만, 다 만들어진 맥주가 푸더(Foudre)라는 큰 나무통에서 발효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맥주는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후 잘 발효된 맥주를 조금 맛본 후, 이 맥주는 어떤 맥주와 섞어야 제맛이 날지, 어떤 과일을 넣을지, 어떤 배럴(Barrel)에서 숙성할 지는 맥주의 발효가 끝난 뒤에 결정됩니다. 맥주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더하는 것이 아니라, 맥주의 진정한 맛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약간의 사후 조처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나온 블론드 에일은 깔끔하고 짜릿한 신맛이 청포도와 잘 어울릴것 같다면, 블론드 에일을 밀 맥주와 잘 배합한 뒤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포도와 함께 화이트 와인을 숙성했던 통에서 숙성시킵니다(The Vine 2015). 잘 익은 플랜더스 레드(Flanders Red)의 볶은 맥아 풍미가 적포도의 떫은맛과 조화를 이룰 것 같다면,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배럴과 포트 와인(Port Wine) 배럴에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를 넣고 30개월 숙성시킨 뒤 섞습니다(Sang Royal 2013). 물론 과일을 넣거나 다른 술을 숙성했던 배럴에 넣는 등의 조처를 하지 않고, 바로 판매하는 제품도 있습니다(Foudre #1).
이렇게 만들어진 캐스케이드의 맥주들은 설령 같은 이름이라도, 생산 연도에 따라서 맛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맥주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그 맥주에 약간의 맛을 더해 더욱더 완벽한 맛을 이끌어내는 캐스케이드의 맥주들은 하나하나 세월의 맛을 담고 있습니다
한 번뿐인 경험,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진 캐스케이드의 맥주를 더욱더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탭 잇 튜즈데이(Tap It Tuesday) 행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배럴 하우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맥주가 담긴 배럴(Barrel) 밑 부분에 꼭지(Tap)를 때려 넣는 행사인데요, 특이한 점은 매장의 직원이 아니라 사전에 예약한 손님이 꼭지를 때려 넣는다는 점입니다.
탭 잇 튜즈데이 행사는 캐스케이드 브루잉 배럴 하우스의 홈페이지(http://www.cascadebrewingbarrelhouse.com/?p=tapit) 에서 비어 있는 날짜(Space Available)를 클릭해서 신청하실 수 있는데요, 이 행사에 나오는 맥주들은 대부분이 병이나 생맥주로 팔지 않는, 캐스케이드 블렌더들의 기발함을 엿볼 수 있는 한정판 맥주들입니다.
예를 들어 스트로베리스 & 크림(Strawberries&Cream)이라는 맥주는 완성된 스트로베리 2015년 빈티지에 바닐라빈(Vanilla Bean)을 넣은 맥주이며, 체리 버보닉 플래그(Cherry Bourbonic Plague)는 캐스케이드의 이름난 맥주인 버보닉 플래그에 체리를 넣어 2년 이상 함께 숙성시킨 맥주입니다.
쉽게 맛볼 수 없는 맥주들을 마실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마실 맥주를 따라 낼 꼭지를 내 손으로 직접 때려 넣는다는 즐거움! 정말 평생 한 번만 즐길 수 있는 희귀하고도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맥주가 조금 쏟아질 수도 있지만, 겁내지 마세요! 코를 자극하는 새콤한 냄새와 약간 축축한 느낌조차도, 모두의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를 들으면 즐겁게 느껴질 것입니다!
에필로그
찌는 듯한 대낮에 찾아갔을 때도,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새카매진 밤에도, 캐스케이드 브루잉 배럴 하우스는 언제나 신 맥주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웃음 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캐스케이드의 맥주를 사랑하는 단골손님들과, 자기 직장의 맥주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직원들, 그리고 저와 같이 가끔 아주 먼 곳에서 찾아 오는 손님들. 그런 모두의, 새콤한 맥주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결국 6일이라는 짧은 일정 동안, 총 다섯 번 방문할 정도로 저는 캐스케이드 브루잉 배럴 하우스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주 보기 힘든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날마다 질리지도 않고 찾아와서 그런지, 사흘 뒤에 발매될 2014년 빈티지 맨하탄을 사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한다는 저에게 게리 올드만을 닮은 직원이 추천해 준 맥주. 2013년 빈티지의 맨하탄 (Manhattan 2013)이었습니다. 그때 그 맥주, 정말 맛있게 마셨다고, 꼭 다시 가서 이야기하고 싶은 곳. 아직도 떠올리면 설레는 그곳. 캐스케이드 브루잉 배럴 하우스. 포틀랜드에 가셨다면 꼭 한번 방문하시길 추천드립니다.
EDITOR_최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