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밑에 맥주의 역사가 흐른다 윤재원 더테이블브루잉컴퍼니 이사
서울 종로 크래프트 맥주 펍 ‘더테이블’의 홀 중앙에는 20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테이블이 있다. 그리고 그 테이블 아래 더테이블브루잉컴퍼니의 역사가 있다.
9년 전 처음 브루펍을 시작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겨우 60평 (198.3m2) 남짓이었다. 양조 장비를 넣고 나니 테이블을 설치할 공간이 빠듯했다. 이때 묘안이 떠올랐다. 맥주를 숙성하고 냉장할 탱크를 바닥에 설치하고 그 위에 테이블 상판을 올리는 것. 지금은 경기도 일산으로 양조 시설을 옮겨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종로 더테이블의 큰 테이블 밑에는 총 2200리터의 탱크가 자리하고 있다. 브루펍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런 더테이블브루잉컴퍼니를 이끄는 윤재원 이사를 만나기 위해 달달한 맥즙 냄새가 가득 찬 일산의 브루펍을 찾았다. 윤재원 이사는 그의 어머니, 형과 함께 1995년부터 종로에서 펍 산타페 등 세 개의 매장을 운영했다. 그 러다 2008년 브루펍을 시작했고 2010년 생산 용량을 늘려 일산으로 이전했다.
더테이블브루잉컴퍼니가 걸어온 길은 ‘남들과 다른 길’로 정리된다. 2000년대 초반 불었던 하우스맥주 붐이 잦 아들고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이 암흑기에 빠져들었던 시기에 브루펍을 시작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윤 이사는 “가족기업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며 “브루펍들이 하향세를 걷고 있던 시기여서 고가의 중고 독일 양조장비를 싼값에 인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으로 양조한 맥주도 소비자들에게 생소했던 ‘허니브라운’이었다. 그는 “캐나다에서 마셔봤던 허니브라운을 모티브로 첫 맥주를 만들었다”며 ”당시 국내 브루펍에서는 대부분 독일식 필스너, 바이젠, 둥켈만 만들고 있어서 남들과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벌꿀의 맛이 어우러진 허니브라운은 더테이블브루잉컴퍼니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허니브라운을 시작으로 현재는 바이젠, 필스너, IPA, 페일 에일, 브라운 에일, 스타우트, 고제 등 20여종의 맥주 를 만들고 있다. 조밀하고 풍성한 헤드와 부드러운 목넘김이 매력인 바이젠, 처음 크래프트 맥주를 접하는 사람 도 부담 없이 홉의 향을 즐길 수 있는 IPA가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시트러스한 향 속에 시큼함을 깔끔하게 살려낸 고제 역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 파주 농업진흥원과 손잡고 쌉쌀한 홍삼 맛이 가미된 홍삼바이젠, 홍삼필스너를 출시하기도 했다.
더테이블브루잉컴퍼니의 자랑은 자체 개발한 솔루션으로 진행하는 체계적인 품질 관리다. 프로그래머 출신인 윤재원 이사의 형이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양조 과정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를 관리한다. ‘브루어리 통합정보시스템’인 셈이다.
윤 이사는 “맥주 재료의 재고 관리부터 몇 번 탱크에서 며칠 째 발효 중인지, 탱크 소독은 어떻게 했는지 등을 시스템에서 한 눈 에 볼 수 있다”며 “케그에 QR코드를 부착해 펍에 나간 맥주도 일 관되게 추적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테이블브루잉컴퍼니는 본격적인 성장의 날개를 펴고 있다. 먼 저 대회에서 수 차례 수상하고 전문가들로부터 맥주의 맛을 인정 받으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IPA가 2년 연속 대한민국 주류대상에 서 수상을 했다.
최근 말로니펍의 ‘컴뱃존’ 맥주 레시피를 만든 윌리엄 밀러가 페이스북에서 “더테이블이 내 맥주를 더할 나 위 없이 완벽하게 재현해냈다”고 ‘폭풍 칭찬’해 힘을 더했다.
자연스럽게 브루어리가 점점 바빠지고 있다. 일산, 종로, 강남역 3개의 직영 펍이 자리를 잡아 맥주 물량이 늘고 있다. 또 다른 브루어리의 위탁 생산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크래프트웍스, 크래프트브로스, 말로 니펍, 파이루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변화들에 대해 윤 이사는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브루어와 직원들의 열정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 다. 특히 헤드 브루어인 황승호 팀장과는 지난 20여년 동안 쌓은 굳건한 신뢰를 기반으로 브루어리를 함께 키워가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발돋움하는 지금, 더테이블브루잉컴퍼니도 여러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는 제2공장을 구상하는 중이다. 현재 브루어리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이미 부지를 마련해 뒀다. 지금까지는 외부에서 투자 받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투자 유치를 검토해 생산규모 확대를 고민할 방침이다.
또 생산 제품과 마케팅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 생각이다. 윤 이사는 “그동안 음용성을 중요하 게 생각하고 기본에 충실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하면 이제는 트렌디한 것도 양조해보고 싶다”며 “임페리얼 스타우트나 산머루를 활용해 맥주를 빚고 오크 배럴에 숙성하는 방법 등을 고려중”이 라고 전했다.
또 올해 마케팅 컨셉을 ‘캠핑’으로 잡은 만큼 관련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그라울러처럼 맥주를 담아 야외에서 마실 수 있는 5리터 케그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입했다. 펍에서 케그와 케그에 담긴 맥주를 공기의 압력으로 끌어올리는 펌핑 장비를 함께 대여하는 형 태로 운영할 예정이다. 캠핑이나 홈파티에서 가장 신선한 상태의 맥주를 여럿이 마실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캔 라벨 디자인에도 캠핑의 느낌을 살렸다. 자신에게 맥주가 무엇이냐는 비어포스트 공식 질문에 “너무 많이 마신 것, 이제는 그만 마 셔야 하는 것”이라며 유쾌하게 농담을 던지는 윤 이사는 “가장 기쁜 순간은 브루어리를 확장했을 때도, 상을 탔을 때도 아닌 손님들이 맥주를 마시고 만족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의 꿈은 소박했다. “누구나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맥주를 추구합니다. 최상의 재료를 쓰면서도 너무 비 싸지 않고 조화로운 맛을 내는 맥주를 만들면서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키워나가는 게 저 의 꿈입니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