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크래프트 브루어리 ‘에이트 디그리즈 브루잉’
천연 재료를 활용한 양조 모험은 멈추지 않는다
아일랜드 크래프트 브루어리 ‘에이트 디그리즈 브루잉’
전세계 주요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에서도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최근 3~4년 사이에 크래프트 브루어 리가 80개까지 늘어났고(아일랜드 인구는 한국의 10분의1에도 못 미치는 495만명이다.) 기네스의 스타우트와 페일 라거가 주름 잡던 아일랜드 펍 곳곳에 이제 크래프트 맥주가 주인공으로 부상 하고 있다. 에이트 디그리즈 브루잉(Eight Degrees Brewing)은 2011년에 설립된 아일랜드 대표 크래프트 브루어리 중 하나. 천연 재료만을 사용해 맥주를 빚고 연간 열 종 이상의 새로운 맥주를 내놓을 정도 로 끊임 없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맥주 대 회를 매년 석권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맥주 대회인 월드 비어 어 워즈 등에서도 다수의 메달을 따내면서 실력을 인정받는 브루어 리다. 한국 시장에 맥주 출시를 앞두고 방한한 에이트 디그리즈 브루잉 의 두 대표 카메론 월리스(Cameron Wallace)와 스콧 베이전트 (Scott Baigent)를 인터뷰했다.
아일랜드에서 브루어리를 차린 호주 남자와 뉴질랜드 남자
에이트 디그리즈 브루잉의 모든 맥주 라벨에는 도마뱀(goanna)과 키위(kiwi)가 그려있다. 호주 출신인 카메론 월리스 대표와 뉴질랜 드 출신인 스콧 베이전트 대표를 나타낸 것이다. Goanna는 큰 도 마뱀으로 호주의 상징이고 키위 새는 뉴질랜드의 상징이다. 이 둘은 2002년 여행을 하다가 만났다. 한눈에 서로 맥주광임을 알아보고 맥주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그 후 카메론 대 표는 공인회계사로, 스콧 대표는 수자원공학자(water engineer)로 각자 다른 곳에 살다가 둘 다 아일랜드 여성과 결혼하면서 아일랜 드에 정착하게 됐다. 카메론 대표는 “처음 아일랜드에 왔을 때 펍 의 분위기는 정말 좋았지만 크래프트 맥주는 없고 네 개 정도의 라 거 탭과 기네스가 다 였다”며 “결국 홈 브루어였던 우리가 직접 만 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콧 베이전트 대표의 고향은 뉴질랜드 남섬의 넬슨으로, 그 유명 한 넬슨 소빈(Nelson Sauvin) 홉의 주산지다. 또 카메론 월리스 대 표는 세계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홉으로 꼽히는 갤럭시(galaxy) 홉이 많이 자라는 호주 빅토리아주 출신이다. “아무래도 맥주 일을 할 운명이었나 봐요”라고 둘은 입을 모았다. 이들은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맥주며, 아일랜드 현지에서 나는 재료를 주로 활용한 맥주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브루어리 이름 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아일랜드가 서경 8도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착안해 에이트 디그리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시에 맥주를 맛있 게 마실 수 있는 서빙 온도인 8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0.0001%의 화학 물질도 허용하지 않는다
에이트 디그리즈 브루잉은 ‘천연 재료’와 ‘모험’을 추구한다. 철저 하게 몰트, 홉, 효모, 물만을 사용하는 맥주순수령에 입각해 맥주 를 양조한다. 또 어떤 화학 물질도 넣지 않은 맥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남다르다. 특히 다른 브루어리들이 일반적으로 맥주에 적 합한 물을 만들기 위해 산도조절제 등을 사용하는 것에 반해 에이 트 디그리즈 브루잉은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카메론 대표는 “아일랜드에서 재배하는 보리의 품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브루어리에서 25분 거리에 보리 농장이 있어서 신선한 보리를 얻을 수 있었다”며 “그러나 맥주 양조에 알맞은 물을 구하 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창업 당시 브루어리 주변에 석회 석이 많아 물이 맥주 양조에 적합하지 않았다. 화학 처리를 하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천연 재료를 사용하겠다는 원칙 아래 알맞은 물을 찾아 헤맸다. 겨우 높은 지대에서 적당한 물을 발견해 브루어 리를 이전하고 맥주를 만들 수 있었다. 스콧 대표는 “맥주의 85% 가 물인 만큼 물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재료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맥주는 어떨까. 맥아 의 특성이 부각되는 맥주들이 눈에 띄었다. ‘더 풀 아이리쉬(The Full Irish)’는 ‘싱글 홉’이 아닌 ‘싱글 몰트’ IPA로 아일랜드 고유의 베이스 몰트 한 종류만을 사용해 만든 맥주다. 감귤류와 꽃을 연상 시키는 홉 캐릭터와 함께 몰트의 달콤함과 묵직함까지 경험할 수 있다. 또 앰버 에일인 ‘앰버 엘라(Amber Ella)’는 진한 호박색에 부 드럽고 풍부한 거품을 가진 맥주로 과일향의 홉 아로마와 진한 캐 러멜 맥아의 특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와 함께 아일랜드 스타일의 페일 에일인 ‘하울링 게일(Howling Gale)’, 2016 월드 비어 어워즈에서 아일랜드 최고의 스타우트로 선정된 ‘녹밀다운(Knockmealdown)’, 곡물의 고소함이 강조된 필 스너 ‘베어풋 보헤미안(Barefoot Bohemian)’에 이르기까지 에이 트 디그리즈 고유의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에이트 디그리즈 맥주는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국가와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전세계 20개국에 수출되 고 있다. 스콧은 “우리는 다른 브루어리들이 미국 시장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시장 잠재력이 큰 중국,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 동쪽 시 장을 바라보고 있다”며 “미국은 세계 최대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맥주들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 했다.
맥주양조는 모험이다
에이트 디그리즈 브루잉의 슬로건이 ‘Naturally adventurous’일 정도로 이들은 양조의 모험을 추구한다. 지금까지 총 55종의 맥 주를 시장에 내놨고 매달 한 개 꼴로 새로운 맥주를 런칭하고 있 다. 8종의 맥주는 연중 생산하고 나머지는 계절 생산이나 한정 생 산을 한다.
특히 와인을 숙성했던 배럴을 이용해 여러 실험을 하고 있는 점 이 눈에 띈다. 카메론은 “세종을 샤도네이 배럴에 숙성하고 스타 우트를 피노누아 배럴에서 숙성한 맥주를 내놓은 바 있고요. 버 건디 피노누아 오크 배럴에서 숙성한 ‘더 굿 발리와인(The Good Barleywine)’이 출시 대기중입니다. 에이트 디그리즈는 버건디 와 인을 숙성하고 빼낸 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배럴을 확보하고 있 다. 와인의 풍부한 향이 맥주에 충분히 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사실 이 발리와인은 지난 1월쯤 출시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스콧 은 “매번 발리와인 맛을 보고 있는데 아직 맛이 제대로 들지 않았 다”며 “출시 예정일로부터 몇 달이나 더 지났지만 마케팅 계획과 관계 없이 우리 기준에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는 시 장에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품종 소량생산’, ‘고집 있는 완벽주의’ 등에서 에이트 디그리즈 의 크래프트 맥주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도 모험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카메론은 “현지 과일 등을 활용한 신맛의 맥주에 대해 실험을 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의 브루어리들과도 흥미로운 공동 작업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불고기, 김치, 나물 등 한국의 많은 음식이 우리 맥주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8월경 선보이게 될 에이트 디그리즈 브루잉의 맥주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