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가 버팀목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서울 군자동 수제 소시지 전문점 알고의
강승현 대표
지난 2017년 9월 ‘알고 씨부래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슬로건 아래 서울 군자동에 문을 연 수제맥주 펍 ‘알고’. 건대 입구나 화양리 등 핵심 상권과 거리가 있는 지역이지만 수제 소시지와 다양한 수제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맛집으로 알려지면서 주변 대학 학생들과 맥주 덕후들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알세지’(알고 소세지)라는 단어가 회자되기까지 알고는 다른 펍들과 차별화되는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오픈 당시 간판은 ‘알고 탭하우스’였지만 지금은 ‘알고 수제 소시지’라고 바꿔 달았다. 또 맥주밖에 몰랐던 20대 청년은 이제 최고의 소시지 전문가를 꿈꾸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맥주 덕후에서 소시지 덕후로
알고의 강승현 대표는 어릴 때부터 요식업에 관심이 많았다. 음식을 만들어 고객에게 대접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관련 학과로 대학 진학을 했고 식당, 술집 등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실무를 익혔다. 그러다 미각을 자극하는 수제맥주에 빠지게 됐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에서 홀 매니저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맥주를 배우던 그는 마침내 자신의 업장을 열었다.
초반에는 2~3개의 안주만 갖추고 15개에 이르는 수제맥주 탭을 운영했다. 맥주 선별이나 관리에 자신이 있었기에 좋은 맥주를 갖다 놓고 관리를 잘하면 장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게 운영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강승현 대표는 “시간이 지나며 보니 수제맥주 펍의 본질은 요식업이고, 요식업을 잘하려면 맛집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수제맥주 펍은 맛집으로 불리기 어렵다는 점이 고민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수제맥주 펍은 취하도록 술만 마시러 가는 호프집과 다르지만 또 특별히 외식하러 가는 맛집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맛집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떻게 맛집으로 생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소시지였다. 강 대표는 “자체적인 레시피를 바탕으로 수제 소시지를 만들어 안주로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다”며 “한번 해 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다녀온 신혼여행에서 강승현 대표는 이른바 ‘덕통사고’를 당하게 됐다. 그는 “독일과 체코, 이탈리아를 갔는데 현지에서 먹은 말린 소세지가 너무 맛있고 맥주와도 잘 어울렸다”며 “그 경험을 계기로 소시지를 진지하게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강 대표는 수제맥주 덕후에서 소세지 덕후로 변해갔다. 국내에는 수제 소시지 제조법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혼자서 연구에 매진했다. 온갖 문헌을 뒤지고 하나하나 따라 하면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완성해갔다. 강승현 대표는 “처음에는 기존 레시피대로 만들어봤는데 우리 입맛에는 너무 짜고 향신료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며 “결국 수많은 실패를 겪으며 자체 레시피를 완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알고에서는 갈비맛, 이탈리안, 멕시칸 쵸리조, 카바노치, 킬바사, 링귀샤 등 8종의 소시지를 직접 만들고 있다. 원육 손질부터 포장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하다 보니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강 대표는 “사흘에 걸쳐 밤을 새우다시피 해야 소시지를 완성할 수 있다”며 “너무 힘들지만 맛있는 소시지가 완성됐을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전했다.
알세지는 나의 힘
이렇게 빠져든 소시지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 팬데믹 시기를 버티게 해 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강 대표는 “거리두기 4단계가 되면서 개점 휴업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지속됐다”며 “뭐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지겠다는 위기감에 소시지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시지를 만들어 업장에서 제공하는 것과 온라인에 서 판매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진공포장기, 포장용기, 보냉얼음팩 등 포장 준비에서부터 배송에 이르기까지 몇 배로 손이 갔다. 그는 “체력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 과정이 코로나19 시국을 견디게 해준힘이었다”며 “매출이 많아서가 아니라 암흑 같은 시간에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버티게 해줬다”고 회상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온라인 판매는 매번 ‘완판’이었다. 강승현 대표는 ”대부분 알고의 단골들이 주문한 것“이라며 ”고객들이 알고를 찾지 못하는 기간에도 멀리서 응원해주는 게 감사했고 잠깐이나마 돈이 굴러가는 게 감사했다“고 언급했다.
소시지로 팬데믹을 버티면서 강 대표는 알고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됐다. 그는 ”그동안 덕후 기질과 장사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왔다면 이제는 답을 찾은 느낌”이라며 “소시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자 고집스럽게 수제로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면서도 비즈니스적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단언했다.
알고는 다시 한번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직접 만든 소시지로 구성된 샤퀴테리다. 이를 시작으로 11월 중순부터 메뉴판은 물론이고 로고까지 모두 바꾼다는 계획이다. 맥주에 관해서는 직원에게 모두 일임하고 강 대표는 온전히 소시지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소시지 맛에 있어 집중하는 부분은 향신료의 활용이다. 펜넬, 큐민, 시나몬 등 서양 향신료의 밸런스를 잘 맞춰 소시지를 접하는 사람들이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그는 ”서양의 향신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소시지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도 소시지를 만들 때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개성을 부여하면서도 맥주와의 어울림을 고려하고 있다. 강승현 대표는 알고의 이탈리안 소시지와 IPA의 페어링을 추천했다. 이탈리안 소시지에 들어간 펜넬, 큐민의 화사한 향이 IPA의 홉 향과 잘 어울린다는 설명이다. 또 갈비맛 소시지와는 훈연 맥아로 만든 라우흐 비어, 매콤한 맛의 링귀샤 소시지는 단맛이 있는 사워와 함께 먹는 것을 추천했다.
내년에는 별도의 소시지 공방을 열어 온라인 및 도매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강승현 대표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소시지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라며 ”몇몇 수제 소시지 전문 식당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소시지 하나만큼은 알고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