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종량세 시대, 균형 잡힌 시장 확대 이룰 것 - 박정진 신임 한국수제맥주협회장
2020년.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수제맥주) 시장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맥주에 대한 과세체계가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변경되면서 맥주업계에 오랜만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제는 세금 걱정 때문에 투자를 주저할 필요가 없다. 맛과 품질로 대기업 맥주, 수입 맥주와 경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홈술ᆞ혼술이 늘어나고 배달 서비스가 진화하면서 업계의 발목이 잡혔다. 여기에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슈까지 불거져 ‘엎친 데 덮친 격’이다. 50년 만의 종량세 개정으로 얻은 기회를 발판 삼아 산업으로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소수가 즐기는 한 때의 유행으로 그칠 것인가.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한국수제맥주협회의 신임 회장으로 박정진 카브루대 표가 선출됐다.
5대 회장단 출범… “업계 모두 함께 간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주세법을 기반으로 한 맥주제조업자들의 단체로, 지난 2002년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했다. 2017년 단체명을 한국수제맥주협회로 변경한 후 주세법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정부와 정책 관련 소통을 하는 등 수제맥주 제조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2월 말 기준 48개 브루어리(주류제조면허 기준)가 정회원으로 가입돼있다.
지난해 12월 11일 한국수제맥주협회 정기총회에서 박정진 대표가 2020년부터 3년간 협회를 이끌어나갈 회장으로, 이지공 크래머리 대표가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향후 열릴 2020년 정기총회에서 정식 임명된다. 진주햄 대표도 맡은 박정진 대표는 지난 2015년 카브루를 인수하면서 맥주 업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지난 2017년부터 협회의 부회장을 맡아 활동해왔다. 신임 박 회장은 “수제맥주 생산자들의 면허가 분리돼 있고 각자 상황이 다르다 보니 협회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업계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조화롭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그동안 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주세법 개정 등 대정부 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 뛰었다.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정부와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그동안 집계되지 않았던 소규모 맥주의 생산량 및 매출 등의 데이터를 하나하나 확보하고 주세법이 바뀌었을 때의 영향을 시뮬레이션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 3년간 두 번의 굵직한 주세법 개정이 이뤄졌다. 하나는 2018년 세금경감혜택을 받는 담금·저장조 기준이 기존 75㎘에서 120㎘까지 늘어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업계의 숙원이었던 종량세 시행이다. 그는 “수제맥주 업계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회장직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내부 결속과 외연 확대 ‘두 마리 토끼’ 잡는다
그는 회원사 간 엇갈리는 이해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해왔다. 맥주 양조장들은 맥주 면허(중규모/소규모)와 생산량 등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이 다르다. 또 지역에 따라, 유통 방식 (케그, 병, 캔)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협회가 결속력을 다지고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 문제의 해결이 필수적이다. 박 회장은 “협회의 모든 결정이 이사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이사회 구성에서 묘수를 찾고자 한다”며 “면허, 생산량, 지역, 유통 방식, 오너의 국적 등을 세세하게 고려해 이사회를 구성함으로써 균형 있는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사회 구성원 각각이 자신들과 유사한 형태로 비즈니스를 하는 회원사들을 대변하면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협회의 신임 이사진 8명 역시 정기총회에서 확정된다.
이와 함께 협회의 외연 확대도 추진할 계획이다. 전국 120여 개의 양조장 중 수제맥주협회 회원사로 참여하는 업체 숫자는 절반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국내 수제맥주 업계 대표 단체라고 하기에는 회원사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회장은 “현재 협회 회원사들의 맥주 생산량이 전체 수제맥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협회로서 대표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원사 확대 작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직 협회에 들어오지 않은 양조장들이 가입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회원사에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박정진 회장은 “그동안 협회에서는 가입비를 없애고 생산량에 따라 회비의 차등을 두는 등 가입 허들을 낮추려고 노력해왔다”며, “앞으로 수제맥주 회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중규모, 소규모 양조장들이 모두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혜택을 만들어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일례로 협회는 병, 캔 공동구매를 기획하고 있다.
주력 아젠다는 ‘주류 온라인 유통ᆞ생맥주 주세 경감 기간 연장
박정진 신임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은 앞으로 대정부 활동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수제맥주 업계의 이익단체로서, 무엇보다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기재부, 국세청, 식약처 등 직접 관련된 기관에 적절한 지원을 요구하는 데 에너지를 모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업계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주류 온라인 유통’을 꼽았다. 박 회장은 “현재 상황에서 주류 온라인 판매 허용은 업계 모두에 이익이 되는 부분”이라며 “중규모 업체들은 물론이고 편의점, 마트 등 소매 판로를 개척할 여력이 없는 소규모 업체들에도 실질적인 혜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모든 상품이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시대에 주류만 금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AI,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되는 4차 산업 시대에 주류 업계에서 혁신적인 서비스가 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수제맥주협회가 참여한 가운데 규제 개혁위원회에서 온라인 판매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청소년 보호와 국민 건강 등의 이슈로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또 올해 들어 개정된 종량세에 따라 생맥주에 대한 세금이 증가하는 부분에도 주목하고 있다. 종량세로 생맥주에 대한 세금이 상승하면서 정부에서는 2년간 한시적으로 20% 경감해 주는 대책을 내놨다. 이 경감 기간이 연장되도록 대정부 설득 작업을 진행해나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수제맥주 문화를 전파하는 것도 협회의 중요한 역할이다. 더 많은 사람이 수제맥주를 접할 수 있도록 축제, 대회, 교육 프로그램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박 회장은 최근 유흥시장(펍, 식당 등 업장 판매)의 위축에 대해서는 우려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종량세가 시행되면서 수제맥주 가격이 내려가고 저변이 확대되면, 맛을 본 사람들이 다시 유흥시장으로 돌아가서 수제맥주를 찾게 될 것”이라는 그는 “지금은 수제맥주가 전체 맥주 시장의 2%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5년 내 4,000~5,000억 원 규모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EDITOR
황지혜 Jihye Hwang
맥주에 대해 쓰고 홍보하고 공부하며 정책 컨설팅업체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맥주가 주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