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브루잉을 통해 보는 효모의 일생
효모는 비록 우리가 하등하다 여기는 미생물에 불과하지만,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 어엿한 생물이다. 세포 하나에 불과한 조그마한 녀석이라도 생각보다 섬세한 부분까지 삶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로 효모는 살아간다. 그리고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러한 효모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일대기이다. 이들이 맥주를 완성시키기 위해 얼마나 고된 삶을 견뎌내는지, 홈 브루잉의 과정과 연관지어서 들여다보도록 하자.
낯선 환경에 놓이다
맥주에 들어가기 전,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효모는 크게 건조 효모와 액상 효모의 형태로 존재한다. 건조 효모란 말 그대로 효모를 건조시켜 수분을 제거함으로써 활성을 극도로 낮춘 상태의 효모를 말한다. 실제로 건조 효모를 손으로 만져보면 생물을 만지고 있다는 감각보단 굉장히 건조한 흙이나 가루약을 만지는 것과 별 다를 것이 없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대로 액상 효모는 다량의 효모를 소량의 액체에 담가놓은 형태로 판매된다. 콩 비지나 흙탕물 같은 느낌의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효모가 이렇게 두 가지의 형태로 판매되는 것은 저마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건조 효모는 가격이 싸고, 오래 보관해도 썩거나 변질되는 일이 적은 반면 액상 효모는 가격도 다소 비싸고, 유통기한이 짧다. 그럼 건조 효모가 더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차이는 이러한 것들이 아닌 바로 활성도와 다양성이다.
수분을 모두 잃고 건조된 효모는 마치 바람이 빠진 공 마냥 찌그러진 모습에 일종의 가사 상태에 빠진 채로 오랜 시간을 존재하게 된다. 그랬던 녀석을 갑자기 흔들어 깨우고선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하라고 닦달해봐야 일이 그렇게 바로 수월하게 이루어질 리가 만무하다. 탱탱한 몸을 되찾지도 못했는데 애를 낳고 알코올을 만들라니, 악덕 업주가 따로 없다. 때문에 건조 효모가 환경에 적응하고 활성을 띄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리며 효모가 충분한 수로 불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므로 발효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반면 액상 효모는 다소 긴 잠을 자고 있었던 정도이니 어느 정도 활성을 띄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건조 효모보단 환경의 변화에 손쉽게 적응하며, 덕분에 상대적으로 발효가 수월히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허나 건조 효모에게든 액상 효모에게든, 당분과 같은 영양이 풍부한 맥즙이라는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먹을 것이 너무 많기에 가혹한 환경이다. 편하게 놀다가 갑자기 어마어마한 양의 일거리를 받은 직장인마냥 급격한 영양 상태의 변화를 겪은 미생물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의 환경에는 금세 적응하곤 하지만 발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효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니만큼, 특별히 고도수의 술을 만든다거나 조금이라도 더 훌륭한 맥주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이 갭을 줄이기 위해 하루 전에 효모를 미리 약간의 당분이 있는 곳에 넣어둔다. 그렇게 되면 주변 환경 변화에 의한 효모의 스트레스도 줄어들게 된다.
번식을 시작하다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적응이 됐다 싶은 효모는 모든 생명체들의 최대 목적인 종의 번식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구매를 해서 넣은 효모의 양만 가지고는 맥즙 내의 당을 모두 분해하는 데에 한세월이 걸리므로 번식의 과정은 필수적이라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필요한 것이 바로 산소다.
효모는 산소가 있는 환경에서도 살 수 있고,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살 수 있는 미생물이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이, 산소가 있는 환경에선 같은 양의 영양 물질을 가지고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가 있게 된다. 중학교 과학 시간이나 체육 시간에 배우게 되는 유산소 호흡, 무산소 호흡의 차이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산소가 있는 상황에선 효모도 삶에 여유가 생기게 되며, 자신의 생존이 보장되니 번식을 할 여유도 생기게 된다. 때문에 산소가 있는 환경에선 더 활발한 번식을 하게 되고, 산소가 없는 환경에선 번식이 더뎌지게 된다.
그렇다고 산소가 너무 풍부하게 제공되면 알코올 발효가 늦어진다는 단점이 있다(그 이전에 맥주가 산화된다는 문제도 있고 말이다). 사실 알코올 발효는 산소가 없을 때가 돼서야 효모가 마지못해 선택하는, 효율이 매우 낮은 생존 방법이다. 때문에 산소가 존재한다면 호흡을 우선시하며, 굳이 효율 나쁜 알코올 발효를 억지로 진행하진 않는다. 그러므로 적당량의 산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절하게 연명하고 스러지다
어느 정도 번식이 이루어지고, 산소가 소비되고 나면 효모는 본격적으로 알코올 발효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효모는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아세트 알데히드, 디아세틸, 페놀 등의 이취 물질들도 생성하게 된다. 보통 미생물들의 경우엔 이렇게 닫힌 공간에서 오랫동안 서식하게 되면 자신이 생성한 물질들이 축적되고 스스로에게 독이 되어 활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효모들에게도 자신이 만든 알코올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독으로서 작용을 하나, 다행히 인간이 오랜 세월에 걸쳐 길러온 우수한 품종의 양조 효모들은 어지간한 알코올에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내성을 지니고 있다. 덕분에 이러한 환경 자체에는 적응이 가능하나, 문제는 영양의 고갈이다.
자신들의 주 에너지원인 탄수화물(당)이 사라지고 나면 효모는 살기 위해 새로운 먹잇감을 처절히 갈구하기 시작하며, 앞서 언급했던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취 물질들을 다시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효모가 직접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론 매우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고갈되고 난 이후가 문제다. 더욱 먹을 것이 없어진 효모는 결국 자신보다 먼저 스러져간 부모의 시체마저 분해하여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마음의 고통 때문인지(정확히는 지방산 등의 몇몇 물질 때문이다), 효모 시체를 먹고 효모가 생산해내는 부산물들은 굉장히 안 좋은 맛을 낸다. 때문에 활성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은 효모의 시체들을 적당한 시기에 맥주로부터 격리시켜 주곤 하는데 이를 두고 흔히 ‘통갈이’라 한다. 혹은 효모가 활성을 보이지 못하도록 차가운 곳에 보관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는 ‘콜드 크래싱’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 시기 이후의 효모들에겐 산소를 최대한 공급해주지 않는 것이 좋다. 굶을 대로 굶은 이 시기의 효모들에게 산소를 공급해주게 되면 ‘뭐는 못 먹겠나’하는 심정으로 기껏 만들어낸 알코올 마저 다시 분해하여 먹기 시작하니 말이다. 심지어 알코올을 먹고 생산해낸 물질들은 맛도 좋지 않다. 와인을 장기간 보관할 때 눕혀서 보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 때문에 병입 과정에서 맥주를 병에 따를 때 산소가 충분히 공급될 만큼 너무 격하게 따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이후 병에 들어간 효모들은 추가로 공급된 약간의 당분을 통해 탄산을 생성하고, 기아에 허덕이다 천천히 병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러한 효모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술이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외에도 효모가 인류에 선사해주는 즐거움과 이로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효모가 묵묵히 자기를 희생하며 아무 연고도 없는 인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