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브루잉의 스티븐 올솝 대표를 만나다
갈매기 브루잉의 시작과 변화
광안리에서 크래프트 맥주 전문 펍으로 출발한 갈매기 브루잉은 올해로 다섯 번째 해를 맞이했습니다. 양조사로 살기 전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던 스티븐 대표는 2011년부터 친구 라이언과 함께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온 홈브루어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몇 년 동안 일주일에 세 번꼴로 맥주를 만들 만큼 열정이 가득한 홈브루잉 파트너였습니다.
갈매기 브루잉의 초기 구성원이자 헤드브루어였던 스테판 전 대표는 어린 두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고국인 캐나다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금의 스티븐 대표가 갈매기 브루잉 컴퍼니를 인수하였고, 갈매기에서 먼저 양조 일을 시작한 친구 라이언을 헤드브루어로 임용하였습니다. 두 명의 홈브루잉 파트너가 갈매기에서 다시 만나 제대로 합을 맞추게 된 것입니다. 머지않아 자신들의 방식에 맞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레시피 등을 하나씩 다듬어가며 지금의 갈매기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인수할 당시 갈매기라는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해외에서는 갈매기라는 동물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부산의 로컬 브루어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산을 상징하는 갈매기라는 이름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매기의 새로운 맥주
갈매기 브루잉의 주력 맥주 스타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미국식 IPA였습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쓴맛이 지배적인 IPA가 아직 한국인의 입맛에는 대중적으로 즐길 만한 경향성을 띠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느끼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면 꼭 김치 생각이 나더라는 한국 지인의 이야기가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것이 ‘유자 고제’ 탄생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의 새콤하고 상쾌한 맛과 유사한 지점이 있는 사워 맥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민끝에 ‘유자 고제’의 레시피를 개발하여 선보이게 되었고, 그의 예상대로 유자 고제의 상큼하고 절제된 풍미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9월에 갈매기는 세 가지 맥주를 새로 출시했습니다. 한 가지는 갈매기 브루잉에서 만들어지는 최초의 라거 맥주이며 그동안만들어온 IPA 계열과는 색다른 시도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다음으로 두 가지 상반된 캐릭터의 IPA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뉴 잉글랜드 스타일 IPA로, 미국에서는 2년 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왔으며 최근 한국에서도 트렌디 한 맛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맥주 스타일입니다. 스티븐 대표는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라고 해서 무작정 뛰어드는 것보단, 레시피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도 있는 맥주를 내놓고 싶었기에 지난 2년 동안 뉴 잉글랜드 스타일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고민해왔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브룻 IPA’로, 앞선 스타일과는 상반되는 특징을 지닌 IPA입니다. “쓴맛이 덜하고 적당한 단맛이 있고 질감이 크리미한 뉴잉글랜드 스타일 IPA와는 정반대로, 아주 드라이한 IPA입니다. 물과 가까울 정도로 당도가 거의 없을 것이며, 아주, 아주 드라이할 것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두 가지 IPA가 완전히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다른 방식으로 양조했을 때 얼마만큼 다른 맥주가 나올 수 있을까 실험해보기 위해 상반된 두 가지 IPA를 동시에 내놓게 되었다고 스티븐 대표는 설명합니다.
“‘음양(陰陽)’ 철학과 맥을 같이 하는 컨셉입니다. 물론 재료도 중요하지만,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발효 과정과 만드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래된 소규모 양조장의 시설이 궁금해서 장비에 대해 물었습니다. 2014년에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시설 규정이 바뀌면서 양조 시설과 펍을 동시에 운영하며 생산한 맥주를 외부로 유통하는 모델이 가능해졌습니다. 그전까지 위탁 양조로 맥주를 판매하던 갈매기펍 역시 자체 양조시설을 꾸리게 됐고, 그렇게 중국 양조 설비 업체 티앤타이(Tiantai)의 국내 1호 브루어리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엔 티앤타이도 신생 회사였고, 갈매기는 지금도 티앤타이의 가장 초기 모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시설 관련 법이 개정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한국을 잠재적 시장으로 여긴 티앤타이 측에서 당시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했고, 갈매기는 국내에서 티앤타이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모델하우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티앤타이 시스템은 아주 초창기의 모델이기 때문에, 매우 노동집약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자동으로 돌아가는 대신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많죠.” 다른 한편, 스티븐 대표는 그동안 직접 경험한 티앤타이의 고객 서비스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시설을 사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티앤타이 측에 연락하면 굉장히 훌륭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해주었습니다. 티앤타이 측에서도 일종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들의 장비가 갖고 있던 한계점을 하나씩 알아가고, 해를 거듭하며 성장해갔습니다.”
그동안 티앤타이는 커다란 발전을 이뤘다고 스티븐 대표는 설명합니다. 그는 어떤 일이든 잘하기 위해서는 일단 시도하고,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선하는 것이 발전에 가장 좋은 방법이며 중요한 태도라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또한 그는 설비의 좋고 나쁨을 넘어 양조사 개인의 역량과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을 강조했습니다. “맥주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영어 속담에 '실력 안 좋은 사람이 도구 탓한다’라는 말이 있죠. 장비가 무엇인지 보다는 브루어 개인의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만의 레시피를 보유하고, 우리에게 할당된 도구나 장비를 어떻게 잘 운용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지요. 만약 지금보다 최신식의 장비를 사용한다면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생산할 수야 있겠지만, 결과물의 품질 자체는 동일할 것입니다.”
스티븐에게 맥주란
스티븐 대표는 오래전에 한국에 왔을 당시 1년간 외국에서 살아보자는 생각이었지만, 이내 한국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조 일을 하기 전에는 ‘할 수 있는 일'이었던 영어 선생님을 했지만, 홈브루잉이라는 열정적인 취미를 갖게 되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맥주란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항상 시작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맥주를 만들면서부터 타인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그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취미로 시작해서 지금은 직업이 되었지만, 제가 만든 맥주를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행복합니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