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맥주 산업 박람회
2019 브라우 베비알레 리뷰
BrauBeviale 2019 Review
세계적으로 독일이 전시 비즈니스 강국이라는 것은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누구라도 알 만한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후 침체되었던 경제 상황 속에서 엑스포, 전시회 등을 개최하여 분야별 산업을 부양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 그 배경이다. 이후 하노버,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뮌헨, 뉘른베르그 등 독일의 대도시에는 한국 코엑스의 몇 배에 이르는 커다란 전시홀이 지어졌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 전시회가 생겨났다.
맥주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 독일에서 세계적인 맥주 산업 전시회가 열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브라우 베비알레(BrauBeviale)는 1957년 밤베르크에서 시작하여 1978년 현재의 뉘른베르크로 옮긴 후 이어져오고 있다. 올해는 유럽 전역은 물론 미주,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에서 1,000개가 넘는 기업이 참가하고, 참관객 약 40,000명이 방문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방문한 브라우 베비알레는 훨씬 친근하게 느껴졌다. 비어포스트가 공동주최하는 대한민국 맥주 산업 박람회(KIBEX)를 준비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던 작년이 떠오른다. 아무 연고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던 작년은 정말이지 발길 닿는 데로 막연하게 돌아다녔지만, 올해는 달랐다. 왜냐하면 작년과 달리 ‘KIBEX’는 이제 ‘Beviale Family’에 속함으로써 협력 파트너가 되었기 때문이다.
브라우 베비알레를 기획 및 추진하는 회사 ‘뉘른베르크 메세’는 전 세계적으로 맥주와 음료 산업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미 Craft Beer Italy, Craft Beer China, Craft Drinks India, Feira Brasileira da Cerveja, BevialeMoscow 등 패밀리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올해 KIBEX를 파트너로 선정하여 업무 협약을 맺고 정식 패밀리 네트워크에 포함시켰다. 올해 3월 첫 번째 전시를 마친 신생 행사가 이처럼 파트너사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행사에 참석한 베비알레 관계자와 참가사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방문 동안, 곳곳에 붙은 행사 포스터에 KIBEX의 로고가 같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지친발 걸음에 힘을 주곤 했다.
수백 개의 탬룸, 수십 개의 레스토랑!
Make Something to Make Them Stay!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산업 전시회인 브라우 베비알레에 가면, 놀랍게도 수백 개의 탭룸과 식당이 눈 앞에 펼쳐진다. 작년에 처음 브라우 베비알레를 둘러볼 때 역시 전시 참가 회사들이 생맥주 디스펜서(추출기)를 갖다 놓고 방문객에게 맥주를 따라 주는 모습이 무척 생경했다.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부스 일부에 주방을 설치하고 방문객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레스토랑처럼 메뉴를 주문받아서 음식과 음료를 내어 준다. 전 세계에서 오는 자사 고객들에게 한 끼의 식사와 맥주를 대접하기 위해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수하여 시설을 설치하고 셰프와 웨이터를 고용한다.
산업 박람회에서 이게 말이 되나 싶은데, 오랜 세월 박람회나 전시회를 해온 이들이 택한 방식에는 이유가 있을 터. 자사 제품을 꾸준히 사용하고 간접적으로만 커뮤니케이션하던 고객사 담당자와 처음 만나는 자리가 바로 이곳 전시회이다. 방문객으로서는 때마다 부스를 떠나 커피숍이니 식당을 가거나 맥줏집을 찾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아예 참가사가 부스를 좀 더 넉넉히 확보해 방문객과 차분히 소통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음식과 맥주를 내주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
맥주 양조 장비를 만드는 회사나 몰트 회사, 홉 회사, 패키징 장비회사 등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맥주를 사이에 두고 부스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국에서 소책자나 상품을 들고 이야기 하던 모습과 자못 다르다. 맥주는 그렇게 호스트와 방문자,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한잔의 맥주가 손님이 머무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생산자는 맥주 한잔이 다 비워지는 동안 그들의 서비스와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패키징 장비 회사 크로네스(Krones)의 부스를 방문했다. 커다란 부스 크기에도 놀랐지만, 부스 한 켠에 주방을 설치하여 맥주는 물론이고 다양한 음식을 서비스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크로네스 장비를 사용하는 고객사의 맥주 라인업과 독일 전통 음식을 맛보는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크로네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크로네스 장비로 인테리어된 모던한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맥주를 즐기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독일의 대표적인 몰트 회사인 바이어만(Weyermann)의 부스는 언제나 방문객으로 붐빈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늘 사람이 많은데, 이곳에 가면 신선한 바이어만 몰트로 만든 맥주를 언제든지 마실 수 있다. 바이에른주의 대표 빵인 프리첼과 함께 신선한 맥주를 마시면서 바이어만의 몰트와 레시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산업 전시는 회사의 상품을 소개하고 잠재적 고객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경제적인 플랫폼이다. 전시 선진국의 대표적 맥주 산업 박람회인 브라우 베비알레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모습은 맥주를 통해 관계가 만들어지고 일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2020년 3월에 2회째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맥주 산업 박람회KIBEX 2020(Korea International Beer Expo)는 맥주를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 관계를 만드는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국내에서 많은 맥주 업계 관계자들이 불경기를 염려하고 있는 가운데 수제맥주 양조 회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맥주 산업 전시회인 KIBEX를 계기로 맥주 산업 생태계를 이루는 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함께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을 도출하고, 정보 교류를 통해 서비스 품질(Product Quality)를 향상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비자의 지속적인 니즈를 반영하는 안정적인 맥주 시장을 형성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맥주 대회, 품질 향상의 동력
Beer Competition Leads to the Improvement of Quality
유러피안 비어 스타는 2004년 출품 맥주 200여 개로 시작해 매년 꾸준히 성장했다. 16회째를 맞은 올해는 전 세계 47개국 맥주 2,483종이 출품되었다. 또한 28개국에서 온 맥주 전문가 145명이 이틀에 걸쳐 심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총 67개 카테고리에서 골드, 실버, 브론즈 트로피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독일이 골드 25개, 실버 24개, 브론즈 29개로 가장 많은 트로피를 받았고, 이탈리아가 골드 10개로 두 번째, 벨기에가 골드 7개로 세 번째로 트로피를 많이 받았다. 크래프트 맥주 붐을 이끌고 있는 미국은 골드 6개, 실버 10개, 브론즈 10개를 받았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골드 2개, 실버 2개를 받아서 아시아 국가 중에는 트로피를 가장 많이 받게 되었다. 한국은 실버 트로피를 수상했는데, 강원도 속초에 있는 양조장 크래프트루트의 ‘동명항 페일에일’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현장에서 직접 트로피를 수상한 크래프트 루트의 최훈진 양조사는 “이번 유러피안 비어 스타에서 유일하게 한국 대표로서 수상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페일에일 부문에서 수상하게 되어 더욱더 값진 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계기로 더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내년에는 한국 브루어리들이 더 많이 함께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브루어리의 입장에서 맥주 대회는 전문 심사위원들로부터 자사의 맥주에 대한 평가를 들을 수 있는 유익한 계기이다. 브루어리는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더 좋은 맥주를 만드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맥주 대회에 참가하는 진짜 의의일 것이다. 물론 상을 받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상을 받지 못해도 평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맥주 맛을 발전시키고 계속 도전하면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맥주 소비도 늘어나 사업이 발전하는 동력이 된다.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좋은 상품이 나와야 한다. 그를 통해 소비가 늘어나고 시장이 형성되어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고 재투자하여 더 좋은 상품이 나오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맥주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소비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특정 대기업과 특정 맥주 브랜드의 단편적인 맛을 소비하고 살아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다양한 맛을 향한 소비자의 욕구가 확인되었으며, 소규모 양조장들이 그에 발맞춰 고유의 레시피로 각양각색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다양한 맥주에 대한 경쟁과 품평을 통해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진정한 맥주 대회가 필요한 때 아닐까. 한국 맥주 업계는 2020년 시행될 맥주 종량세로 새로운 서막을 앞두고 있다. 한국 맥주의 성장기에 동기부여가 될 맥주 대회가 출현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