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막걸리가 만날 때
누룩을 넣은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기원전 4000년경의 유물에는 건조된 보리로 만든 빵에다 물을 부어 자연 발효 맥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동 지방의 고대 벽화 속 대롱으로 맥주를 마시는 장면 또한 양조 후 걸러지지 않은 밑바닥의 맥주 찌꺼기를 마시지 않기 위해서였죠. 옛날 맥주는 걸러내지 않은 막걸리에 물을 탄 맛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늘날 맥주의 재료로 쓰이는 홉으로 인해 쓴맛과 여러 가지 향이 추가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막걸리와 비슷한 느낌의 맥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맥주와 막걸리는 사촌이라고 불릴 만큼 닮은 점이 많습니다. 곡물로 만든 술이라는 점과 발효 방식에 있어 특히 그렇습니다. 이러한점을 활용해 몇몇 브루어리에서는 막걸리에 사용하는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맥주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맥주 효모 대신 누룩으로 발효시킨 맥주의 발효 원리와 특성을 알아보고, 와일드웨이브 브루잉에서 누룩을 넣어 만든 ‘누룩사워’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발효 과정으로 나뉘는 술의 종류
주류의 발효는 방식에 따라서 크게 단발효와 복발효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발효는 별도의 과정 없이 효모를 넣는것만으로 발효 시켜 술을 만드는 방식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포도주와 같은 과실주들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이러한 주류는 포도나 사과같이 과실에 들어 있는 당을 주원료로 사용해 발효시키기 때문에 별도의 당화 과정이 필요 없이 효모를 첨가해 술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맥주와 막걸리의 경우에는 주원료인 곡물에 들어있는 전분을 효모가 섭취할 수 있는 당으로 바꿔주는 당화 과정이 추가되므로 복발효에 해당합니다. 그중에서도 맥주는 당화 과정과 발효 과정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단행 복발효 방식, 막걸리는 당화와 발효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병행 복발효 방식으로 발효합니다.
맥주와 막걸리의 발효 방식은 어떻게 다를까?
그렇다면 막걸리와 맥주의 발효 방식의 차이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합시다.
맥주는 기본적으로 맥아, 물, 홉, 효모 네가지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맥주의 주재료인 맥아는 보리에 싹을 틔우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리 속의 전분을 효모가 섭취할 수 있는 당분으로 바꾸는 역할을 담당하는 효소가 만들어집니다. 당화 과정을 통해 맥아에 있는 효소가 전분을 분해하고, 이렇게 생성된 당분을 발효 과정을 통해 효모가 섭취하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며 맥주로 탄생하게 됩니다.
한편, 막걸리의 경우에는 당화와 발효에 필요한 역할을 누룩 속에 있는 누룩 곰팡이와 젖산균, 그리고 효모들이 대신합니다. 누룩곰팡이는 발효 과정 안에서 전분 분해효소와 단백질 분해효소를 생산해내는데, 이는 주원료에 있는 전분을 분해하고 포도당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당화과정에서 생성된 포도당을 누룩 속에 포함된 효모가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바꿔주며 술을 만들어냅니다.
즉, 맥주든 막걸리든 발효 방식에 차이점은 존재하지만, 원재료를 당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생긴 당분을 효모가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바꿔 술이 된다는 과정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맥주의 재료인 맥아를 당화하고 발효하는 역할로 누룩을 첨가해도 맥주가 탄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누룩이 어떻게 맥주에 들어갈까?
누룩은 밀이나 보리, 기장, 조 등 전분이 많이 포함된 곡물이라면 어떤 곡물로도 만들 수 있으나 보편적으로는 통밀을 빻아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분쇄된 건조 곡물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발효에 필요한 누룩곰팡이나 효모의 번식이 잘생성되지 않으므로 흔히 말하는 ‘누룩을 띄우는’ 과정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누룩을 띄우기 위해 전분이 함유된 곡물을 빻아 물에 개어낸 후 미생물의 증식에 적당한 온도를 맞춰 발효에 필요한 균이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누룩을 적정한 온도에 두면 가장 먼저 젖산균이 활발하게 자라는데, 이 젖산균의 도움으로 물이나 공기, 볏짚에 있던 잡균과 세균의 활동이 억제됩니다. 그리고 젖산균에 상대적으로 강한 누룩곰팡이와 효모의 활동이 늘어나며 이때 발생하는 열로 누룩 안의 수분이 서서히 마릅니다. 시간이 지나 누룩 속이 일정 온도를 넘으면 효모가 번식을 멈추는데 이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어 누룩 안의 수분이 모두 증발해 딱딱하게 건조되면 누룩을 띄우는 과정이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든 누룩을 맥주 발효 시 넣어 적정한 온도에서 일정 기간 숙성시키면 ‘누룩 맥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맥주효모를 이용한 발효 방식과 누룩을 넣은 발효 방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발효를 돕는 미생물을 컨트롤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맥주효모를 사용해 맥주를 만들 때는, 당화 이후 보일링(고온으로 일정 시간 끓이는 과정)을 통해 맥즙 안에 남아있을 수도 있는 미생물을 완전히 살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를 통해 발효 시 맥주 효모 이외의 다른 균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았던 오염된 맛(off-flavor)이 나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합니다.
반면, 누룩을 넣은 맥주는 발효할 때 누룩안에 있는 효모뿐만 아니라 다른 균도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누룩 속에 있는 각종 곰팡이와 세균들은 적정한 온도를 맞춘 발효조에서 각자의 풍미를 이끌어냅니다. 통제받지않은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누룩맥주의 가장 큰 매력인 셈이죠.
누룩 맥주를 만들 때 주의할 것
사실상 오랜 기간동안 대를 이은 비법으로 만든 누룩을 직접 맥주 양조장에서 직접 띄워서 맥주 안에 넣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므로 만들고자 하는 맥주에서 의도하는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 누룩을 찾아야 합니다.
누룩은 각종 균이 자연스럽게 침투해서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각 양조장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에 따라 만든 막걸리의 맛과 향도 각각 다릅니다. 이는 맥주 중 람빅과 같이 야생 효모로 발효시키는 맥주를 생산할 때 양조장 내부에서 떠다니는 야생효모를 활용해 발효시키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람빅 양조장은 각종 균이 잘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각 람빅마다 개성 있는 맛이 생겨납니다. 막걸리도 각 양조장의 누룩마다 특성이 매우 다르므로, 막걸리 양조장에 직접 방문하여 누룩을 제조하는 방식과 환경, 그리고 숙성하는 방법등을 파악하여 의도한 맥주와 맞는 누룩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맥주와 막걸리의 양조 방식에 차이가 있으므로, 누룩을 당화과정이 아닌 발효 과정에서 넣어야 합니다.
누룩 속 누룩곰팡이에서 당화 효소가 생성되어 활성화되는 온도는 50~60°C입니다. 그러나 발효를 돕는 효모의 경우에는 25~30°C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35°C가 넘어가면 사멸합니다. 누룩에 당화 효소가 있다고 해서 당화과정에서 누룩을 넣게 되면, 당화를 성공적으로 마치더라도 다음 단계인 끓임 과정에서 누룩 속의 효모가 모두 사멸합니다. 그러므로 끓임 과정이 끝나고 누룩을 넣은 후 효모가 활동할 수 있는 온도로 맞춰줘야만 누룩의 풍미가 나는 맥주를 성공적으로 양조할 수있습니다.
국내의 누룩 맥주 소개: 와일드 웨이브 누룩 사워
와일드 웨이브는 작년에 진행한 누룩 사워 프로젝트1에 이어 올해도 부산의 금정구 금정산성마을에 위치한 금정산성 막걸리 양조장 누룩을 활용해 누룩 사워 프로젝트2를 선보였습니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사워 막걸리’라고 불릴 정도로 청포도 향과 새콤한 맛이 특징적입니다. 와일드웨이브에서는 이러한 금정산성 막걸리 누룩의 특성을 사워 맥주의 신맛을 내는데 활용했습니다.
와일드웨이브의 이준표 양조팀장을 통해 누룩을 사용한 누룩사워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첫 번째 누룩 사워 프로젝트는 베를리너 바이세 스타일로, 알코올 도수 4도의 가벼운 산미를 띠는 스타일로 양조했습니다. 처음에는 젖산 발효를 해 신맛을 만들고 이후에 누룩을 추가해 발효시켰습니다. 이때 나왔던 특징은 본래의 막걸리와 비슷하게 약간의 매실 향이 났고, 복숭아나 살구 같은 핵과류의 향도 났습니다. 하지만 이 효모의 특징만으로는 약간 부족하다고 판단해 부재료로 파인애플을 추가해 막걸리 효모의 산미와 열대과일의 맛을 밸런스를 맞춰서 양조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누룩 사워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막걸리와 비슷하게 도수를 8도까지 올린 맥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 맥주와 비슷하게 가벼운 신맛을 베이스로 하여 충분한 바디감을 주었고, 국산 전통주에 영감을 받아 국화와 생강, 그리고 고추를 넣어 풍부한 맛을 더했습니다.”
와일드 웨이브는 양조장이 위치한 부산 지역의 전통 막걸리인 금정산성막걸리 누룩을 사용해 지역 막걸리와의 협업을 이뤄냈습니다.
이준표 와일드웨이브 양조팀장은 “앞으로도 한국적인 재료인 누룩을 이용하여, 양조장만의 누룩의 맛과 향을 살리고 다양하고 독창적인 맥주를 만들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며 “나아가 ‘Korean Wild Beer’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증가하면서 각 브루어리의 개성에 맞게 새로운 시도를 거친 맥주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쌀을 넣은 맥주,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한 맥주, 그리고 특별한 홉을 넣어서 만든 맥주들은 이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누룩을 넣은 맥주는 아직 많은 양조장에서 시도하지 않고 있지만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늘어나고 크래프트 막걸리 양조장들이 이전에 비해 많이 생겨나면서 누룩을 활용해 발효시킨 맥주 또한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앞으로 꾸준히 누룩 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들이 생겨난다면 전통주와 크래프트 맥주가 함께 연구하고 발전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