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바나 X 이태원 브루독 첫 컬래버레이션
영국맥주 ‘덕후’ 두 양조사의 합작
콩글리시 에일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 컬래버레이션은 많이 시도되고 있다. 특히, 맥주와 미술이나 맥주와 음악의 컬래버레이션은 이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양조장과 양조장 간의 컬래버레이션이 가장 설레고 기다려질 것이다.
문래동의 비어바나와 이태원 브루독의 컬래버레이션은 문래동에서 새롭게 양조를 시작하는 비어바나와 영국 크래프트 맥주를 대표하는 브루독의 국내 1호 브루펍 이태원 브루독에서 함께 진행한다는 사실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두 양조장의 합작으로 만든 맥주 ‘콩글리시 에일’은 맑은 갈색을 띠는 브리티시 스트롱에일이다. 비스킷, 견과류와 같은 몰트 베이스에 허브계열의 홉향, 그리고 은은한 영국 효모의 과일 향이 어우러지는 이 맥주는 알코올 도수 7.5도로, 추운 겨울 몸을 따스하게 해줄 윈터워머(winter warmer)이다. 비어바나의 강대인 양조사와 이태원 브루독의 민성준 양조사가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한 배경과 영국 맥주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말하는 영국 맥주의 매력에 대해서 들어봤다.
향수가 담긴 컬래버레이션
강대인 양조사와 민성준 양조사는 이번 컬래버레이션을 하게된 배경으로 입을 모아 크래프트펍 ‘사계’의 향수를 언급했다. 수많은 맥덕들이 거쳐 간 크래프트펍 ‘사계’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많은 업계종사자를 배출한 펍이기도 하고 여전히 맥덕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크래프트펍이다. 두 양조사는 이곳에 3일 차이로 들어와 일을 시작했고, 그래서인지 마치 동기처럼 가깝게 지내며 일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각자 다른 브루어리의 양조사가 되어 현재는 맥주 커리어를 함께 쌓는 동료로 지내고 있다. 강대인 양조사는 맥주 업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오는 동안 컬래버레이션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성준 씨와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 와중에 성준 씨가 함께 양조를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꺼냈고, 그 계기로 이번 비어바나와 브루독의 컬래버레이션이 성사될 수 있었다. 첫 컬래버레이션 맥주가 영국 맥주로 정해지기까지는 두 양조사의 영국 맥주 사랑이 한 몫했다. 민성준 양조사는 작년에 브루독에 입사하고 교육차 영국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연수를 통해 영국 맥주들을 많이 마시고 영국 효모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만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강대인 양조사는 그가 영국 연수를 다녀온 뒤 영국 맥주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더 깊어졌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민성준 양조사도 누구와 영국 맥주를 만들게 된다면 그 매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만들고 싶었다. 강대인 양조사는 알아주는 영국 맥주 덕후이기도 하고 몇 해 전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영국 맥주를 가까이서 접한 경험이 있다. 현재 국내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는 미국식으로 재해석된 맥주들이 최신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스타일로 변형된 맥주가 자극적이고 개성이 있어서인지 많은 사람이 영국 맥주를 마실 때 상대적으로 캐릭터가 약하고 밋밋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특히 전통적인 영국 맥주는 강한 풍미를 갖고 있지 않아 최근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지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두 양조사는 이번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차분하면서도 정돈된 영국 맥주만의 매력을 알리고 싶었고 그렇게 콩글리시 에일’이 탄생하게 되었다.
맥주계의 ‘평양냉면’, 영국 맥주
영국 맥주의 매력은 무엇일까? 강대인 양조사는 영국 맥주가 평양냉면처럼 계속 먹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평소 ‘영국 맥주가 싫어요!’를 외치는 필자는 이번 기사를 쓰면 서 영국 맥주와 친해지기 위해 1일 1 영국 맥주를 실천했으나 짧은 기간내에는 역시 영국 맥주의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래서 영국 맥주의 진정한 매력이 무엇인지 두 양조사에게 물어봤다. 민성준 양조사는 영국 맥주는 차분하고 마치 차처럼 반복 시음성이 좋아서 많이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한다. “어떤 음식이든 음료든 맛과 향이 전면에 강하게 드러나는 것 들이 있지만 후미에 은은하게 남는 것들도 있는데, 영국 맥주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많이 마실 수 있고 그 깊이마저 출중하니 좋아합니다.”
강대인 양조사는 처음부터 영국 맥주를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영국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시절 다른 외국산 라거보다 영국 전통 에일의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자주 마셨다. 특히 이기중 저자의 <유럽 맥주 견문록>을 읽고 갔었는데, 케스크 에일은 영국에서만 먹을 수 있어서 꼭 먹어야 한다고 적혀 있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마셨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영국 맥주의 매력을 잘 몰랐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도 영국 생활에 대한 향수가 있어 가끔 마시기는 했지만,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가 맥주를 좋아하는 지인들끼리 홍콩에 놀러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마신 영국 맥주가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다 보니 영국 전통 맥주를 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여행 기간 자주 마셨다. 그는 영국 맥주의 매력이 모든 재료가 다 주인공이 되어서 조화로운 점이 라고 말한다. 크래프트 맥주 트렌드에 발맞춰서 영국 맥주에 미국 홉을 사용한 맥주도 좋아하는데, 그런 맥주들은 영국 효모나 몰트의 캐릭터가 살아있으면서도 미국 홉의 반짝함이 살아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크래프트 맥주의 선두 주자가 미국이기에 시간이 날 때면 미국을 우선으로 가고 있는데, 가장 최근 영국에 다녀온 민성준 양조사가 누구보다 부럽다고 한다.
‘콩글리시 에일’은 생맥주 서빙에 흔히 사용하는 탄산 서빙이 아닌 질소와 핸드펌프를 활용한 서빙 방식으로 제공된다. 영국맥주만의 차분한 매력을 더욱 잘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그 두 가지 방식으로 서빙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의 드래프트 시스템과 달리 영국의 전통에일 서빙 방식은 비어 엔진의 핸드펌프를 사용하여 맥주를 추출하는 것을 고수한다. 맥주에 인위적인 탄산을 주입하지 않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맥주를 서빙하는 전통방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바로 질소 혼합가스를 이용한 서빙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은 모두 크리미한 질감과 낮은 탄산감을 가지지만, 핸드 펌프 서빙의 경우 서빙 중 유입되는 산소에 의해 시간의 변화에 따라 맥주의 맛이 섬세하고 미묘하게 변화한다. 반면 질소 서빙의 경우 맥주 상태의 변화가 거의 없으며 전체적인 캐릭터가 대체로 좀 더 다듬어지는 성질을 띤다고 한다. 그런 차이 때문에 영국 현지에서도 서빙 방식에 있어 찬반이 갈리며, 각 방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재미있는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콩글리시 에일’ 2배로 즐기기
현재 이태원 브루독에는 질소 탭을 이용한 방식, 비어바나에서는 핸드펌프를 이용한 방식으로 ‘콩글리시 에일’을 서빙하고 있다. 강대인 양조사는 “직접 방문해서 두 방식의 차이점과 장단점을 즐겨보고, 주변 분들과 경험을 공유하여 재밌는 토론의 장이 열리면 아주 재밌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양조사는 이번 맥주에 ‘나무 밑동’ 맛을 구현하려 노력했다.
나무 밑동이라는 단어는 민성준 양조사가 시음기를 작성하던 시절 즐겨 쓰던 단어이다. 정확히는 숲속, 나무 근처 흙의 풍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자주 쓰이는 시음 용어로는 ‘earthy’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국 홉과 효모의 조합이 이런 풍미를 잘 구현해 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맥주에서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 구현되지 않아 살짝 아쉽다고 한다. ‘콩글리시 에일’을 시음할 때 ‘나무 밑동’의 맛을 생각해보면서 시음해보자. 그가 내고자 의도했던 ‘나무 밑동’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도 분명히 경쟁은 있다. 특히, 최근 단기간에 많은 브루어리와 펍이 생기면서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두 양조사는 이럴 때 일수록 서로 상생을 목표로 경쟁보다는 파이를 키워나가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대인 양조사는 “어찌 보면 서로 경쟁사이기도 하지만, 경쟁을 뛰어넘어 기술교류도 하고 레시피도 함께 짜는 것이 크래프트 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민성준 양조사는 “서로 양조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데 컬래버레이션 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양조장과 양조장사이의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재미있는 맥주들이 더 많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두 양조사의 영국 맥주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이태원과 문래동으로 가보자. 추위를 잊을 만한 매력적인 영국 맥주가 기다리고 있다.
EDITOR_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