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어울리는 술이 어디 소주 뿐이겠습니까 맥주와 다른 술의 결합
술 좋아하는 사람은 보통 단 한 종류의 술만 먹진 않는다. 술을 너무나도 좋아하여 술 만드는 일까지 하고 있는 양조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때문에 ‘실험정신’을 모토로 삼는 크래프트 맥주 업계는 굳이 같은 맥주뿐만 아니라 다른 술과의 결합도 꾸준히 시도해왔다. 그렇다면 그 결과물들은 과연 어땠을까? 몇 가지 예시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맥주 X 소주
맥주와 소주의 조합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소맥’은 굉장히 일상적이긴 하지만, 단순히 둘을 섞는 것 이외에 정말 제대로 된 ‘소맥’도 최근에 탄생했었다. 감압증류방식 등 다양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소주를 만들어 내는 회사 ‘화요’와,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어내는 부산의 ‘고릴라 브루잉 컴퍼니’가 만들어낸 ‘배럴 에이지드 킹콩’이 그 주인공이다.
‘고릴라’의 ‘킹콩’은 11%라는 높은 알코올 도수를 만들기 위해 스파징도 없이첫 맥즙만 이용하여 만든 맥주로, 진득하고 풍부한 풍미를 지닌 임페리얼 스타우트다. 그리고 ‘화요’의 ‘화요X.프리미엄’은 버번 배럴에 ‘화요 41’의 원액을 넣어 5년 이상 숙성시킨 싱글 라이스 목주(?)이다. ‘배럴 에이지드 킹콩’은 ‘화요X.프리미엄’을 숙성하고 난 배럴에 ‘킹콩’을 넣고 1년간 숙성시켜서 만든 맥주로, 이들의 조화 덕에 ‘배럴 에이지드 킹콩’은 버번의 중후함과 소주의 향긋함,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풍부함이 동시에느껴지는 매력 넘치는 맥주가 되었다. ‘배럴 에이지드 킹콩’은 1월 26일에 처음으로 공개되어 많은 맥덕들의 사랑을 받는 중이다. 500L 소량만 생산된 제품이니 금방 모습을 감추겠지만, 매년 지속적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하니 이번 기회를 놓친 분들은 내년을 기대하시길
맥주 X 와인
세계적인 발효주의 양대 산맥인 와인과 맥주는 언뜻 상상하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들어가는 재료부터 맛에 서도 겹치는 부분이 없으며 탄산감, 무게감 등 공통점을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다수 맥주에 해당하는 얘기지, 와인과 어울리는 맥주 역시 당연히 존재 한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사실 벨기에 등 포도 재배가 어려운 유럽 북부 지역에선 오래전부터 와인을 모방한 맥주를 만들어 왔다. 대놓고 ‘레드 와인 맛이 나는 맥주’라고 홍보를 하는 플랜더스 레드 에일과 수도원에서 만들던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들은 애초에 와인과 흡사한 성격을 지니도록 만들어진 맥주이니, 와인 배럴에 숙성시키는 등의 컬래버레이션 또한 종종 이루어졌다. 보르도 와인 배럴에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을 넣어 숙성시킨 ‘드 스트루이스(De Struise)’의 ‘패넷포트 스페셜 리제르바(Pannepot Special Reserva)’가 국내에 수입된 이러한 예시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예상 가능한 컬래버레이션 말고, 조금 독특한 컬래버레이션 또한 존재한다. 와일드 에일과 내추럴 와인의 조합이 가장 대표적이다. 둘은 야생 균의 풍미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시큼한 신맛과 어딘가 모르게 쿰쿰한 발효취, 복합적인 풍미가 공통적인 매력으로 꼽힌다. 그래서 포도를 넣은 와일드 에일을 마시면 정말 내추럴 와인을 마시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게다가 아예 포도 농장, 와인 양조장과 협업을 하여 만든 맥주도 있으니 ‘파이어스톤 워커(Firestone Walker)’의 배럴 웍스(Barrel Works) 시리즈 중 하나인 ‘페랄 비니페라(Feral Vinifera)’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페랄 비니페라’는 ‘파이어스톤 워커 배럴 웍스’의 근방에 위치한 데이비드 워커(David Walker)의 포도원에서 수확한 포도를 이용하여 만든다. 포도원에서 수확하고 압착까지 한 포도즙을 밀 기반의 맥즙과 섞어 여러 야생 균들을 접종시키고 프렌치 오크 배럴에 숙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Andrew Murray Vineyards의 소유주이자 와인 메이커인 Andrew Murray와 협력하여 신중하게 발효와 숙성, 블렌딩을 진행했다고 한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슈냉 블랑(Chenin Blanc), 오렌지 머스캣(Orange Muscat)을 각각 넣고 숙성시킨 맥주 3종과 ‘파이어스톤 워커 배럴 웍스’의 ‘브레타 바이세(Bretta Weisse)’를 혼합하여 만든 이 맥주는 파인애플, 구아바, 망고, 메이어 레몬, 구스베리 등의 다채로운 과일 풍미와 시큼한 신맛, 야생 효모의 쿰쿰함, 배럴의 탄닌과 나무 풍미 등이 뒤섞인 매력 있는 맥주이다.
맥주 X 위스키
맥주와 위스키는 사실상 형제나 다름없다. 둘 다 보리라는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들이니 말이다. 보리의 풍미가 일맥상통하는 측면도 있고, 실제로 맥주와 위스키를 같이 먹어도 꽤나 잘 어울리기에 이 둘의 조합은 이전부터 많이 사랑 받아왔다. 그렇기에 맥주와 위스키가 컬래버레이션을 이룬 경우는 그 시초라 볼 수 있는 ‘구스 아일랜드(Goose Island)’의 ‘버번 카운티 브랜드 스타우트(Bourbon County Brand Stout)’ 이래로 너무나도 많다. 넓은 의미로 보면 위스키 배럴 에이징을 거친 모든 맥주가 여기 포함될 것이고, 그 중엔 아예 특정 위스키 회사와 계약을 맺고 배럴을 공급받는 브루어리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너무도 많을뿐더러 여러분도 이미 자주 접해보셨을 테니 굳이 사례를 나열하진 않겠다. 대신 좀 특별한 경우를 알아보자.맥주와 위스키의 컬래버레이션의 경우, 대부분 맥주에 위스키의 특성을 입히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위스키는 만드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위스키에 맥주의 특색을 입히는 것보다 맥주에 위스키의 특색을 입히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외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바로 영국 스코틀랜드의 프리미엄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 (Glenfiddich)’의 ‘IPA Experiment’다.
‘글렌피딕’의 ‘IPA Experiment’는 글렌피딕의 몰트 마스터 Brian Kinsman과 위스키 증류소 ‘스페이사이드(Speyside)’의 Seb Jones가 협업하여 만든 알코올 도수 43%짜리 위스키이다. 하지만 이름에 ‘IPA’가 들어있단 것에서 알 수 있듯, 홉이 사용된 위스키라는 점이 특징이다. ‘IPA Experiment’는 Brian Kinsman이 캐스크를 고르고, 평소 맥주 양조를 좋아했던 Seb Jones가 3가지 레시피를 구성했으며 그 중 전통적인 영국 홉을 사용한 레시피를 선택하여 만들어졌다. 단순히 원주에 홉을 넣기만 한 것이 아니라 드라이호핑까지 하며 제대로 IPA스럽게 만든 이 위스키는, 비슷한 도수의 다른 위스키보다 좀 더 가벼운 인상에 청사과와 배를 연상시키는 과일 풍미와 더불어 오렌지, 꽃 등의 홉 풍미가 은은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아무래도 증류와 장기 숙성을 거치다 보니 우리가 잘 아는 IPA만큼 강렬한 풍미를 보여주진 않는가 보다.
맥주 X 미드
미드(Mead)는 오랜 과거부터 꾸준히 존재해온 꿀로 만든 발효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굉장히 낯선 술이지만 말이다. 전통적인 미드어리(Meadery)는 자신들만의 레시피를 꾸준히 유지하며 전통의 맛을 지켜가지만, 최근 생긴 젊은 미드어리는 미드와 다른 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영역의 미드를 창조해내기도 한다.
맥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핫한 미드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슈퍼스티션(Superstition)은 맥주 브루어리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자주 진행한다. 일반적으론 맥주에 꿀을 넣는 방식으로 협업을 하는데, 앱노멀(Abnormal)과 협력하여 만든 임페리얼 허니 스타우트인 Goodbye Tomorrow, 바틀 로직(Bottle Logic)과 협력하여 애리조나의 야생화를 이용하여 만든 버번 배럴 숙성 임페리얼 스타우트 BLBC017-SM: Montezuma Cliffs – Arizona, 웨렌 하우스(Wren House)와 협업하여 만든 뉴 잉글랜드 IPA Colony Collapse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미드에 맥주의 특성을 입힌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마찬가지로 핫한 미드어리인 B. 넥타(B. Nektar)가 종종 만들곤 한다. 시가 시티(Cigar City)와 협력하여 코코넛, 카카오닙스, 찻잎과 오크칩을 넣고 만든 미드인 Camp Braggot Ghost Stories라던가, 뉴 홀란드(New Holland)의 버번 배럴 숙성 임페리얼 스타우트인 드래곤스 밀크(Dragon’s Milk)를 숙성시켰던 배럴에 체리 치폴레(Cherry chipotle) 고추와 카카오닙스, 미드를 넣고 숙성시킨Dragons Are Real이 그 예시이다. 참고로 뉴 홀란드에서도 B. 넥타가 미드를 숙성시켰던 배럴에 다시 맥주를 넣고 숙성시켜서 만든 맥주도 있다. 상호 간에 굉장히 경제적인 컬래버레이션 아닌가.
이외에도 맥주와 다른 술의 컬래버레이션은 많고 많다. 맥주에 샴페인을 접목해서 만든 리얼 샴페인 맥주 데우스(Deus)라던가, 바나 탈린(Vana Tallinn)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에스토니아 전통 리큐르를 접목해서 만든 포할라(Pohjala)의 발틱 포터 사얀드(Sajand) 등이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맥주의 넓은 맛 스펙트럼과 무한한 매력 덕분에 이렇게 다양한 주류와 컬래버레이션을 이뤄 왔던 것이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중엔 또 어떤 재밌는 컬래버레이션이 생겨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지 기대될 따름이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