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CP 저지 vs 씨서론 vs 되멘스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산업은 태동 이후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전국에 브루어리의 수만 해도 120여 개에 다다르며 크래프트 맥주 펍 또한 우후죽순처럼 무수히 생겨나고 있다. 이에 따른 당연한 수순으로 크래프트 맥주 관련 일자리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구직자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구인자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인재가 업무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 자격증명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맥주 관련 자격시험이 치러지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고, 자격증을 지닌 사람들도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는 만큼 자격증명 또한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나,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 가장 대두되는 자격증명은 BJCP 저지(The 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 Judge), 씨서론(Cicerone), 되멘스 비어소믈리에(DOEMENS Biersommelier) 정도가 꼽힌다. 이들은 남들이 보기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The 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
‘맥주 심사관 인증 프로그램’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The 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이후 BJCP)’은 홈브루잉 맥주를 심사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홈브루잉 맥주 대회에서 맥주 심사를 볼 수 있는 저지(Judge)를 양성하기 위한 비영리단체이다. BJCP측에서 주최하는 저지 시험(BJCP Beer Judge Exam)을 보게 되면 점수와 실적에 따라 각기 다른 저지의 등급이 부여되며, BJCP 저지라는 타이틀을 부여받는다.
BJCP 저지는 홈브루잉 맥주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하는 사람이다보니 맥주 스타일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양조 과정에 대한 이해, 맥주의 결함(Flaws)에 대한 이해, 맥주의 맛과 향의 표현에 대한 이해 등이 충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때문에 맥주를 정확하게 판별하는 능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 양조사 및 홈브루어 등이 주로 BJCP 저지 획득을 위해 공부하곤 한다. 또한 단순 지식뿐 아니라 감각적인 능력도 필요하다 보니 단기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정도로는 높은 등급의 저지 점수를 획득하기가 힘들다. 지속적으로 맥주 시음과 양조에 관심을 가지고 맥주 평가지(Score Sheet)를 작성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BJCP 저지 시험은 우선 BJCP Entrance Exams을 치러야만 볼 수 있다. Entrance Exams은 온라인으로 치러지며 시간은 60분, 문제 수는 180개다. 시험료는 BJCP가 비영리단체인 만큼 10달러로 저렴한 편이나 하루 1번이라는 제한이 걸려있다. OX 문제와 객관식으로 이루어져있으며 합격 여부는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바로 알려준다. 정확한 점수는 알려주지 않지만 말이다. 다만 입학시험이라고 해서 난이도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문제가 다 영어이다 보니 영어가 익숙지 않은 사람은 60분에 180문제를 다 보는 것부터가 문제이며, 문제 수가 많은 만큼 알고 있는 것도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이 단계를 통과했다고 한들 아직까진 BJCP저지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BJCP 저지의 자격을 얻고 싶다면 Judging Exam을 보아야 한다.
Judging Exam은 6가지의 무작위 스타일의 맥주를 먹고 맥주 평가지를 작성하는 시험이며 현재 한국에선 1년에 한 번 꼴로 열리고 있다. 맥주는 일반적인 상업 맥주를 제시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두 가지 맥주를 섞어서 준다든지, 오프 플레이버(Offflavor)를 섞어서 준다든지, 심한 경우 홈브루잉 맥주를 시험 문제로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험생들은 BJCP가 제시하는 기준에 얼마나 맞게 맥주 평가지를 작성했는지, 시험관 3명의 답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등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게 된다. 이때 60점 이상 획득 시 Recognized Judge, 이하일 경우엔 Apprentice Judge로 분류된다. 이 시험에서 70점 이상을 획득하고, 홈브루잉 맥주대회에서 실제로 저지로서 참가해 저지 포인트를 5포인트 이상 쌓게 되면 Certified Judge 자격이 부여되며, 이 시험에서 80점 이상을 획득하고, 저지 포인트를 10포인트 이상 쌓은 후에 BJCP Beer Judge Written Proficiency Examination을 추가로 통과하게 되면 점수에 따라 National, Master, Grand Master Judge의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처럼 BJCP 저지는 능력에 따라 등급이 세분화되어있다.
BJCP가 비영리단체인 만큼, BJCP 저지가 되어 홈브루잉 맥주 대회에서 저지로서 활동한다 하더라도 별다른 금전적 이득이 있진 않다. 어디까지나 더욱 공정하고 질 좋은 홈브루잉 대회를 많이 개최하여 사람들의 홈브루잉에 대한 관심도를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것이 BJCP의 목적이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BJCP 저지인 셈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JCP 저지를 목표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BJCP의 목적에 동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BJCP 저지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고, BJCP 저지들의 맥주에 대한 지식과 맥주를 판단하는 능력이 업계에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The Cicerone Certification Program
씨서론(Cicerone)은 본래 ‘관광 안내원’이란 뜻으로, 맥주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자격증명이다. 와인의 소믈리에와 통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으며, 실제로 ‘Tasting Beer’라는 유명 맥주 저서에선 ‘와인 소믈리에와 동등한(Equivalent) 프로그램’이라고도 소개하고 있다. 맥주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따라 가장 기초단계인 Certified Beer Server부터 다음 단계인 Certified Cicerone, 그 윗 단계인 Advanced Cicerone, 마지막 최고의 단계인 Master Cicerone으로 구분되어 있다.
첫 단계인 Certified Beer Server는 각 맥주 스타일에 대한 간략한 배경 지식,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의 양조, 맥주 보관, 서빙 방법 등 맥주 전반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으면 획득할 수 있는 자격이다. 난이도가 낮기에 맥주를 꾸준히 마셔온 사람이라면 크게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으며, 때문에 ‘Cicerone’이라는 칭호도 부여되지 않는다. 2단계인 Certified Cicerone을 보기 위한 통과 의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Certified Beer Server 시험은 온라인으로 언제나 볼 수 있으며, 30분에 60문제가 주어지고 전부 객관식이므로 시험에 크게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된다.
다음 단계인 Certified Cicerone은 당연하게도 Certified Beer Server보다 훨씬 폭넓고 깊은 맥주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Cicerone 홈페이지에선 맥주 및 맥주 서비스에 대한 견고하고 다방면의 지식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맥주의 품질과 정체성을 평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을 Certified Cicerone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500명, 우리나라엔 25명의 Certified Cicerone이 있다.
Certified Cicerone은 필기, 테이스팅, 데모시험으로 이루어진 4~5시간짜리 오프라인 테스트를 거쳐야만 획득할 수 있다. Certified Beer Server와의 난이도 차이가 크므로 많은 준비가 이루어져야하며, 사람에 따라 1년에서 1달까지 준비 기간에 많은 차이가 난다. 난이도가 다소 높다 보니 합격률은 33% 정도로 다른 시험에 비해 꽤 낮은 편이나, 그만큼 전문성을 인정받는 편이다. Cicerone은 재료부터 양조, 보관, 드래프트 시스템, 서빙과 맥주 스타일, 음식과의 궁합 등 맥주의 거의 모든 분야의 어느 정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맥주와 관련된 거의 모든 직종에 적합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만 BJCP 저지와 마찬가지로 하나부터 열까지 독학으로, 그것도 영어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러니 스터디를 맺어 공부하는 것이 좋고, 사정이 안 돼 독학으로 공부를 하게 되더라도 그만큼 배우는 것이 더 많을 테니 큰 부담을 가지진 말자. 보다 자세한 Certified Cicerone 시험에 대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비어포스트 Batch 28호를 참고하도록 하자.
Doemens Bier Sommelier Program
되멘스는 1965년 독일에서부터 시작된 맥주 교육 기관이다. 본래는 양조 교육 기관이었으나 맥주를 서브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비어소믈리에 과정도 만들게 되었다. 되멘스에서 소개하는 비어소믈리에는 맥주의 제조 공정, 푸드 페어링 및 맥주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고객에게 제공된 맥주의 품질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책임 있는 전문가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하며, Cicerone과 비슷하게 맥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요구한다.
되멘스가 맥주 교육 기관인 만큼 되멘스 비어소믈리에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선 Cicerone이나 BJCP 저지와는 다르게 아카데미에 등록하여 수업을 수강해야만 한다. 2주에 걸쳐 총 6일간의 수업을 수료하고 몇 가지 실습 과제와 필기, 실기 시험을 통과하면 수료증을 준다. 만일 시험이나 실습 점수에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어소믈리에 자격과 수료증은 획득할 수 없다. 모든 것을 혼자 헤쳐가야 하는 Cicerone이나 BJCP 저지와는 다르게 강사가 직접 갈 길을 알려주니 마음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가격적인 부담이 다른 것에 비해 매우 높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는 Cicerone이나 BJCP와는 다르게 2주 사이에 다량의 정보를 듣고 벼락치기식으로 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점도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되멘스 비어소믈리에 과정은 비어소믈리에 - 디플롬 - 마스터의 3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1단계인 비어소믈리에는 맥주에 대한 전반적인 기본 상식을 배우는 단계로 난이도가 쉬운 편이며, 수업을 제대로 들었다면 거의 모든 수강생이 무난히 획득할 수 있다. 실습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스타일 구분, 맥주 메뉴판 작성하기 등이 나오며 수업 마지막 날에 보는 시험과 출석 점수 등을 포함하여 합격 여부를 정한다.
2단계인 디플롬 과정은 1단계 비어소믈리에를 획득한 사람이 수강할 수 있으며, 비어소믈리에 과정보단 더욱 심화된 내용을 다룬다. 마찬가지로 2주, 총 5일 과정이며 오프플레이버 맞추기나 블라인드 테스트로 맥주 맞추기 등 좀 더 난이도 있는 실습 시험을 받게 된다. 또한 푸드페어링 코스를 직접 작성하여 요리하고, 심사원들과 수강생들이 심사하는 식의 까다로운 실습 수업도 있다. 거기다 수업 마지막 날 보는 시험 성적, 출석 점수 등을 합산하여 패스 여부를 정한다. 이 과정은 보통 20명 중 5명 정도는 탈락한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BJCP 저지는 주로 양조사, 되멘스 비어소믈리에는 주로 펍과 연관이 있는 직업, Cicerone은 대부분의 맥주 업계 직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자격증명이다. 이외에 양조 관련 자격증인 IBD(Institute Of Brewing and Distilling)나 VLB(Versuchs- und Lehranstalt für Brauerei in Berlin), 우리나라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어소믈리에 자격증들인 캐나다의 Prud'homme program이나 영국의 the Beer Academy Accredited Sommelier program 등도 존재하지만 IBD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 우리나라에서 인지도나 영향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이러한 자격증명 하나 없어도 맥주에 대한 성실함 하나 만으로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 또한 많이 있다. 몇 장의 자격증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심으로 맥주를 대할 것인가 하는 그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