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법과 맥주: 법에 정의된 맥주는 어떤 것인가
맥주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맥주의 재료와 양조 방식을 기초로 주요 특징을 나열하고 있다.
[두산백과]
보리를 싹 틔워 만든 맥아(麥芽. 엿기름)로 즙을 만들어 여과한 후, 홉(hop)을 첨가하고 효모로 발효시켜 만든 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알코올성 음료의 하나. 엿기름 가루를 물과 함께 가열하여 당화한 후, 홉(hop)을 넣어 향(香)과 쓴맛이 나게 한 뒤 발효하여 만든다.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가열한 병맥주와 가열하지 않은 생맥주가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전적 정의는 맥주를 정의하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두산백과의 설명 중 ‘보리를 싹 틔워 만든 맥아’의 부분에서 ‘보리가 아닌 밀이나 호밀 맥아를 사용할 경우 맥주라고 볼 수 없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에서 ‘엿기름 가루를 물과 함께 가열하여’라고 되어 있는데, 이 때 엿기름 가루를 무엇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므로 사전적인 의미를 그대로 인용하게 될 경우 ‘맥아를 사용하지 않아도 맥주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처럼 사전적 정의가 보다 개념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정의될 수 있는 반면 법률에서는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규율하고자 하는 사항을 명확한 용어로 규정하게 된다. 국내 법에서는 맥주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맥주를 만들 때 쓸 수 있는 재료
주세법은 주류에 대한 조세를 부과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률로 이를 위해 주류를 정의하고, 종류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이를 유통하고 판매하는데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세법, 주세법 시행령, 주세법 시행 규칙 등 3단 구조로 법률이 구성되어 있으며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세부 내용에 대해 국세청 고시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맥주 역시 주세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주세법에서는 제일 먼저 주류의 종류를 규정하고, 이에 따른 세부 내용을 별표에서 설명하고 있다.
주세법 제 4조에서는 주류의 종류를 주정, 발효주류, 증류주류 및 기타주류로 나누고 맥주는 발효주류의 일종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별표 제2호 라목의 1에서는 맥주를 엿기름 즉 맥아, 홉 및 물을 원료로 발효시켜 완성시킨 술이라고 서술한다. 맥주의 재료로 규정되어 있는 맥아와 홉, 물 외에 다른 재료를 첨가할 수 있는데, 이때 첨가할 수 있는 기타 재료는 별표 제2호 라목의 2에 규정되어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맥아화 하지 않은 밀이나 보리등과 함께 옥수수, 수수, 감자, 녹말, 당분, 캐러멜 등 발효과정에 당을 공급해줄 수 있는 재료들을 첨가할 수 있다. 또한 별표 제2호 라목의 2에서는 별표 제2호 라목의 1과 2에서 규정한 것 외에 첨가할 수 있는 재료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통령령은 주세법 시행령을 말한다. 또한 별표 제 2호 라목의 3에서는 인공적인 탄산가스의 주입 역시 허용하고 있다. 즉 맥주의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탄산 외에 추가로 탄산을 주입하여 맥주의 제조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주세법 [별표] 주류의종류별세부내용(제4조제2항관련) 별표 제2호 라목
라. 맥주
1) 엿기름(밀엿기름을 포함한다. 이하같다), 홉(홉 성분을 추출한 것을 포함한다. 이하같다) 및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제성하거나 여과하여 제성한 것
2) 엿기름과 홉, 밀·쌀·보리·옥수수·수수·감자·녹말·당분·캐러멜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 중 하나 이상의 것과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제성하거나 여과하여 제성한 것
3) 1) 또는 2)에 따른 주류의 발효·제성과정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류 또는 재료를 혼합하거나 첨가하여 인공적으로 탄산가스가 포함되게 제성한 것으로서 알코올분 도수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도수 범위 내인 것
주세법 제4조 제2항 관련 별표의 제2호 라목의 2에서 규정하고 있는 첨가 가능한 성분은 주세법 시행령 제2조 첨가재료의 종류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주세법 시행령 제2조의 2항에서는 첨가 재료의 종류를 크게 당분, 산분, 조미료, 향료, 색소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각각의 세부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설탕을 넣어 2차 발효하는 것, 꿀을 첨가한 허니 비어, 조청을 첨가한 맥주 등이 여기에서 허용된 당분의 첨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제조 가능하다. 또한 초산 발효 또는 젖산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워 비어의 경우에도 산분에 규정된 재료이기 때문에 제조 가능한 것이다. 만약 주세법 시행령에 규정된 재료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위의 국세청 고시에서 허용된 경우 또는 식품위생법상 첨가 가능한 재료일 경우 넣을 수 있다
맥주의 재료는 얼만큼 사용되어야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주재료를 규정하고, 주재료를 얼마만큼의 비율로 사용했느냐로 맥주를 규정한다.
주세법 시행령 제3조(주류원료의 사용량ㆍ여과방법등) 1항 제 4호
① 주류제조에 있어서 원료의 사용량 및 여과방법등은 다음 각 호와 같다. <개정 2001.12.31., 2005.2.19., 2008.2.22., 2010.2.18., 2010.12.30., 2013.6.11.>
주세법 시행령 제3조에는 각 주류별로 원료의 사용량과 여과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다. 맥주의 경우 주세법 별표 제2호 라목의 2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료 중 발효에 필요한 당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곡류 전체 무게에 대해서 엿기름 즉, 맥아의 무게가 10% 이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전체 전분질을 제공할 수 있는 곡물류 중 맥아가 10%를 넘으면 맥주로 인정한다. 그리고 맥주 제조에 부재료로 과일이 사용되는 경우 과일의 무게가 곡물류 전체 무게의 20%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외 각국의 맥주 정의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면 영국의 주세법인 Alcoholic Liquor
Duties Act 1979에서 맥주는 알코올 도수 0.5%를 초과하는 것으로 에일, 포터, 스타우트와 기타 맥주로 분류되는 것 및 맥주와 다른 알코올성 음료와 섞은 것을 포함한다. 미국에서는 Alcohol and Tobacco Tax and Trade Bureau(TTB)의 27 CFR Part 25에 알코올 도수 0.5% 이상으로 맥아를 원료로 한 맥주, 에일, 포터, 스타우트 및 이와 유사한 발효 방법으로 발효된 음료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맥주를 발포성 주류로 분류하고, 알코올 도수 20% 이하의 발포성 주류 중 맥아 함량에 따라 전체 재료 중 맥아 함량이 2/3 이상인 것을 맥주로, 그 이하이거나 맥주의 재료로 인정되지 않은 부재료가 사용될 경우 발포주로 구분된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맥주를 정의하는 방법에서 전형적으로 맥주에 사용되는 양조법과 스타일을 중심으로 규정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원재료의 함량과 부재료의 함량 및 허용되는 성분을 나열하는 형태다. 이와 같은 차이는 각국이나 문화권의 법을 구성하는 방식의 차이 외에도 맥주라는 주류의 기원과 역사의 측면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영미권이나 유럽의 경우 맥주가 자국의 역사와 전통 안에서 만들어진 전통주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는 반면, 아시아의 경우 서양의 주류로써 전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맥주’라는 주류에 대한 이해도나 이해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맥주가 소개된 것은 1800년대 후반이지만 실질적으로 맥주가 확산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일본의 맥주회사가 우리나라에 맥주 공장을 지은 이후다. 즉,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맥주는 우리나라의 전통주류도 아닌 것에 더해 원산지로부터 직접 전해진 것이 아닌 일본이라는 제3의 국가를 거쳐 소개된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의 법제의 구성에 있어 유사성이 많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비해 맥주의 주원료의 측면에서는 비교적 넓게 해석하고 있다.
주세 구조와 맥주의 법적 정의의 관계
우리나라는 주세 부과 방식에 있어 종가세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주류의 제조 단가가 올라갈수록 부담하는 세금이 많아지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주세율은 72%로 소주, 위스키 등과 같은 고도수의 증류주와 같다. 반면 같은 발효주인 약주, 청주 및 과실주와 와인의 주세율은 30%, 탁주의 경우 주세율은 5%에 지나지 않는다.
주재료를 기준으로 할 때 맥주로 인정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것과 현재의 종가세 형태의 주세 구조(주세: 72%, 교육세: 주세의 30%,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에 주세와 교육세를 더한 금액의 10%)가 결합되면 맥주에 사용할 수 있는 곡물 중 맥아보다 값싼 재료가 있다면 사용하고자 하는 유인이 커질 수 있으며, 대량생산 방식에 의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제품의 단순화를 추구하는 쪽이 가격 경쟁력 확보에 더욱 유리하다. 그러므로 맥주 시장의 다양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알코올 도수의 면에서도 맥주는 평균적으로 알코올 함량이 4-6% 정도로 낮은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다른 주종에 비해서 높은 주세가 부과된다. 2015년 기준 맥주의 국내 출고량은 204만여 킬로리터로 전체 주류 중 가장 많이 출고되는 주종이다. 따라서 가장 높은 구간의 주세를 적용 받고 있는 점, 가장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는 주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맥주의 범위를 넓게 정의하는 것은 세수의 극대화에 유리한 면이 있다.
맥주를 법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어떤 술을 맥주로 분류하고 정의 할 것인가?’ 외에도 ‘얼마만큼의 세금을 부과할 것인가?’의 문제가 함께 엮여 있다. 주 재료인 맥아의 최소 함량을 몇 퍼센트로 정할 것인지나 해외에서 맥주로 인정되는 부재료를 첨가한 맥주를 국내에서 맥주로 인정할 것인가 등 역시 맥주의 법적 정의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할 점이다. 따라서 맥주의 다양성 확보와 더불어 산업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주세 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 과정에 맥주의 법적 정의에 대한 논의 역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