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줍는 사람들 by 장 프랑수아 밀레 X 브라세리 듀퐁, 세종 듀퐁
여름의 햇살에 살찌고,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에 영근 들판의 곡식들. 우연히 지나게 된 들판을 차안에서 슬쩍 보니 푸르렀던 밭은 어느새 황금색으로 변해 있다. 수확의 계절인 10월이다.
밀레의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인 ‘이삭 줍는 사람들’. 나이 든 여인들이 허리를 굽히고 이삭을 줍는 모습을 그려낸 이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뒤에 쌓인 곡식이 한창 여물던 여름, 들판에서 함께한 농부들의 술 – 세종(Saison). 그 세종의 대명사와도 같은 ‘세종 듀퐁’과 함께 밀레의 그림을 감상해 보자.
‘만종’, ‘씨 뿌리는 사람’, ‘이삭 줍는 사람들’ 등 농촌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장 프랑수와 밀레. 밀레 본인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농가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농민들의 삶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산업사회 태동기,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연민을 담은 시선으로 담아낸 그의 그림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부르주아 층도 있었다. 그러나 밀레는 "설사 나를 사회주의자로 생각하더라도 미술에 있어 인간에 대한 측면이야말로 나를 가장 자극하는 것이다"라고 비난을 일축했다.
‘이삭 줍는 사람들’은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세 여인을 그린 작품이다. 나이 많은 여인들은 허리를 깊게 굽혀 땅 위에 남은 이삭들을 열심히 줍고 있다. 그 뒤로 아름다운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멀리로는 추수한 곡식을 분주하게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과 곡식을 높게 쌓은 수레가 보인다. 차분한 가을의 햇살은 이삭 줍는 여인들을 비추며 경건한 분위기까지 만들어 낸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녀들의 노동을 신이 햇살로 축복해주는 것처럼.
잔잔하게만 보이는 이 그림이 대체 왜 부르주아들에게 비판을 받았을까? 여인들이 이삭을 줍고 있는 이유는 추수 후 들판에 남은 곡식을 ‘마저’ 가져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인들, 혹은 그녀의 남편, 혹은 이웃들이 여름 내내 땀 흘려 수확한 곡식은 그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지주들이 가져가게 된다. 겨우내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여인들은 반발도 하지 못하고 허리를 몇 백 번, 몇 천번 굽혀가며 들판에 남은 이삭 한 톨까지 주워내고 있는 것이다.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오른쪽에서는 말을 탄 지주가 농민들을 재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름답기만 한 줄 알았던 밀레의 그림은 당시 프랑스 농촌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과 부조리를 담고 있는 그림이었다.
여름, 아직은 푸릇한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이 여인들의 이웃들은 아마 세종 맥주를 마시며 고단함을 덜었을 것이다. 세종은 프랑스어로 계절(season)을 뜻한다. 과거에 저장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유럽에서는 더운 여름에는 변질의 이유로 맥주를 양조하지 않았다. 여름에 마실 맥주는 보통 늦겨울이나 봄에 양조해 저장했는데, 이 때가 맥주를 만들고 발효하기도 용이했을 뿐더러, 농사일이 가장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맥주를 농번기 시즌에 마시면 한동안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세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농사일을 하면서 마시는 우리나라의 막걸리 같은 존재여서 너무 취하지 않기 위해 3~5%의 도수로 만들어졌다. 여름에 농부들과 함께한 세종을 영어권 국가에서는 ‘팜하우스 에일’이라고도 부른다. 밝은 오렌지 색에 향긋한 과일향을 자랑하며 마시기도 편하다.
맥주 마니아들에게 세종이 더욱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2005년 미국의 맨스 저널에서 세종 듀퐁이 ‘세계 최고의 맥주’로 선정되면서다. 세종 듀퐁은 전통적으로 낮은 도수로 만들어지던 과거의 세종을 재해석했고, 이후 많은 양조장들이 5~8도 정도의 세종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 낸다. 가장 대표적인 세종인 세종 듀퐁에서는 벨기의 효모의 알싸함과 허브의 향, 다른 맥주보다 가볍고 산뜻한 질감과 코를 간질이는 오렌지와 꿀 향이 느껴진다. 청량함과 꽃향기가 느껴지는 맥주라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1920년 알프레드 듀퐁은 세종과 벌꿀 맥주를 만들고 있던 한 벨기에의 농촌 양조장을 매입해서 아들인 루이 듀퐁에게 맡기게 된다. 사실 루이 듀퐁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들을 곁에 두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뜻에 그는 고향에 남아 맥주 양조에 전념하게 된다. 세종 듀퐁에 ‘듀퐁’ 이름이 붙기 전이었던 1844년부터 이 작은 농가의 양조장은 세종을 만들어왔고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도 이를 즐기고 있었다. 여기에 루이 듀퐁의 노력이 더해져 더 훌륭한 맥주가 되었고 현재에는 전세계에서 현대 세종의 아버지, 세종의 대명사로 칭송을 받고 있다.
풍성한 과일향을 가득 담고 있는 세종을 한 모금 들이키면 이 맥주를 어느 계절에나 즐기게 된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수확의 계절, 농부들의 땀과 노력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옛날 그들과 여름을 함께한 세종을 한 잔 즐겨보자.
맥주에 들어가는 맥아도, 홉도 누군가의 정성이 담뿍 들어가 좋은 맥주의 재료가 될 수 있었으리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 모금을 꿀꺽, 넘긴다. 가을에 마시는 세종이지만, 여름의 향기가 가득한 기분이다.
EDITOR_비어캣(Beerkat)
그림 그리는 마케터. 맥주와 그림을 좋아해서 맥주 그림을 그린다. 미어캣처럼 쫑긋 서서 맛난 맥주를 늘 찾아다닌다는 뜻에서 비어캣을 필명으로 쓰고 있다.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beerkat)과 블로그(beerkat.blog.me) 에서 꾸준히 그림과 글을 공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