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사 크래프트앤컬쳐 강세리 대리 인터뷰
그 누군가가 꿈꾸는 롤모델이 되는 것이 나의 꿈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하다. 브루어리에서부터 펍, 편의점, 공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간 중에서도 내 감성에 맞게 꾸민, 나만의 공간에서 들이키는 맥주 한잔은 그 어떤 맥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만족감을 준다.
대화할 기력도 의지도 없는 지친 하루의 끝에 나만을 위한 바에 앉아 기울이는 술잔. 도수 높은 맥주 한잔을 따라놓고 책장을 넘기다가 스르르 잠드는 고즈넉한 밤. 때로는 허물 없는 친구들과 주종을 바꿔가며 시끌벅적하게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소중한 사람과 속 깊은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곳. 많은 술꾼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공간이다. 오랜 동안 이런 공간을 그려왔던 주류수입사 크래프트앤컬쳐의 강세리 대리. 그녀는 최근 고양시 일산구 정발산동의 한 빌라 지하에 40평(132㎡) 규모로 냉장고, 바, 선반, 조리공간까지 마련한 ‘세리바’를 완성했다. 세리바에서 음악을 들으며 꿈만 같은 ‘1일 1맥’을 즐기고 있다는 그녀를 만났다.
강세리 대리가 맥주 수입업계에 들어온 지는 이제 10개월 남짓. 하지만 그녀의 경력은 결코 짧지 않다. 대학에 다니면서 유행하던 세계맥주 전문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수입됐던 맥주들을 하나하나 맛보며 안목을 키웠다. 이어 비어슈퍼 서촌점 매니저를 거쳐 펍 보리마루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스물 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지만 어느덧 맥주업계 경력이 9년차에 접어들었다.
원래 맥주업계에 뜻을 두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를 돌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항공사 승무원을 지망했다. 학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 삼아 펍에서 시작한 일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됐다.
“맥주 펍에서의 일이 제 외향적인 성격에 딱 맞았어요.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도 맥주라는 주제로 대화가 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손님들 취향을 파악해서 맥주를 추천하고, 또 그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것을 보면 더 신이 났고요. 맥주의 종류가 많고 같은 IPA라고 하더라도 각기 매력이 다르니까 알면 알수록 더 매력을 느꼈죠.”
결국 승무원보다 맥주 관련 회사에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때마침 한 맥주 수입사의 영업사원 모집공고를 보고 2017년 5월 업계에 발을 들였고 이후 크래프트앤컬쳐로 적을 옮겼다.
맥주 세일즈가 쉽지만은 않았다. 펍에서는 손님이 일단 매장에 들어오면 어떤 맥주든 마시게 된다. 직원이 권한 맥주를 마시지 않더라도 매출이 일어나는 것. 그러나 수입사에서의 영업은 펍 책임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아예 맥주를 공급할 수 없다. 강 대리는 “펍에서 일할 때는 내가 느낀 대로 맥주의 장단점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면 됐는데 지금은 영업의 성공과 실패가 있으니 좀더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강 대리가 택한 전략은 그 동안의 경력을 영업에 활용하는 것이다. 펍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맥주 라인업, 잔 세팅에서부터 테이블 위치, 인테리어까지 아낌없이 조언을 한다. 강세리 대리는 “비싼 맥주를 공급하는 게 회사 차원에서는 유리하지만 펍의 분위기나 손님층을 보고 그에 맞는 맥주를 추천한다”며 “그런식으로 신뢰 관계를 쌓으면서 펍 고객을 하나하나 늘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능동적인 태도와 적극성으로 회사와 일에 누구보다 빨리 적응했다. 세일즈 업무를 맡고 있지만 SNS 운영부터 광고 디자인, 행사 지원까지 다방면의 일을 소화하고 있다. 광고와 홍보물을 더 예쁘게 디자인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편집 프로그램을 공부했고 효율적인 SNS 운영을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세리바’ 역시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곳만은 아니다. ‘덕질’의 공간인 동시에 학습의 공간이다. 강대리의 일에 대한 열정은 국내에 수입되는 맥주를 모두 맛보겠다는 욕심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맥주가 보이면 무조건 먹어보게 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칠리가 들어간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좋아하지 않지만 제품이 들어오면 마셔봐요. 경험해봐야 제 자신의 맥주 평가 기준이 생기고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맥주를 더 효과적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되니까요. 커피가 부재료로 쓰인 맥주들도 맥주 속에서 커피가 드러나는 속성이 다르고 배럴 에이징을 거친 맥주들도 하나하나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마시면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맥주는 취미이자 일인 셈이다. “한 달에 새로운 맥주를 30종 가까이 마시는 것 같다”는 강 대리는 “이쪽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돈을 버는 건지 쓰는 건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자신이 세일즈하고 있는 레이크 프론트 맥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레이크 프론트는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30년의 역사를 쌓아온 브루어리다. 그녀는 “새로 생긴 브루어리들처럼 ‘자극적이면서 튀는 맛’의 맥주는 아니지만 ‘매일 먹을 수 있는 편안한 맛’이 레이크 프론트가 오랫동안 사랑 받은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레이크 프론트 본사에 다녀오기도 했다. 강 대리는 “지역의 좋은 재료로 맥주를 만들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성장해 온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인터뷰 장소에 맥주 병을 담을 수 있는 주머니와 오프너가 달린 레이크 프론트 후드티를 입고 와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강세리 대리는 일을 하면 할수록 재미가 느껴진다고 했다. 일이 본인의 성향과 맞는 데다가 수입할 맥주를 선택할 때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것도 설레는 일이라고 한다. 크래프트앤컬쳐는 3월 호주의 라시렌(La Sirène) 브루어리 맥주를 들여올 예정이고 미국의 알마냑 맥주도 준비하고 있다.
‘덕업일치’를 이루고 만족하는 그녀지만 맥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맥주 수입사에 취직하면 실망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녀는 “사실 맥주 영업은 사람을 대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을 수 있는 개인의 성향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며 “영업하러 다니면서 운전도 많이 해야 해서 생각보다 맥주를 많이 못 마신다는 점도 알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맥주 수입 업계의 ‘젊은 피’답게 그녀의 꿈 역시 패기 있다.
“언젠가 이쪽 일을 하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선배들로부터 많이 배우고노력하려고 합니다. 맥주를 많이 팔았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보다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만들고 이끌었던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