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 실현하는 가족기업, 수입사 브로시스(BROSIS) 전민지 대표 인터뷰
약학에서 맥주의 길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의 어느 날, 맥덕들의 ‘만남의 장소’라 불리는 삼성동 비어플라주(Beerflage)에서 맥주 수입사 브로시스 (BROSIS)의 전민지 대표를 만났다. 브로시스 컴퍼니는 약 1년 정도 된 신생 수입사로, 현재 니딥 브루잉과 인디드 브루잉의 맥주를 수입하는 젊은 기업이다. 특유의 친근한 말투와 장난기어린 표정이 인상적인 전민지 대표는 맥주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진지한 눈빛을 반짝였다.
맥덕 제약 연구원에서 맥주 수입업으로
학부 때 화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약학을 전공한 후,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전민지 대표는 어쩌다 맥주 수입업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크래프트 맥주를 즐겨 마시던 취미가 그 출발이었다. “경리단길에 지금은 사라진 ‘피노이 마트'를 아는 분이 많지 않을 거에요. 맥덕으로서 ‘나는 피노이 마트부터 시작했다'는 자부심이 있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약학 대학원에서 전공한 분야 역시 ‘생약학'이었다. 천연식 물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히 맥주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약학 전공자로서 맥주인에게 추천하는 간장약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도 항상 챙겨 먹는다는 밀크시슬과 고용량 우루사 두가지를 권했으며, 추가적으로 비타민 B 정도를 챙겨 먹으면 충분할 것이라 전했다. 또한 약을 잘 챙겨 먹기가 어렵다면, 정수기 바로 옆에 비치해두고 챙겨 먹는 방법을 추천했다.
수입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결정적 계기는 가족이었다.
그는 수수보리 아카데미에서 홈브루잉을 함께 하다가 만난 지금의 남편과 꾸준히 맥덕의 길을 걸어왔다. 마침 시누가 미국에서 지내고 있고 시누의 남편 역시 리테일 분야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어, 수입업을 하게 된다면 양쪽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일종의 ‘가족기업’이란 의미의 ‘브로시스(BRO+SIS)’를 꾸리게 되었다. 양쪽 가족의 합작 회사인 셈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더라도 현지 의사소통에 있어 세부적인 부분을 놓치게 되거나, 맛 표현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 부분을 시누가 중간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맛과 종류를 자세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문화의 차이로 인한 의문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브루어리 측에서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에선 겨울에 맥주가 잘 안 팔린다는 점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가장 맥주가 잘 팔리는 계절이 다름아닌 겨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연말에 회식이 잦아지다 보니 크래프트 맥주를 잘 마시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또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독한 술을 많이 찾다 보니 크래프트 맥주의 매출은 더욱 떨어지는 경향이 있죠.” 이러한 문화의 차이를 매번 공유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수입사로서 큰 과제 중 하나라고 전민지 대표는 설명했다.
한 번 마시고 나면 또 생각나는 맥주
브로시스가 맥주 수입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한 번 먹고 또 생각날 만한 맥주’다. “최근 소비 동향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잊혀지기에 너무나 아쉬운 맥주들이 많아요.
한 번 먹고 끝나는 맥주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마실 수 있는 맥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현재 수입하는 맥주의 경우 미국에서도 고가인 편이다 보니 아직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이 다 맥덕이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니딥 브루잉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번에 위치한 양조장으로, 주로 강렬한 홉 캐릭터와 높은 IBU를 자랑하는 IPA 계열의 맥주를 만들며 국내 맥주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끈 바 있다.
전민지 대표는 니딥 브루잉의 맥주 중에는 오번 페일 에일(N/E Auburn Pale Ale)과 스타우텔로(Stoutello)를 추천했다. 누가 마셔도 부담이 없고 편안한 맥주라, 다른 ‘맥덕용 맥주’를 마시기 전에 식전주처럼 가볍게 즐기기 좋은 맥주이기 때문이다. 더블 IPA인 홉톨로지스트(Hoptologist)는 니딥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맥주다. 이 맥주가 2012년 열린 더블 IPA 대회에 출품되었을 때, 엄청난 명성을 자랑하는 러시안 리버 브루잉의 ‘플라이니디 엘더(Pliny the Elder)’를 이겼기 때문이다. 홉톨로지스트는 니 딥 브루어리가 미국에서 떠오르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전민지 대표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인디드 브루잉은 미국 북동부 미네소타 주의 미니애폴리스에 위치한 양조장이다. 한국으로 치면 순천 정도의 인구에 그치는데, 그 안에 120개가 넘는 브루어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캔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인디드 브루잉은 지역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하여 캔 라벨등을 디자인하고, 다양한 디자인 굿즈도 판매 중이다. 니딥에 비해 밸런스를 중시하고 몰트의 캐릭터를 강조하는 인디드 브루잉의 맥주 중에는 럼 배럴에서 에이징한 임페리얼 스타우트 럼 킹 (Rum King)을 추천 받았다. 무려 10.5%의 ABV와 IBU 70이라는 수치를 자랑하는 겨울 한정 맥주다. 고소한 견과류와 시나몬 향, 그리고 허브 향과 브렛 향이 조화를 이루고, 베럴에서 오는 토피의 풍미가 적당히 녹아 든 달큼 새큼한 맛이다. 10% 넘는 알코올이 느껴지지 않는 탁월한 음용성 덕에, 마냥 진하기만 한 베럴에이징 스타우트가 질릴 때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스타우트다.
겨울에 나오는 시즌 한정 맥주이니, 지난 겨울에 수입된 것을 놓치면 다음 겨울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 브루어리 업계는 거의 캔을 사용하는 추세인 반면 국내에선 아직까지 캔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전민지 대표 역시 수입사로서 이러한 문화 차이를 조율하기에 어려운 지점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캔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공급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유통과정 역시 캔의 경우가 훨씬 편리하고, 파손 우려도 적고, 보관도 용이해요. 특히 IPA와 같이 향이 살아있어야 하는 맥주들은 병보다는 캔이 훨씬 보관에 유리합니다.”
브로시스 맥주에 추천할 만한 푸드 페어링을 묻는 질문에, 전민지 대표는 ‘니딥 IPA와 매콤 새콤한 김치요리’의 조합을 추천했다.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전 등 요리와 IPA류의 맥주들을 개인적으로도 자주 함께 즐긴다고 했다. 인디드 브루잉의 ‘루시’같은 사워 맥주의 경우 된장찌개와 궁합이 좋다고 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조합은 아닐지라도 한 번 시도 해보길 추천했다.
“한정식집에 가보면 와인이 제공되는 경우는 잦은 반면 크래프트 맥주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항상 아쉬워요. 한식을 먹을 때 크래프트 맥주를 함께 마시면 와인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릴 수가 있는데, 그 벽을 뚫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한정식집에 들어가는 게 목표예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한정식집에 서 우리 맥주가 팔리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방향
브로시스 컴퍼니는 조만간 니딥 브루잉와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든 골든 에일 스타일의 ‘연금술’을 출시할 계획이다. “동네 호프집이나 삼겹살집에 당연히 일반적인 라거 맥주 밖에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 가고 싶습니다. 일반적인 맥주집과 크래프트 맥주 전문 펍의 괴리가 큰 상황에서, 크래프트 맥주의 저변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는 맥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보면 더부스의 흥맥주나 크래프트브로스의 강남 페일 에일 등이 롤모델인 셈이죠. 수익금 일부는 독도사랑협회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이외에 전민지 대표가 지닌 개인적인 포부 역시 인상적이었다.
“막상 이 일을 시작해보니, 이쪽 생태계에 무지한 채로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제는 반대로 또 다른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아예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한국의 경우, 몰트나 홉 등의 재료에 관한 QC(Quality Control, 품질관리), QA(Quality Assurance, 품질보증)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을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몰트도 그렇고 홉도 그렇고 매년 맛과 향이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 맛과 향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QC, QA도 완벽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전민지 대표는 단순히 맥주를 수입하는 일을 넘어,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함으로써 국내 맥주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전민지 대표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맥주란 무엇인가요?
“맥주는 동반자죠. 맥주 덕분에 지금 신랑도 만났고, 이 일도 할 수 있게 됐고, 그러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저에게는 두 번 째 인생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 지금 남편이랑은 이 일이 아니었어도 맥덕의 길을 쭉 갔을 거에요. 제게 맥주는 제일 좋은 친구같은 동반자입니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