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맥주에 운명을 걸다, 도아인터내셔널 이동석대표 인터뷰
운명이란 사전적 의미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뜻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운명적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사람과의 인연이나 어떤 일을 겪을 때 마치 이미 정해져 있던 것처럼 느껴지는 때에 운명적이라고 한다.
여기 운명적으로 독일 맥주를 만난 한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독일 맥주 수입사 도아인터내셔널의 이동석 대표이다.
그는 의료기 수입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시장 조사 겸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되는 의료기 박람회를 가게 된다. 하던 일이 의료기 수입업이었고 다른 좋은 제품과 연이 있었으면 아마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람회를 둘러보고 꼭 쾰른이라는 도시를 방문해보고 싶었던 이대표는 “쾰른은 로마제국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멋진 예술작품이 많은 도시예요,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덕에 쾰른을 보러 갔는데 그 도시의 대표 맥주 ‘쾰쉬’를 만났죠”
쾰쉬(Kölsch)는 독일의 쾰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맥주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마치 프랑스 상빠뉴 지역에서 나는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쾰른 대성당 주변에 있는 유명한 맥주 집에서 파는 맥주들은 대부분 쾰쉬였는데 여기서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맥주가 맛있어서 몇 병 사서 귀국한 후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나누어 마시다가 문득 ‘이 맥주를 수입하면 어떨까’ 하면서 도아인터내셔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쾰른에는 크게 두개의 쾰시 회사가 있는데 프뤼(Früh) 쾰쉬와 가펠(Gaffel) 쾰쉬예요. 처음에는 프뤼 쾰쉬를 수입하고 싶었는데 이미 한국에 파트너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펠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가펠을 하게 된 것이 천운이라 생각해요.”
가펠에 수입을 요청한지 2주가 되어 답변을 받았고 그리하여 가펠쾰쉬가 한국에 상륙한 것이 2013년 5월. 벌써 5년전의 일이다. 브랜드도 생소하고 알아봐 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유통 시스템도 잘 몰라서 처음에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한다. 맥주는 들어왔는데 시간은 흐르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백화점 행사를 알게되어 맥주 들고 나가서 행사를 엄청나게 뛰며 맥주 수입업보다 판촉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초창기 시절이 생각난다고 했다.
“첫 납품은 이태원의 한스 스토어 였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크래프트 맥주 초창기 시절에는 그곳에서 맥주들을 많이 샀죠. 레스토랑 납품은 퓨어아레나였는데 그때 옥동식 셰프를 만났죠. 옥동식 셰프가 심야식당 셰프를 소개해주고 그러면서 하나둘씩 거래처를 늘려갔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판매를 늘려가면서 버티기를 1년 남짓해서 가펠 맥주회사의 대표(하인리히 베커Heinrich Becker)를 처음 만나게 된다. 독일 본사에서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쾰른의 맥주가 팔리고 있는게 신기할 시절이었단다. 그때 이대표는 독점 수입 계약을 맺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좀더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주변에서는 한 회사의 한 브랜드만 수입하는 것이 잘못된 전략이라고 얘기했죠. 그러나 저는 한 브랜드가 정착하기 전에 다른 맥주를 수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4년 동안 가펠에만 전념했어요, 이제 어지간한 마트에서도 가펠 쾰쉬를 만날 수 있으니 이쯤 되면 됐다 하고 작년에 브랜드를 추가한 것이 독일 밤베르크의 훈제맥주 슈렝케를라(Schlenkerla)입니다.”
쾰쉬라는 스타일의 맥주로 시장에서 자리잡기까지 4년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펠 쾰쉬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회사가 되었다. 작년부터 수입하기 시작한 슈렝케를라는 1405년부터 전통을 이어온 독일만의 독특한 맥주 스타일인 라우흐비어(Rauchbier)를 만드는 양조장이다. Rauch는 독일 말로 smoke, 훈제라는 뜻이며 Rauchbier는 말 그대로 훈제 맥주라는 뜻으로 너도밤나무를 사용해서 맥아를 훈연하여 양조하는 라우흐비어를 만드는 브루어리는 전세계에서 오직 독일 밤베르크에만 있다. 우리에게 생소한 맛인 이 맥주도 소비자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4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독일 라이프치히 지역에서 수입한 고제(Gose)스타일의 맥주를 추가했다. 리터구츠 고제 (Ritterguts Gose)는 1824년부터 양조된 라이프치히(Leipzig)의 전통적인 지역 맥주인데, 상큼한 신 맛을 특징으로 갖는 사워(Sour) 계열의 맥주인 고제는 전통적으로 소금과 고수를 첨가하여 약간의 짠 맛과 허브향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독특한 크래프트 맥주로서 세계 3대 사워 맥주로 불리고 있다.
쾰른 지역의 쾰쉬, 밤베르크의 라우흐비어, 라이프치히의 고제로 이어지는 독일 전통의 맥주 라인업이 도아 인터내셔널의 회사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독일 맥주만을 고집 하냐고 묻자 “독일인들은 자신의 맥주에 대해서 자부심이 상당합니다. 어지간한 회사는 대부분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니 그 시간과 역사가 가지고 있는 힘이 굉장한거죠. 우리가 수입하는 가펠 쾰쉬도 1302년부터 700여년 이어져오고 있으니 쾰쉬 한 잔 마실 때면 문득 시간이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연결되고 독일과 한국의 공간을 연결하고 새로운 소비자들과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이 이 일을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맥주는 살아있는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사를 전공한 이대표는 대학원 때 간송미술관에서 일하던 시절에 그 유명한 추사의 글씨와 겸재, 단원, 혜원 등의 그림을 마주하면서 작품을 통해 과거의 시간으로 통하 듯 느꼈던 경이로운 경험이 독일 맥주를 고집하게 된 이유라고 부연한다.
요즘처럼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맥주가 생산되고 심지어는 미국에만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6000개가 넘는 상황에서 독일 맥주만 고집하는 수입사의 전략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전통의 독일 맥주가 회사의 개성을 오히려 뚜렷하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대를 거쳐서 일하는 독일의 장인들처럼 큰 딸 ‘도아’가 나중에 이 회사를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시간이 연결되고 이름이 이어지겠죠. 이름은 많이 불리워 질수록 좋다고 했으니 제가 사업 열심히 해서 ‘도아’이름이 많이 불려지고 도아가 커서 더 이름을 빛 낼 수 있도록 지금 최선을 다 할겁니다.”
향후 계획을 묻자 그저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교만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으며 좋은 맥주 가져와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계획이라고.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 수술을 하게 돼서 일을 도우러 들어간 의료기 수입 회사가 결국 문을 닫게 되고 먹고 살 것을 고민하다가 독일에 의료기박람회 참석차 갔다가 운명적으로 만난 쾰른의 맥주. 그 시간을 시작 점으로 이동석 대표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고 그가 수입 하는 맥주를 통해서 어쩌면 수 많은 운명적 만남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우리는 지금 어떤 새로운 시간과 운명에 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DITOR_이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