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람빅(Lambic)과 연애중, 보틀샵 ‘맥주미학’ 강태현 대표 인터뷰
최근 대형마트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상황과 맞물려 소규모로 운영되는 국내 보틀샵들이 하나 둘 폐업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가운데 다양한 수입 크래프트 맥주에 목마른 서울 서부지역 사람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역할을 꿋꿋이 해 나가고 있는 가리봉동의 보틀샵 ‘맥주미학’을 찾았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강태현 대표는 도서관 사서, 카페 로스터와 레스토랑 점장, 나폴레옹 과자점의 파티시에를 거쳐 현재의 보틀샵을 열기 전 가장 최근에는 와인 소믈리에였다. ‘마시는 것'을 아주 좋아하기에 그동안 식음료를 다루는 업종에 몸담아온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점장이 되면서 가게 관리나 사람 관리를 하느라 정작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보틀샵 창업을 결심했다.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는 그는 근처 동네에도 보틀샵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1년 반 정도의 준비를 거쳐 맥주미학을 차리게 되었다.
“쉽진 않아요. ‘버텼다’라는 표현이 맞겠죠. 이제 제 월급 정도는 나오지만, 우리 가게 정도로 잘 된다고 회자되는게 참 우스운 것 같아요. 내가 이 정돈데 다른 곳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요.”
맥주미학의 노하우
1.스타일에 특화된 깐깐한 리스트 선별
강태현 대표는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사워 에일’과 ‘임페리얼스타우트’ 두 가지를 맥주미학의 색깔로 잡았다. 또한 맥주를 직접 마셔보고 맥주 리스트를 선별하는 일이야 말로 다른 곳과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했다. 그는 손님들이 자신이 선별한 맥주리스트 때문에 가게에 찾아오길 바랐다.
“신상품이라고 다 받는 것이 아니라 필터링을 해야 소비자에게 자신 있게 맥주를 권하고 추천할 수 있잖아요. 내 취향도 아니고 나는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손님에게 추천할 순 없겠더라고요. 필터링을 제대로 하는 게 보틀샵의 첫 번째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운 점도 분명 있다. 소수가 찾는 귀한 맥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정보 접근이 빨라야 하고 한정된 양을 선점하기 위해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틀샵은 기본적으로 매니아 시장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판매하시는 분들이 정말 싸게 팔아요. 마진이 너무 적어서 ‘박리다매’ 해야 하는 상황인데, 대부분의 보틀샵이 쉽지 않거든요. 경쟁적으로 싸게 팔다보면 결국 다 같이 어려워져요. 지금 수입사의 공급가와 보틀샵 판매 가격은 충분히 저렴하다고 봐요. 단지 소비자 입장에서 비싸게 느껴진다면 세금의 영향이 클 거에요.” 그러한 이유로 그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맥주라면 비싸더라도 좋은 맥주를 파는 전략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비싼 맥주를 파는게 정말 어렵긴 하지만 소비자와의 신뢰가 튼튼하고 맥주에 관해 많이 알고 있다면 판매할 수 있어요.”
2.해외 출장을 통한 벤치마킹
강태현 대표는 홍콩과 일본 등 주변국에 자주 출장을 다녀온다. 국내에 수입될 확률이 높은 맥주를 미리 마셔보기 위해서다. “미국이나 유럽시장은 한국과 많이 다른 데 반해 홍콩이나 일본 시장은 한국과 비슷해요. 국내에 들어올 맥주들을 미리 마셔보는 것이 맥주맛을 판단하고, 발주량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아주 유용합니다.”
3.손님과의 결속력
강태현 대표는 단골손님들과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손님들과 소그룹을 운영하기도 한다. “손님들 입장에서는 주위 사람이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제가 취향이나 나이대 별로 연결해서 그룹을 만들어드리면 좋아하시죠.” 현재 맥주미학의 노하우
매월 한 번 꼴로 모임을 갖는 세 개의 그룹을 운영하고있는데, 그룹 당 5명 정도의 인원을 유지하고 있다. 때로는 손님들이 외국에서 사왔거나 ‘해외 직구'한 희귀 맥주를 가게에 가져와 ‘셰어링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손님들에게 일본에서 열리는 칸띠옹(Cantillon) 람빅 축제 등 좋은 기회나 비행기표 값이 저렴하다고 알리면, 손님들이 휴가를 내어 함께 다녀오기도 한다.
4.맥주 관리법
보틀샵은 빛과 온도에 예민한 다양한 맥주를 다루기에 관리가 중요하다. 적절한 실내온도를 조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IPA나 라거는 무조건 냉장고에 넣어 놓고, 숙성이 되는 맥주들은 와인 셀러에 넣어 놓거나 13도에서 18도 사이의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환경에 보관한다. “가게를 이 자리로 고른 이유 중 하나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향이기 때문이에요. 빛이 안 들어오니 온도가 약간 서늘해서 맥주 보관에 용이하죠. 겨울에는 가게에 난방을 안 해요. 저 혼자 내복이나 스키복 내피를 껴입고 있지, 난방은 안 틀어요.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 놓고 퇴근하고요. 살짝 서늘한 정도의 실내 환경을 항상 유지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손님들도 마트 보다 저희 가게에서 마시는 맥주가 훨씬 맛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향후 계획
강태현 대표는 보틀샵의 어려운 사정 속에서 함께 상생 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틀샵 연맹'을 구축하는 일을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마트와는 차별화된 맥주 리스트를 선별하여 수입이 어려웠던 맥주들을 선금을 주고 위탁 수입하여 판매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보틀샵 네 군데가 모여서 매번 다른 수입사에 위탁 수입을 의뢰하는 거죠. 아주 좋은 맥주가 있는데 가격에 걸려 선뜻 들여오지 못했다면, 투자금액을 모아서 투자한 보틀샵끼리 판매하는 거죠.” 그러나 구심적 역할을 하기는 쉽지가 않다. 연맹을 꾸려 나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나 갈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이다.
올해까지 맥주미학의 내실을 더 다지고 내년부터 만약 사업을 확장한다면, 크래프트 비어 펍을 운영하고 싶은 생각이 더 크다. 생맥주를 다루고 싶은데 주류 소매점인 보틀샵에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당시에 알게 된 여러 요리사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여 다양한 음식 메뉴를 선보이는 등 구체적인 상상도 해보았다.
자신에게 맥주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아직까진 재밌는 것’이라고 답했다.
“인생의 모토가 ‘재미 없으면 안 한다’에요. 어릴 때부터 금방 질리곤 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무언가 질리면 그만두고 다른 걸 해요. ‘100년의 인생 사는데 그 중에 1년은 파티쉐도 해보고, 바리스타도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처럼 다양하게 해보는 게 좋아서 쉽게 그만두고 쉽게 갈아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한 이유이기도 해요. 언제든 뒤집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잖아요. 이러다 또 재미없고 질리면 확 뒤집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맥주는 아직까지 안 질렸어요.”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