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May 11, 2018

다시 싹 틔우는 대한민국 홉의 역사

다시 싹 틔우는 대한민국 홉의 역사 이미지 홉나무

홉이 여물어가는 방방곡곡 홉 농장에 가다

Touring hop farms in Korea

지난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맥주는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자라는 국내산 홉으로 만들어졌다. 홉 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홉 수입이 허용되면서 가격과 품질에서 밀린 국내산 홉은 결국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최근 국내에 크래프트 맥주 바람이 시작되면서 일부 브루어리와 농장 등에서 다시 홉 재배가 시작되고 있다. 자라고 있는 홉의 품종도 10종이 훌쩍 넘는다. 비어포스트는 전국 홉 재배 농장 중 가장 규모가 큰 충북 제천의 솔티마을 작목반과 지난 2015년 국내 최초로 말리지 않은 홉(wet hop)을 사용한 맥주를 만든 더핸드앤몰트의 청평 홉 농장을 찾아 대한민국산 홉의 가능성을 엿봤다. 또 귀농해 홉의 생장을 연구하고 본격 상품화에 도전하는 전북 부안 청담농장의 박상훈 대표와 지난 5년 간의 이야기도 나눴다.



고추 밭에 높이 올라선 지주… 솔티마을이 홉 마을로

뱅크크릭브루잉 홍성태 대표 Sung-tae Hong of Bank Creek Brewing

충북 제천 시내에서 차로 10분여를 달리면 솔티마을 입구를 알리는 바위 표지석을 만난다. 마을 어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로 100평(약 330㎡) 규모의 홉 밭이 눈에 들어온다. 5~6미터 가량의 나무로 된 지주가 듬성듬성 서 있고 그 지주에 묶인 줄을 타고 홉 넝쿨이 올라가고 있다. 짙은 녹색의 홉 잎사귀가 싱그럽다. 산으로 빙 둘러 쌓여 요새와 같은 솔티마을로 들어서자 곳곳에 홉이 옹골차게 자라나고 있다.


솔티마을에 자리잡은 뱅크크릭브루잉의 홍성태 대표 주도로 지난해 이 마을에는 홉 작목반이 생겼다. 올해 7가구가 총 6000평(약 1만9834㎡)의 홉 밭을 일구고 있다. 캐스케이드(Cascade), 센테니얼(Centennial), 치눅(Chinook), 사츠(Saaz), 골딩(Goldings), 매그넘(Magnum) 등 총 12종을 재배하고 있다. 제천시에서 홉 재배 농가에 보조금이 지원해 밭에 지주를 세우는 등 투자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홉의 재배는 씨앗을 심거나 묘목 또는 구근을 심는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모두 3년 정도 뿌리가 자리 잡아야 품질, 생산량 등에서 본격적인 상품화가 가능하다. 홍성태 대표는 “홉은 한번 심어 놓으면 30년간 수확이 가능하고(다년생) 이후에는 큰 투자가 필요 없어 경제성이 좋은 작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솔티마을 대표 작물인 고추의 경우 1평(약 3.3㎡)당 소득이 3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홉은 평당 1만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솔티마을의 예상 홉 수확량은 최소 1500kg다. 일반적으로 홉은 8월 중순 경 수확하게 되지만 마을 주민들이 한 달 정도 늦게 재배를 시작해 솔티마을에서는 9월 중순 본격 홉 수확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람 키의 3~4배에 달하는 높이까지 자라서 수확에 상대적으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것을 감안해 홉 수확 기계도 들여놓을 계획이다. 홍 대표는 “뱅크크릭에서 사용하고 남는 홉은 다른 브루어리 등에 판매할 예정”이라며 “수입 홉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British Hop Association에 홉 판매자로 등록해 라이선스 침해 우려 없이 합법적인 홉 판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에 수확한 홉은 미국 검사기관에 보내 알파산, 베타산, 오일 등 성분을 정교하게 분석할 방침이다. 해외 품종을 한국에서 키운 만큼 어떤 성분이 얼만큼 나타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예전에도 국내에서 홉을 키워왔지만 국내산 홉이 어떤 품종이었고 성분이 어땠는지 자료를 찾지 못했다”며 “이번 검사를 통해 한국 홉의 현주소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티마을에서는 내년 홉 재배 면적과 종을 한층 확대한다. 뱅크크릭만 1만평(약 3만3000㎡)까지 농지를 넓힐 예정이다. 또 뉴질랜드산 홉들도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홍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홉이 강원도 등 고랭지에서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태풍이 지나가지 않는 경로라면 한반도 전역에서 키울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3년 후에는 솔티마을 전체가 홉 농사를 지어 관광까지도 연계해 농가 소득증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배는 고되지만…막 수확한 홉으로 만든 맥주는 감동 그 자체”

더핸드앤몰트 도정한 대표 Jung-han Do of The Hand and Malt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도 나오지 않는다는 더핸드앤몰트의 청평 농장. 청평역에서 차를 몰아 5분여를 가면 다리 건너 멀리 홉 넝쿨이 눈에 들어온다. 500평(약 1653㎡) 규모의 농장에 빼곡히 들어찬 홉은 모두 캐스케이드 종이다. 도정한 더핸드앤몰트 대표는 “맥주의 쓴맛(비터)과 향(아로마)을 함께 줄 수 있는 유틸리티 홉이어서 캐스케이드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폭염과 가뭄 때문에 생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비해 올해는 기후가 나쁘지 않아 상대적으로 많은 수확을 기대하고 있다. 8월 중순부터 본격 수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비어포스트가 방문한 7월 중순에도 일부 홉은 곧 수확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여물었다. 도 대표는 “익은 홉은 만져보면 쿠션감이 있고 안 익은 것은 축축하고 딱딱하다”고 말했다. 맥주에 맛과 향을 주는 홉 속의 루풀린(lupulin) 부분이 발달했는지를 촉감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더핸드앤몰트는 지난 2년 동안 그랬듯이 올해도 일반인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홉 수확 이벤트를 벌일 계획이다.

홉 재배 면적을 크게 확대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도정한 대표는 “국내 최초 웻 홉 맥주를 만들어보자는 일종의 팬서비스 차원에서 단순하게 시작했는데 재배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고민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특히 수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작년의 경우에도 전 직원이 동원돼 홉을 하나하나 따면서 에너지과 시간을 엄청나게 소모했다고. 홉 줄기의 가시 때문에 상처를 입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런 힘든 면을 감안하면 수입 홉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10배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금방 수확한 홉으로 만든 맥주를 맛보면 그런 고생에 대한 기억이 한번에 싹 사라진다고 한다. 더핸드앤몰트는 지난 2015년부터 2년째 홉을 수확해 말리지 않은 홉으로 바로 양조한 하베스트 시리즈를 한정판으로 내놨다. 상업 맥주로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다. 재작년에는 청평 하베스트 페일 에일을, 작년에는 하베스트 IPA를 선보였다. 다른 국내 브루어리들은 건조, 압축된 형태의 홉인 홉 펠릿(pellet)을 맥주 재료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도 대표는 “어떤 맛이라고 콕 집어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웻 홉을 쓰면 싱싱한 느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며 “수입 펠릿 홉은 루풀린 위주로 압축해 만들어진 것에 비해 웻 홉은 꽃잎까지 붙어있어 거기서 우러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헤드 브루어인 브랜든 페너가 양조 준비를 하고 있다가 수확한 홉을 바로 브루어리로 옮겨 투입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신선함을 유지한다. 홉을 직접 재배하는 브루어리의 장점을 살려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더핸드앤몰트 탭룸에서는 홉의 잎사귀를 튀겨서 안주로 내기도 한다. 깻잎과 비슷한 고소한 맛을 내면서도 더 쌉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웻 홉을 쓴 맥주는 아무 브루어리나 시도할 수 없는 만큼 홉 재배가 힘든 만큼 보람이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올해도 하베스트 맥주를 두 배치 만들어 신선한 홉의 맛을 그대로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홉 재배부터 건조, 펠릿 생산까지… 국산홉 상품화에 도전”

청담농장 박상훈 대표 Sang-hoon Park of Cheongdam Farm

전북 부안군에 자리잡은 청담농장에서도 4년째 홉이 자라고 있다. 뱅크크릭브루잉과 더핸드앤몰트가 기본적으로 브루어리에서 맥주를 만들기 위해 홉 재배를 하는 것과 달리 홉 자체의 상품화를 목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청담농장의 박상훈 대표는 지난 2012년 10월 귀농을 해 홉 씨앗을 싹 틔워 재배를 시작했다.
전체 1만평(약 3만3000㎡)의 농장에서 홉을 300평(약 991㎡) 규모로 재배하고 있다. 캐스케이드, 칼립소, 엘도라도. 사츠 등 총 6종을 키우면서 올해 최소 600kg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점차 홉 재배 면적을 늘려갈 예정이다. 청담농장에서는 홉의 판로를 주로 건강식품, 기호식품 등으로 본다. 지난해 생산된 홉은 화장품 관련 회사에 연구용으로 공급하기도 했다. 박상훈 대표는 “외국에서는 우울증, 불면증 치료에 홉을 활용하고 최근에는 비만 억제 성분, 알츠하이머 억지 성분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며 “미국에서는 홉을 가미


해서 커피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맥주 재료로 공급도 생각하고 있지만 의외로 국내 브루어리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세계에 내놓을 맥주가 나오려면 로컬 재료를 사용해서 독특함을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담농장에서는 현재 홉 수확 기계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또 홉 건조시설과 저장시설은 물론이고 펠릿으로 만들 수 있는 가공공장까지 건설 중이다. 박 대표는 “그 동안 홉에서 수익이 나지 않아 고민이 많았지만 마지막으로 모든 걸 다 거는 심경으로 투자를 감행했다”며 “재배와 가공부터 수출, 관광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농업 6차 산업을 실현할 수 있는 작물은 홉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전북 정읍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와 협력해 기르고 있는 홉의 정확한 성분 분석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의 꿈은 ‘홉 농장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것. 그 시작으로 지난해 8월 홉앤호프(Hop & Hope)라는 이름의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었다. 마음을 함께하는 농가들과 함께 그 동안 쌓은 홉 농사 노하우를 나누고 판로를 찾고 수출을 하는 등 협력해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다. 희망은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길이란 것을 알고 있다. 박 대표는 “도전하고 있지만 국내에 홉 자료가 없어서 해외 자료들로 혼자서 연구하는 게 힘에 부친다”며 “홉이 원래 재배되던 곳과 기후, 토양, 해충, 균도 달라 토착화하려면 연구하고 개량을 해야 하는데 개별 농업인이 진행하기에는 너무 힘들다”며 농업 관련 부처의 도움을 구했다.

국내에서 홉 재배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해외에서 들여온 홉이 국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해 생산량에 있어서나 아로마, 비터 등 성능에 있어서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갈 것인지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검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 맥주 전문가는 “작물의 개량과 토착화는 10년. 20년이 걸리는 일이고 개인이 하기 어려운 부분인 만큼 정부가 관심을 갖고 국산화 작업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천에서, 청평에서 또 부안에서 열정적인 홉 재배가 시도되고 있기에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시간이 지나 독일의 할러타우, 호주의 갤럭시와 같이 한국의 토종 홉이 만들어지고 그것으로 만든 맥주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다시 싹 틔우는 대한민국 홉의 역사 이미지 홉나무

홉이 여물어가는 방방곡곡 홉 농장에 가다

Touring hop farms in Korea

지난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맥주는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자라는 국내산 홉으로 만들어졌다. 홉 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홉 수입이 허용되면서 가격과 품질에서 밀린 국내산 홉은 결국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최근 국내에 크래프트 맥주 바람이 시작되면서 일부 브루어리와 농장 등에서 다시 홉 재배가 시작되고 있다. 자라고 있는 홉의 품종도 10종이 훌쩍 넘는다. 비어포스트는 전국 홉 재배 농장 중 가장 규모가 큰 충북 제천의 솔티마을 작목반과 지난 2015년 국내 최초로 말리지 않은 홉(wet hop)을 사용한 맥주를 만든 더핸드앤몰트의 청평 홉 농장을 찾아 대한민국산 홉의 가능성을 엿봤다. 또 귀농해 홉의 생장을 연구하고 본격 상품화에 도전하는 전북 부안 청담농장의 박상훈 대표와 지난 5년 간의 이야기도 나눴다.



고추 밭에 높이 올라선 지주… 솔티마을이 홉 마을로

뱅크크릭브루잉 홍성태 대표
Sung-tae Hong of Bank Creek Brewing

충북 제천 시내에서 차로 10분여를 달리면 솔티마을 입구를 알리는 바위 표지석을 만난다. 마을 어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로 100평(약 330㎡) 규모의 홉 밭이 눈에 들어온다. 5~6미터 가량의 나무로 된 지주가 듬성듬성 서 있고 그 지주에 묶인 줄을 타고 홉 넝쿨이 올라가고 있다. 짙은 녹색의 홉 잎사귀가 싱그럽다. 산으로 빙 둘러 쌓여 요새와 같은 솔티마을로 들어서자 곳곳에 홉이 옹골차게 자라나고 있다.

솔티마을에 자리잡은 뱅크크릭브루잉의 홍성태 대표 주도로 지난해 이 마을에는 홉 작목반이 생겼다. 올해 7가구가 총 6000평(약 1만9834㎡)의 홉 밭을 일구고 있다. 캐스케이드(Cascade), 센테니얼(Centennial), 치눅(Chinook), 사츠(Saaz), 골딩(Goldings), 매그넘(Magnum) 등 총 12종을 재배하고 있다. 제천시에서 홉 재배 농가에 보조금이 지원해 밭에 지주를 세우는 등 투자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홉의 재배는 씨앗을 심거나 묘목 또는 구근을 심는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모두 3년 정도 뿌리가 자리 잡아야 품질, 생산량 등에서 본격적인 상품화가 가능하다. 홍성태 대표는 “홉은 한번 심어 놓으면 30년간 수확이 가능하고(다년생) 이후에는 큰 투자가 필요 없어 경제성이 좋은 작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솔티마을 대표 작물인 고추의 경우 1평(약 3.3㎡)당 소득이 3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홉은 평당 1만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솔티마을의 예상 홉 수확량은 최소 1500kg다. 일반적으로 홉은 8월 중순 경 수확하게 되지만 마을 주민들이 한 달 정도 늦게 재배를 시작해 솔티마을에서는 9월 중순 본격 홉 수확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람 키의 3~4배에 달하는 높이까지 자라서 수확에 상대적으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것을 감안해 홉 수확 기계도 들여놓을 계획이다. 홍 대표는 “뱅크크릭에서 사용하고 남는 홉은 다른 브루어리 등에 판매할 예정”이라며 “수입 홉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British Hop Association에 홉 판매자로 등록해 라이선스 침해 우려 없이 합법적인 홉 판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에 수확한 홉은 미국 검사기관에 보내 알파산, 베타산, 오일 등 성분을 정교하게 분석할 방침이다. 해외 품종을 한국에서 키운 만큼 어떤 성분이 얼만큼 나타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예전에도 국내에서 홉을 키워왔지만 국내산 홉이 어떤 품종이었고 성분이 어땠는지 자료를 찾지 못했다”며 “이번 검사를 통해 한국 홉의 현주소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티마을에서는 내년 홉 재배 면적과 종을 한층 확대한다. 뱅크크릭만 1만평(약 3만3000㎡)까지 농지를 넓힐 예정이다. 또 뉴질랜드산 홉들도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홍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홉이 강원도 등 고랭지에서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태풍이 지나가지 않는 경로라면 한반도 전역에서 키울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3년 후에는 솔티마을 전체가 홉 농사를 지어 관광까지도 연계해 농가 소득증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배는 고되지만…
막 수확한 홉으로 만든 맥주는 감동 그 자체”

더핸드앤몰트 도정한 대표
Jung-han Do of The Hand and Malt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도 나오지 않는다는 더핸드앤몰트의 청평 농장. 청평역에서 차를 몰아 5분여를 가면 다리 건너 멀리 홉 넝쿨이 눈에 들어온다. 500평(약 1653㎡) 규모의 농장에 빼곡히 들어찬 홉은 모두 캐스케이드 종이다. 도정한 더핸드앤몰트 대표는 “맥주의 쓴맛(비터)과 향(아로마)을 함께 줄 수 있는 유틸리티 홉이어서 캐스케이드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폭염과 가뭄 때문에 생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비해 올해는 기후가 나쁘지 않아 상대적으로 많은 수확을 기대하고 있다. 8월 중순부터 본격 수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비어포스트가 방문한 7월 중순에도 일부 홉은 곧 수확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여물었다. 도 대표는 “익은 홉은 만져보면 쿠션감이 있고 안 익은 것은 축축하고 딱딱하다”고 말했다. 맥주에 맛과 향을 주는 홉 속의 루풀린(lupulin) 부분이 발달했는지를 촉감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더핸드앤몰트는 지난 2년 동안 그랬듯이 올해도 일반인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홉 수확 이벤트를 벌일 계획이다.

홉 재배 면적을 크게 확대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도정한 대표는 “국내 최초 웻 홉 맥주를 만들어보자는 일종의 팬서비스 차원에서 단순하게 시작했는데 재배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고민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특히 수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작년의 경우에도 전 직원이 동원돼 홉을 하나하나 따면서 에너지과 시간을 엄청나게 소모했다고. 홉 줄기의 가시 때문에 상처를 입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런 힘든 면을 감안하면 수입 홉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10배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금방 수확한 홉으로 만든 맥주를 맛보면 그런 고생에 대한 기억이 한번에 싹 사라진다고 한다. 더핸드앤몰트는 지난 2015년부터 2년째 홉을 수확해 말리지 않은 홉으로 바로 양조한 하베스트 시리즈를 한정판으로 내놨다. 상업 맥주로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다. 재작년에는 청평 하베스트 페일 에일을, 작년에는 하베스트 IPA를 선보였다. 다른 국내 브루어리들은 건조, 압축된 형태의 홉인 홉 펠릿(pellet)을 맥주 재료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도 대표는 “어떤 맛이라고 콕 집어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웻 홉을 쓰면 싱싱한 느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며 “수입 펠릿 홉은 루풀린 위주로 압축해 만들어진 것에 비해 웻 홉은 꽃잎까지 붙어있어 거기서 우러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헤드 브루어인 브랜든 페너가 양조 준비를 하고 있다가 수확한 홉을 바로 브루어리로 옮겨 투입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신선함을 유지한다. 홉을 직접 재배하는 브루어리의 장점을 살려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더핸드앤몰트 탭룸에서는 홉의 잎사귀를 튀겨서 안주로 내기도 한다. 깻잎과 비슷한 고소한 맛을 내면서도 더 쌉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웻 홉을 쓴 맥주는 아무 브루어리나 시도할 수 없는 만큼 홉 재배가 힘든 만큼 보람이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올해도 하베스트 맥주를 두 배치 만들어 신선한 홉의 맛을 그대로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홉 재배부터 건조,
펠릿 생산까지… 국산홉 상품화에 도전”

청담농장 박상훈 대표
Sang-hoon Park of Cheongdam Farm

전북 부안군에 자리잡은 청담농장에서도 4년째 홉이 자라고 있다. 뱅크크릭브루잉과 더핸드앤몰트가 기본적으로 브루어리에서 맥주를 만들기 위해 홉 재배를 하는 것과 달리 홉 자체의 상품화를 목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청담농장의 박상훈 대표는 지난 2012년 10월 귀농을 해 홉 씨앗을 싹 틔워 재배를 시작했다.
전체 1만평(약 3만3000㎡)의 농장에서 홉을 300평(약 991㎡) 규모로 재배하고 있다. 캐스케이드, 칼립소, 엘도라도. 사츠 등 총 6종을 키우면서 올해 최소 600kg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점차 홉 재배 면적을 늘려갈 예정이다. 청담농장에서는 홉의 판로를 주로 건강식품, 기호식품 등으로 본다. 지난해 생산된 홉은 화장품 관련 회사에 연구용으로 공급하기도 했다. 박상훈 대표는 “외국에서는 우울증, 불면증 치료에 홉을 활용하고 최근에는 비만 억제 성분, 알츠하이머 억지 성분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며 “미국에서는 홉을 가미해서 커피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맥주 재료로 공급도 생각하고 있지만 의외로 국내 브루어리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세계에 내놓을 맥주가 나오려면 로컬 재료를 사용해서 독특함을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담농장에서는 현재 홉 수확 기계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또 홉 건조시설과 저장시설은 물론이고 펠릿으로 만들 수 있는 가공공장까지 건설 중이다. 박 대표는 “그 동안 홉에서 수익이 나지 않아 고민이 많았지만 마지막으로 모든 걸 다 거는 심경으로 투자를 감행했다”며 “재배와 가공부터 수출, 관광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농업 6차 산업을 실현할 수 있는 작물은 홉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전북 정읍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와 협력해 기르고 있는 홉의 정확한 성분 분석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의 꿈은 ‘홉 농장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것. 그 시작으로 지난해 8월 홉앤호프(Hop & Hope)라는 이름의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었다. 마음을 함께하는 농가들과 함께 그 동안 쌓은 홉 농사 노하우를 나누고 판로를 찾고 수출을 하는 등 협력해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다. 희망은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길이란 것을 알고 있다. 박 대표는 “도전하고 있지만 국내에 홉 자료가 없어서 해외 자료들로 혼자서 연구하는 게 힘에 부친다”며 “홉이 원래 재배되던 곳과 기후, 토양, 해충, 균도 달라 토착화하려면 연구하고 개량을 해야 하는데 개별 농업인이 진행하기에는 너무 힘들다”며 농업 관련 부처의 도움을 구했다.

국내에서 홉 재배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해외에서 들여온 홉이 국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해 생산량에 있어서나 아로마, 비터 등 성능에 있어서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갈 것인지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검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 맥주 전문가는 “작물의 개량과 토착화는 10년. 20년이 걸리는 일이고 개인이 하기 어려운 부분인 만큼 정부가 관심을 갖고 국산화 작업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천에서, 청평에서 또 부안에서 열정적인 홉 재배가 시도되고 있기에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시간이 지나 독일의 할러타우, 호주의 갤럭시와 같이 한국의 토종 홉이 만들어지고 그것으로 만든 맥주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CONTRIBUTING EDITOR 황지혜
PHOTOGRAPHER 이인기
TRANSLATOR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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