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일 ‘한국식 쌀맥주’의 개발 소식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 필자는 2016년 만들어진 배상면주가의 ‘R4’와 같이 맥주의 탈을 쓴 청주이거나, ‘버드와이저’처럼 밍밍한 부가물 라거(Adjunct Lager)겠거니 하고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 뉴스를 넘어 공중파 방송에서도 쌀맥주 얘기가 나오고, 최근 출시된 쌀맥주 ‘도담도담’이 호주국제맥주대회(AIBA)에서 은상을 탔다는 소식 마저 들려오니 점차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왜 쌀을 넣은 맥주를 만들게 되었을까. 쌀맥주 도담도담을 만든 바네하 임의 김정하 대표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장 큰 목적은 쌀 소비 촉진이다. 두 번째 목적은 농진청이 개 발한 기능성 쌀을 농가에서 재배하고, 상업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농촌을 활성화하는 것이 농진청과 우리 프로젝트의 목표다.
당을 제공하는 역할로 본다면, 일부는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현재로선 쌀을 맥아 대신 사용할 이유가 없다. 기능성 쌀이 수입 맥아보다 3배 정도 비싸다 보니 현행 종가세 체제에선 원가 부담이 크고, 맥주를 만드는 공정도 더욱더 번거 롭기 때문이다.
쌀은 보리와 달리 구조가 단단하므로, 맥아보다 훨씬 곱게 분쇄 해줘야 한다. 또한 단단한 구조로 인해 당화(효모가 사용하기 용이하도록 당을 잘게 분해해주는 과정)가 잘 안 되므로, 추가로 액화(또는 호화)를 해줘야 한다. 액화는 효소를 이용해 쌀을 녹임으로써 당화가 잘 진행되도록 하는 과정이다. 쌀과 효소를 넣 고 90도까지 온도를 올리는 동안 계속해서 저어주면 점성이 사라지고 점점 물처럼 변한다. 이때 쉬지 않고 저어주어야만 쌀이 타지 않고 액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쌀은 보리보다 무게감이 있어서 저어주기가 더 힘들다. 그 때문에 공정상의 애로 사항이 많다. 이후 찬물을 넣으면서 식히고, 다시 온도를 올리면서 효소를 넣은 뒤에야 당화를 할 수 있다. 이 액화 과정으로 인해 맥아로 맥주를 만들 때보다 시간이 2배는 더 든다. 이를 더 편하게 하고 싶으면 액화조가 따로 있어야 하지만, 현재까진 액화 조가 없기에 3명이 달라붙어 주방에서 액화를 했다.
대부분의 맥주 원재료는 수입이지 않은가. 원재료 중 일부라도 국산화하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쌀 소비를 촉진하고 싶다는 농진청의 생각에도 동조했다. 처음엔 ‘쌀 소비를 위해선 막걸리를 많이 만들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걸리를 소비하는 인구는 맥주를 소비하는 인구에 비해 매우 적었다. 결국 쌀맥주를 만드는 것이 쌀 소비 촉진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액화 과정에서 열을 가하다 보니, 쌀에 열을 가해서 만드는 조청과 비슷한 단맛을 내곤 한다. 잘 조합한다면 맥주에서도 특징적인 맛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맥아의 껍질에서 유래하는 그레이니(Grainy)나 맥아의 성분에서 유래하는 DMS 등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쌀을 이용하여 발효하면 알코올의 맛이 좀 더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전통 소주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알코올의 뉘앙스랄까. 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맥주의 관점에선 유쾌하게 느껴지는 풍미는 아니었다. 여러 번 실험한 결과 쌀이 30% 이하로 들어가면 큰 문제가 없었으나, 그 이상 들어가면 이러한 알코올 맛이 지나치게 발현되곤 했다. 그렇기에 쌀을 많이 쓰기 위해선 많은 시행착오와 풍부한 양조 경험, 디테일이 필요하다. 사용하기 쉬운 재료는 아니다.
쌀도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고, 특징도 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쌀마다 양조 적성이 다르고, 맛도 다르고, 전분 구조도 다르고, 당화할 때 사용하는 효소도 다르다. 잘 모르고 섣불리 덤볐다간 고생하게 된다. 여러 쌀 중에선 연질미가 쌀알이 잘 분쇄되는 특성이 있어서 가공하기에 용이한 편이다. 설갱, 한가루, 도담쌀 이 쌀알에 공극이 많은 연질미에 해당하므로 주로 이들을 이용해 맥주를 만드는 것을 연구 중이다. 이들은 손으로 눌러도 바스러질 만큼 강도가 약하다. 흑설과 흑진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색이 있는 유색미이다. 다만 열을 가하면 색소가 파괴되므로, 맥주로 만들게 되면 검은색 맥아만큼 색이 검게 나오진 않는다. 대신 연구를 통해 연한 분홍색 정도는 나오게끔 했다.
우선 연질미라서 양조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연질 미인 설갱은 국순당이 사용하는 품종이라 일부러 안 썼고, 한가루도 연질미이며 맛이 깔끔하게 나오긴 하지만 발효가 시작될 때 문제가 있다는 자체적 결함이 있었다. 한가루를 쓰고도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적절한 효모를 찾긴 했지만, 굳이 결함이 있는 쌀을 쓰고 싶진 않더라. 그래서 도담쌀을 고르게 되었다. 또한 도담쌀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저항성 전분(Resistant Starch)의 함량이 높다. 이렇듯 건강과 기능적인 측면을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도담쌀이 좋아 보였다.
우리나라엔 아주 훌륭한 칵테일 문화(소맥)가 있지 않은가. 이를 노리고 만들었다. 소주뿐만 아니라 다른 증류주와 섞었을 때도 맛있는, 폭탄주용 맥주로 맛을 디자인했다. 한국적인 주류 문화와 맛을 녹여놓은 맥주다. 이러한 부분을 살려서 재미나게 마셔주면 좋을 것 같다.
설갱 40%와 국순당에서 개발한 국산 효모를 이용하여 만든 KSDB(Korean Style Draft Beer)를 지속적으로 실험 개발 중이다. 우리 장비가 열악하기도 하고, 효모의 특성도 다소 특수해서 여러 번의 실패를 거치고 있다. 호피(Hoppy)하고 가벼운 에일로 구상 중이며, 조만간 다시 실험 배치를 만들어 볼 예정이다. 또한 흑진주와 한가루를 섞어서 한국형 고제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는 꽤 성공적인 배치를 만들어냈고,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