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BEX 박람회장은 활기로 가득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을 흥분시킬 다양한 미수입 맥주들을 비롯해 현장에서 가장 신선한 상태로 시음을 기다리고 있는 국내 브루어리 부스들의 탭과 열정적으로 맥주를 소개하느라 분주한 참가사 직원들,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시음잔을 손에 든 채 맥주를 맛보는 방문객들, 종종 눈에 보이는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과 격식을 갖춘 비즈니스 정장에 멋진 운동화를 신고 명함을 교환하는 바이어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이번 KIBEX를 가장 빛나게 한 장소가 있다면 단언컨대 ‘탭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여러 맥주 전시들과 축제들을 다녀봤지만 KIBEX 탭룸과 같은 압도적 규모의, 획기적이면서도 놀라운 기획의 발현을 만나기 어려웠다. 27개의 국내 크래프트 맥주와 13개의 수입 크래프트 맥주, 즉 총 40개의 다양한 맥주가 온탭된 이 특별한 공간은 이번 박람회를 다녀온 이라면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탭룸은 참가사 부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천장 높이 달린 큰 글씨의 현수막, 멀리서 비추는 아늑한 조명, 멀리서 울리는 음악 소리가 마치 무더 운 여름 밤 락페스티벌의 야외 광장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았다. 푸드트럭에서 풍기는 스테이크의 고소한 향기와 스탠딩 테이블에서 잔을 부딪히는 소리, 분주하게 맥주잔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막 필름지를 벗겨낸 듯 반짝거리는 수많은 스테인레스 탭들이었다.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꿈 속에서라도 좋아하는 맥주를 마음껏 먹을수 있는 기계를 원하기 마련이다. 무려 40개에 달하는 탭 리스트를 한꺼번에 만나니 꿈을 마주한 듯한 황홀함과 동시에 순간 이 많은 맥주들을 어떻게 마실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각 탭 핸들 위로 설치된 사각의 LED 스크린에는 온탭된 국내 브루어리 및 맥주 수입사들의 대표 맥주에 대한 정보가 표시 되어 있었다. 그 위로 각 브루어리들의 로고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는데 비교적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라거나 필스너부터 묵직한 스타우트, 과일의 풍미가 살아있는 IPA, 사워 맥주 등 다양한 라인업의 맥주가 한 곳에 모여있었다. 10ml당 가격이 책정되어 있고, 각 맥주별로 탭 위에 맥주를 생산하는 브루어리, 맥주 이름, 스타일, 알코올 도수, 간략한 설명이 표시되어 있어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브루어리의 맥주를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펍이나 바틀샵을 통해 병으로 마셔본 맥주들도 더러 있었지만 생으로 마시기 어려웠던 귀한 맥주나 처음 만나는 신제품들도 있어 탭을 내리기까지 이리저리 서성이며 입맛을 다셔야 했다.

탭룸은 비어 서버가 맥주를 따라주는 방식이 아니라 셀프 탭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관객들은 입장권 패키지에 포함된 쿠폰을 전용칩과 바꿔 원하는 맥주를 원하는 만큼 직접 따라 마실 수 있었다. 탭룸 입구에는 충전소가 비치되어 있는데 입장권 패키지에 든 쿠폰을 내밀면 5천원이 들어있는 충전칩으로 교환해 준다. 부족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충전소에 들러 원하는 금액만큼의 돈을 충천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 다음 탭 앞에 서서 칩을 화면 아래 태그한 뒤 탭 핸들을 내리면 선택한 맥주가 나오는데, 이때 10ml당 책정된 가격에 맞춰 원하는 양을 채울수록 금액이 차감된다. 선불 카드로 이용 하는 ‘주유소 시스템’이라 생각해도 무방 하다.
또한 탭룸의 별미는 참가자가 직접 탭을 잡고 맥주를 따라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평소 탭을 만질 기회가 없었던 일반 참가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여러가지 맥주를 체험하고 싶은 경우 한번 사용한 잔을 다시 재사용할 수 있도록 탭 하단에 잔을 세척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다른 스타일의 맥주를 번갈아 마셔도 맥주맛이 섞이지 않도록 고안해낸 방법이다. 맥주 애호가부터 초보자 누구라도 본인이 원하는 맥주를 찾고 탭룸 시스템을 통해 서브부터 푸어링, 린싱까지 체험해볼 수 있었다.

KIBEX 탭룸이 완성되기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두 분을 소개하려 한다. 탭룸에 필요한 모든 설비를 제공한 게르츠 코리아의 하상철 본부장과 총괄 운영을 담당한 비어포스트의 장명재 팀장이다. 하상철 본부장은 탭룸에 도입된 드래프트 시스템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에 적용한 건 STAPS 월(wall) 시스템인 데,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존에 있던 것을 소형화한 버전입니다. ‘STAPS 박스’의 형태도 있는데, 브루어리 상황에 따라 월(wall) 또는 상자(box) 중 하나를 설치합니 다. 이번 박람회의 경우 많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맥주를 공급해야 하고, 맥주 종류도 다양하기에 월(wall)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STAPS는 ‘Self-Tap System’의 약자로 소비자가 직접 탭에서 따라 마시는 셀프 시스템이다.

그는 STAPS 시스템의 차별점을 언급했다. “셀프 탭 시스템은 최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곳에 설치된 건 기존의 셀프 탭과는 다릅니다.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에게 맥주 맛은 반드시 높은 수준으로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맥주 자체의 맛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만약 케그가 형편없는 드래프트 시스템과 연결되면 최종적인 맥주 맛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죠. 일단 탭이 케그와 연결되는 순간부터 탄산화가 시작되는데, 그 과정에서 탄산화가 과도하게 진행되면 원치 않은 나쁜 결과를 맥주에 가져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특별히 가져온 장비를 사용해 그런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셀프 탭 시스템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로컬 펍이나 레스토랑의 서버들이 가끔 맥주를 따를 때 원치 않는 거품 때문에 맥주를 망치게 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었다. “사실 그건 직원의 실수라기보다는, 케그 안에 있는 맥주가 과도하게 탄산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드래프트 시스템을 설치하는 데 있어 과도한 탄산화를 억제하는 일이 필수적이며 동시에 충분히 맥주를 신선하게 보전 및 유지시키는 기술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많은 국내 탭 하우스와 로컬 브루어리가 게르츠 코리아의 제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곳 제품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최상의 맥주 맛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죠.” 하 본부장이 덧붙였다.

한가지 더, 게르츠 코리아의 기술력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탭룸의 현장 관리를 담당한 비어포스트 장명재 팀장의 운영과 관리 노하우에 있었다. 장팀장은 현 비어포스트 콘텐츠팀 소속으로 펍 경력을 비롯해 창업 컨설팅과 설비 설계까지 맡아본, 시스템 운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현장 경험을 갖춘 인재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맥주 산업 박람회의 히든 카드이자 모두의 기대가 높았던 ‘탭룸’이었던만큼 인력 배치부터 맥주 라인업 구성과 케그 설치를 비롯해 사소한 것 하나도 직접 챙기며 현장을 감독했다. 첫 박람회였기에 예측 수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점이 그에게는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 얼마나 많은 인원이 어느 시간대에 방문 할지, 또 언제 어떤 맥주의 수요가 많을지, 준비된 맥주량이 수요를 맞추기에 충분 한지 등을 예측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탭 시스템과 연결된 케그의 신선도를 체크하고 교체 타이밍을 빠르게 맞추는 것도 관건이었다.

만 여명이 참가한 KIBEX가 진행되는 3일 동안 대규모의 탭룸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는데는 그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볼 수밖에 없다.“탭룸은 맥주와 IT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펍 비즈니스의 모델을 벗어난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죠.” 그는 덧붙였다.

KIBEX 2019는 한국 최초로 열린 맥주 산 업박람회로 국내외 업계 종사자들에게 다양한 사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KIBEX 탭룸은 사람들과 맥주, 기술이 집합된 소통의 장이자 최초의 맥주 산업 전시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된 기획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모두에게 특별하고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 브루어리와 기술팀, 현장 관계자들의 수고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다가올 KIBEX 2020에서 선보이게 될 탭룸의 진화를 기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