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Oct 29, 2019

맥주, 어떤 잔에 마셔야 좋을까

맥주, 어떤 잔에 마셔야 좋을까 이미지

누군가에겐 어떤 맥주잔에 맥주를 마시는가가 그리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맥주를 알아가다 보면 맥주잔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종래에는 맥주와 잘 맞는 잔이 없으면 맥주 마시기를 꺼리는 강박증에 걸리기도 한다. 심지어 맥주잔을 모으는 잔 덕후들이 있을 정도다. 이번 ‘Keep Calm & Learn Craft’에선 잔마다 어울리는 맥주는 어떤 것이 있는지, 맥주만큼이나 다양한 맥주잔의 세계에 대해 총 정리해보도록 한다.

맥주잔을 고르는 기준

Criteria for choosing beer glasses

많고 많은 맥주잔 중 어떤 맥주에 어떠한 잔을 매칭해야 하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은 예전부터 종종 있어왔다. ‘어떤 캐릭터의 맥주는 어떤 형태의 잔에 따라야 한다’는 명확하고 엄밀한 공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떤 스타일은 어떠한 잔에 나가야 한다’는 보편적 상식들이 일부 존재하긴 한다. 이를 정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일단 잔을 선정할 때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전통이다. 잔의 형태에 따른 맥주의 변화를 논하기 이전에, 전통적으로 ‘당연히 그래왔던 것’이므로 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에일에 노닉 파인트(Nonic Pint), 쾰쉬와 슈탕에(Stange), 트라피 스트 맥주와 고블릿(Goblet) 등이 있다. 이 경우 맥주의 스타일과 특징만을 두고 봤을 땐 다른 잔에 따르는 것이 오히려 더 적합한 경우도 있지만, ‘해당 잔에 담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맥주’이기에 이러한 잔 매칭에 이견을 가지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한편 전통잔이 없는 맥주의 경우엔 정답이 없으므로, 맥주를 따르는 사람의 재량에 달려 있다. 같은 회사의 로고가 붙어있는 맥주잔을 매칭하는 것이 미관상 가장 좋긴 하지만, 한 브루어리에서 여러 형태의 잔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고로 잔의 형태가 맥주의 향과 외관, 거품의 생성량과 유지력, 입에 닿는 촉감, 온도 변화, 맥주를 마시는 분위기와 맥주를 마시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심하고, 가장 적절하다 싶은 것을 고르면 된다.

가령 잔의 스템(Stem, 줄기)이 길거나 손잡이가 존재하는 맥주 잔은 손의 열에 의한 맥주 온도 상승을 방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므로, 지나치게 온도가 높아지지 않아야 하는 맥주들과 매칭하기에좋다. 추가로 스템이 긴 잔은 맥주 온도를 올리지 않으면서 회전(Swirling)시키기 수월하므로 향을 휘발시켜서 더 풍부하게 즐길만한 맥주에도 좋다. 반대로 스니프터(Snifter)처럼 스템이 짧고 볼(Bowl)을 손으로 감싸 쥐기 좋은 형태의 잔은 온도를 높여서 마시기에 용이하므로 높은 온도로 마시는 맥주와 매칭하기에 적합하다. 입구가 좁게 모이는 형태의 잔은 맥주 향을 응축시키기 좋으나, 지나치게 입구가 좁아지는 형태일 경우 림(Rim)이 입에 닿았을 때의 저항감이 커서 반복시음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나팔처럼 입구가 벌어진 형태의 잔은 향을 발산하고, 림이 입에 닿을 때의 저항감이 적으므로 빠르게 반복해서 마시는 맥주에 적합하다. 이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뒤에 가서 잔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더 알아보도록 하자.





맥주의 풍미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분위기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머그잔의 손잡이를 잡느냐, 플루트 잔의 가느다란 스템을 잡느냐, 바이젠 잔의 잘록한 허리를 잡느냐는 맥주를 마시는 기 분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시끌벅적한 축제에서 가볍 게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은 페일 라거를 가느다란 스템을 잡고 우아하게마실수는없지않은가.하지만같은페일라거여도진 중하게 맥주를 시음하는 자리라면 가느다란 스템을 잡고 천천 히음미하며마시는것이훨씬더잘어울린다.이처럼단순히 맥주의 풍미에 대한 고려를 넘어서 맥주가 주는 분위기와 가게 의 분위기,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까지 고려하는 것이 가장 훌륭 하게 잔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이를 바탕으로 실제 잔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떠한 스타일의 맥주와 주로 매치하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어느 정도 매칭 상대가 정해진 잔

Glasses that are more or less dominantly matched

앞서 언급한 대로 어느 정도 정해진 답이 있는 잔을 소개한다. 이 경우 맥주와 잔을 연결할 때 크게 고민할 필요 없이 사이즈와 로고만 고려하면 되므로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맥주 스타일과 잔이 제대로 매치되지 않을 경우에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머그잔에 담겨있는 발리 와인이라니, 상상만 해도 불편하지 않은가.



1. 슈탕에
‘슈탕에’는 독일어로 ‘막대기 형태의 물건’을 칭하는 말로, 이름대로 길쭉하고 직선적인 형태의 잔이다. 좁은 잔 내부가 휘발성 물질을 응축시켜서 농도를 높게 유지해주므로 맥주의 풍미를 증폭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따랐을 때 공기와 맞닿는 맥주의 표면적이 좁기 때문에 탄산을 보존해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슈탕에 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한 번에 여러 잔을 서빙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차지하는 면적이 작고 무게중심이 비교적 아래에 있어 넓은 쟁반에 여러 잔의 맥주를 담기 적합하며, 크랜즈 (Kranz)라는 슈탕에 전용 서빙 쟁반이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 러한 슈탕에 잔은 전통적으로 독일의 쾰쉬(Kolsch)와 알트비어 (Altbier)를 서빙할 때 사용되어온 맥주잔이다. 두 맥주 모두 저 온 숙성을 거친 에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이 지닌 섬세하고 은은한 풍미를 증폭해주고 강한 탄산감을 보존하는 데에 슈탕에가 좋은 역할을 한다. 참고로 톰 콜린스 잔(Tom Collins Glass)과 형태가 같으므로 대체가 가능하다.





2.바이젠 잔

이름 그대로 바이젠을 담기에 좋은 잔이다. 위쪽으로 길쭉한 형태를 하고 있기에 바이젠의 아름다운 색을 만끽하기 좋으며, 잔의 입구 쪽이 모아지는 형태의 굴곡을 지녔으므로 바이젠의 풍성한 거품과 특유의 향을 잘 보존해준다. 바이젠은 다른 스타일에 비해 거품 생성량이 많으므로, 바이젠 잔은 거품용 공간을 감안하여 용량을 크게 만들곤 한다.



3. 머그
손잡이가 달린 형태의 잔으로, ‘독일의 맥주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잔이다. 다른 잔에 비해 유리 두께가 두껍고 튼튼하며, 용량이 큰 편이다. 손잡이와 두꺼운 유리 두께 덕분에 맥주의 온도를 차가운 상태로 오래 유지할 수 있으며, 용량이 크므로 마시기 편한 맥주를 가득 따라 두고 정신없이 마시기에 좋다. 또한 맥주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잔이 튼튼하기에 깨질 걱정 없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대부분 머그 잔은 겉에 둥근 형태의 무늬(Dimpled)나 스트라이프 형태의 홈이 파여 있는데, 이는 잔을 들거나 세척할 때 잔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잔의 가장 큰 장점은 힘껏 건배하기 좋다는 점이며, ‘맥주 마시는 분위기’를 제대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헬레스, 메르첸 등의 독일 라거와 함께 쓰이나, 체코의 필스너를 비롯한 다른 라거에도 매우 잘 어울리는 잔이다. 또한 가벼운 영국 맥주와도 종종 매치되곤 한다.





4. 필스너 잔(Pilsner Glass)
잔이 가늘기에 맥주의 색과 탄산 등을 감상하는 데 적합한 잔이다. 바이젠 잔처럼 위로 길쭉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필스너 잔은 곡선이 없고 직선으로만 이루졌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바이젠 잔은 위쪽이 모이는 형태의 잔이나, 필스너 잔은 위로 갈수록 벌어지는 형태의 잔이다. 이처럼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잔은 맥주의 거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효과적이다. 맥주를 마실수록 맥주의 표면적도 작아지기 때문에 거품층 유지에 필요한 거품의 양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필스너 잔’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통 필스너와 잘 어울리나, 머그잔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라거와 잘 어울린다. 독일 필스너 잔의 경우는 매우 짧은 스템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특별히 포칼(Pokal)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독일의 고제 또한 필스너 잔에 서빙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질소 맥주를 서빙할 때도 굉장히 좋은 잔이라 생각 한다. 폭포처럼 형성되는 서징(Surging) 현상을 관찰하기도 좋고, 부드럽고 농밀한 질소 거품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고블릿과 성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의도적으로 성배를 형상화한 잔이며, 잔 입구가 넓은 볼에 스템을 지니고 있다. 성스러움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금테등으로 림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으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잔 밑바닥에 각인을 새겨두는 경우도 있다. 전통적으로 두벨, 트리펠,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 도펠복 등 수도원과 연관 있는 맥주와 매치되는 잔이다. 이런 맥주의 섬세하고 화사한 향을 보다 풍부하게 즐기기 위해선 입구를 모아주는 형태가 더 좋겠으나, 아무래도 잔이 주는 성스러움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주로 전용잔을 사용한다. 참고로 둘 중에 보다 스템이 가늘고 길며 유리가 얇은 쪽을 고블릿, 두꺼운 쪽을 성배라고 한다.





6.시슬 잔
스코틀랜드의 국화인 엉겅퀴(Thistle)를 형상화한 잔으로, 후에 나올 튤립 잔과 형태가 유사하다. 다만 튤립 잔보다 각져 있으며, 아래 동그란 부분이 작고 위쪽 부분이 더 길다. 스코틀랜드 국화를 형상화한 잔답게 스코틀랜드 맥주인 스카치 에일과 위헤비와 매치되는 잔이다.



7. 노닉 파인트
파인트 잔은 기본적으로 한 파인트(Pint) 용량의 맥주를 담기 위 한 잔을 일컫는 말이다. 문제는 이 ‘파인트’라는 사이즈의 정의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엔 법령에 따라 ‘1파인 트’를 568mL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1파인트’인 473mL보다 약 1.2배 정도 큰 사이즈다. 그래서 영국의 파인트 잔과 미국의 파인트 잔은 같은 이름임에도 사이즈가 서로 다르다. 분명 흔하게 봐오던 파인트 잔인데 뭔가 좀 더 크게 느껴졌다면 영국 파인트 잔인 것이다. 참고로 영국의 파인트는 사이즈가 엄격히 정해진 반면 미국의 파인트는 딱히 사이즈가 엄격히 정해져 있진 않다. 대충 473mL의 언저리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파인트는 크게 아메리칸 파인트와 노닉 파인트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이 중 우선 노닉 파인트에 대해 얘기해보자.




머그잔이 가장 대표적인 독일 맥주잔이라면, 노닉 파인트는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잔이다. 영국의 캐스크 에일(Cask Ale)을 따를 때 사용하는 핸드 펌프(Hand-Pump)의 스완 넥(Swan Neck) 길이가 노닉 파인트의 깊이와 똑같게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 보니 영국 맥주 마니아들은 영국 맥주가 노닉 파인트에 따라져 나오지 않으면 괜히 불편을 호소하곤 한다. 다만 이는 1960년대 이후 노닉 파인트가 개발되고 나서야 자리 잡은 이미지이고, 그전까진 영국에서도 머그 형태의 잔을 주로 사용했다. 어쨌든 임페리얼 스타우트처럼 지나치게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를 제외한 그 어떤 영국 맥주를 담아도 잘 어울리는 잔이다.



노닉 파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잔 상단이 볼록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다. 노닉 파인트의 정체성이 집약돼있다고 볼 수 있는 이 튀어나온 부분(Bulge)은 당연하게도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튀어나온 부분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잡음으로써 맥주잔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주고, 맥주잔들을 겹쳐서 쌓았다가 다시 뺄 때 잔이 잘 빠지도록 해주는 역할도 한다. 애초에 머그잔을 사용하는 펍이 줄어들고 노닉 파인트를 사용하는 곳이 늘어난 이유가 많은 맥주잔을 쌓아서 보관하기 용이하다는 점 때문 이었고, 그렇기에 이 튀어나온 부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맥주잔을 겹쳐서 쌓았다가 다시 빼도 흠집(Nick)이 생기지 않는다 하여 ‘노닉(No Nick-Nonic)’ 파인트라 이름이 지어졌다. 다만 너무도 많은 영국의 맥주집들이 노닉 파인트만을 선호했기에, 영국의 맥주잔은 벨기에나 독일에 비해 다양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됐다는 문제를 야기하긴 했다.

정확히 매칭 상대가 정해져 있진 않은 잔

Glass that is not matched specifically

앞서 언급한 잔들이 특정 맥주 스타일의 상징 같은 역할을 하는 잔들이라면, 지금부터 소개할 잔들은 굉장히 자유롭게 쓰이는 잔들이다. 틀에 얽매일 것 없이 상황에 따라 재량껏 잔과 맥주를 맞춰주면 된다.



1. 아메리칸 파인트/셰이커 파인트
가장 흔하디흔한 맥주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잔이다. ‘아메리칸 파인트’란 이름에 맞게 보통 473mL 내외의 용량을 가지고 있으며, 직선적인 원추(Conical)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액체 등을 담아 흔드는 셰이커(Shaker)와 모양이 같아서 ‘셰이커 파인트’라 부르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노닉 파인트처럼 겹겹이 쌓아 올려 보관하기 편하다는 점과 매우 넓은 범용성 때문에 많은 펍과 브루어리들이 사용하고 있다. 굴곡이 없는 잔이므로 제작 가격이 다른 잔들에 비해 싸다는 점과 잔을 닦기 편하다는 점도 아메리칸 파인트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긴 하다. 아메리칸 파인트는 지나치게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맥주라면 어떠한 맥주에도 쓸 수있는잔이긴하다. 다만 맥주의 풍미를 즐김에 있어서 특별한 장점이 없다 보니 가벼운 라거류를 제외하곤 어떠한 맥주와도 완벽하게 잘 어울리진 않는 잔이기도 하다.




2. 튤립
이름 그대로 튤립 형태의 잔이며, 벨기에 맥주에 가장 많이 쓰이는 대표적인 벨기에 맥주잔이다. 짧은 스템이 있기에 잔을 바닥에 대고 스월링(Swirling)하기에 아주 적합한 잔이다. 더군다나 볼이 입구가 좁아지는 형태여서 맥주의 향기 성분을 모아주므로 맥주의 향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안쪽으로 모이는 형태의 볼에 반해 림은 바깥쪽으로 벌어지는 형태로 굽어있다. 덕분에 입이 닿았을 때의 저항감이 적고, 림이 안쪽으로 모이는 잔에 비해 거품과 맥주를 함께 들이켜기에 좋다. 벨기에 맥주는 대체로 거품이 굉장히 풍성하게 형성되기에 특별히 벨기에 맥주를 위해 만들어지는 튤립 잔은 다른 잔에 비해 사이즈가 큰 편이며, 볼 부분도 다른 잔에 비해 뚱뚱한 편이다. 세종, 벨지안 골든 스트롱 에일, 람빅 등을 비롯한 많은 벨기에 맥주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잔이나, 프룻비어, IPA, 와일드에일, 각종 사워에일 등 향을 풍부히 즐기고 싶은 맥주 스타일이라면 어떠한 것이든 잘 어울리는 만능 잔이다.




3. 플루트
입구가 모이는 형태의 길쭉한 볼과 적당한 길이의 스템을 지니고 있는 형태의 잔이다. 기다란 형태이므로 맥주 거품을 오랫동안 지속 해줄 수 있으며, 향기 성분도 잘 가두므로 향을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또한 스템이 있기에 스월링을 하기에도 좋은, 역시나 여러모로 만능인 잔이다. 다만 샴페인 잔의 형태에서 따온 잔이다 보니 어두운색 맥주보단 밝은색 맥주와 더욱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4. 스니프터
본래 브랜디나 코냑 등 도수가 높은 증류주에 쓰이는 잔이다. 뚱뚱한 볼과 짧은 스템을 지니고 있고, 다른 잔에 비해 림이 안쪽으로 많이 좁아지는 형태의 잔이다. 덕분에 향기 성분을 모아 주어 향을 증폭시켜주는 효과에 있어선 최고의 잔이므로, 보다 신중하고 자세한 시음을 할 때 많이 사용되는 잔이다. 대신 잔이 입에 닿을 때의 저항감이 다소 높은 편이라 빠르게 반복적으로 먹는 맥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로 발리 와인, 올드에일, 임페리얼 스타우트, 아이스복 등 알코올 도수가 높고 풍미가 풍부하며 중후한 맥주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맥주잔이다. 물론 더블 IPA처럼 향이 풍부한 맥주를 더욱 풍부하게 즐기기에도 좋지만 말이다. 참고로 스니프터잔에 맥주를 따를 땐 잔을 가득 채우지 않는 편이 좋다. 가득 찬 스니프터 잔은 맥주를 마시기가 썩 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니프터의 가장 큰 장점인 향을 풍부히 즐길 수 있는 효과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5. 테쿠
이탈리아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사에 의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잔으로, 최고의 크래프트 맥주용 잔으로 꼽힌다. 스니프터처럼 입구 쪽이 아주 좁아지는 형태의 잔이므로 향을 증폭하는 효과가 좋을뿐더러, 튤립 잔처럼 림 부분이 살짝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으므로 입에 잔이 닿는 저항감이 크지 않다. 거기다 길고 가느다란 스템을 지니고 있기에 손의 열이 맥주에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고, 스월링을 하기에도 정말 좋다. 무엇보다도 형태가 아름다우므로 분위기 있는 술자리를 만드는 데에 탁월하다. 그나마 단점을 꼽자면 잔을 닦기가 힘들고 가격이 높다는 점을 꼽을 수 있지만, 단점을 상쇄하는 많은 매력 덕분에 많은 맥주잔 마니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잔이기도 하다. 어떠한 맥주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궁극의 만능잔이다.



이 외에도 독일에서 자주 쓰이는 윌리 베허(Willi Becker), ‘호가 든’의 전용 잔으로 대표되는 텀블러(Tumbler), 마부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잔인 야드(Yard), 유리잔 전문 회사인 슈피겔라우(Spiegelau)에서 만든 IPA잔, 스타우트잔, 윗비어잔 등 더 많은 잔들이 존재하나 널리 쓰이는 잔들은 아니기에 이 글에선 배제했다. 맥주잔이 뭐 그리 대수라고 머리 아프게 이런걸 다 알아둬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속는 셈 치고 몇 번만 맥주와 잔을 맞춰서 마셔보자.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것 외에 어떤 잔에 따라 마실까 고민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임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국내 최초 국제 맥주 산업 박람회 이미지

누군가에겐 어떤 맥주잔에 맥주를 마시는가가 그리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맥주를 알아가다 보면 맥주잔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종래에는 맥주와 잘 맞는 잔이 없으면 맥주 마시기를 꺼리는 강박증에 걸리기도 한다. 심지어 맥주잔을 모으는 잔 덕후들이 있을 정도다. 이번 ‘Keep Calm & Learn Craft’에선 잔마다 어울리는 맥주는 어떤 것이 있는지, 맥주만큼이나 다양한 맥주잔의 세계에 대해 총 정리해보도록 한다.

맥주잔을 고르는 기준

Criteria for choosing beer glasses

많고 많은 맥주잔 중 어떤 맥주에 어떠한 잔을 매칭해야 하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은 예전부터 종종 있어왔다. ‘어떤 캐릭터의 맥주는 어떤 형태의 잔에 따라야 한다’는 명확하고 엄밀한 공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떤 스타일은 어떠한 잔에 나가야 한다’는 보편적 상식들이 일부 존재하긴 한다. 이를 정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일단 잔을 선정할 때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전통이다. 잔의 형태에 따른 맥주의 변화를 논하기 이전에, 전통적으로 ‘당연히 그래왔던 것’이므로 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에일에 노닉 파인트(Nonic Pint), 쾰쉬와 슈탕에(Stange), 트라피 스트 맥주와 고블릿(Goblet) 등이 있다. 이 경우 맥주의 스타일과 특징만을 두고 봤을 땐 다른 잔에 따르는 것이 오히려 더 적합한 경우도 있지만, ‘해당 잔에 담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맥주’이기에 이러한 잔 매칭에 이견을 가지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한편 전통잔이 없는 맥주의 경우엔 정답이 없으므로, 맥주를 따르는 사람의 재량에 달려 있다. 같은 회사의 로고가 붙어있는 맥주잔을 매칭하는 것이 미관상 가장 좋긴 하지만, 한 브루어리에서 여러 형태의 잔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고로 잔의 형태가 맥주의 향과 외관, 거품의 생성량과 유지력, 입에 닿는 촉감, 온도 변화, 맥주를 마시는 분위기와 맥주를 마시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심하고, 가장 적절하다 싶은 것을 고르면 된다.

가령 잔의 스템(Stem, 줄기)이 길거나 손잡이가 존재하는 맥주 잔은 손의 열에 의한 맥주 온도 상승을 방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므로, 지나치게 온도가 높아지지 않아야 하는 맥주들과 매칭하기에좋다. 추가로 스템이 긴 잔은 맥주 온도를 올리지 않으면서 회전(Swirling)시키기 수월하므로 향을 휘발시켜서 더 풍부하게 즐길만한 맥주에도 좋다. 반대로 스니프터(Snifter)처럼 스템이 짧고 볼(Bowl)을 손으로 감싸 쥐기 좋은 형태의 잔은 온도를 높여서 마시기에 용이하므로 높은 온도로 마시는 맥주와 매칭하기에 적합하다. 입구가 좁게 모이는 형태의 잔은 맥주 향을 응축시키기 좋으나, 지나치게 입구가 좁아지는 형태일 경우 림(Rim)이 입에 닿았을 때의 저항감이 커서 반복시음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나팔처럼 입구가 벌어진 형태의 잔은 향을 발산하고, 림이 입에 닿을 때의 저항감이 적으므로 빠르게 반복해서 마시는 맥주에 적합하다. 이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뒤에 가서 잔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더 알아보도록 하자.





맥주의 풍미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분위기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머그잔의 손잡이를 잡느냐, 플루트 잔의 가느다란 스템을 잡느냐, 바이젠 잔의 잘록한 허리를 잡느냐는 맥주를 마시는 기 분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시끌벅적한 축제에서 가볍 게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은 페일 라거를 가느다란 스템을 잡고 우아하게마실수는없지않은가.하지만같은페일라거여도진 중하게 맥주를 시음하는 자리라면 가느다란 스템을 잡고 천천 히음미하며마시는것이훨씬더잘어울린다.이처럼단순히 맥주의 풍미에 대한 고려를 넘어서 맥주가 주는 분위기와 가게 의 분위기,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까지 고려하는 것이 가장 훌륭 하게 잔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이를 바탕으로 실제 잔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떠한 스타일의 맥주와 주로 매치하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어느 정도 매칭 상대가 정해진 잔

Glasses that are more or less dominantly matched

앞서 언급한 대로 어느 정도 정해진 답이 있는 잔을 소개한다. 이 경우 맥주와 잔을 연결할 때 크게 고민할 필요 없이 사이즈와 로고만 고려하면 되므로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맥주 스타일과 잔이 제대로 매치되지 않을 경우에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머그잔에 담겨있는 발리 와인이라니, 상상만 해도 불편하지 않은가.



1. 슈탕에
‘슈탕에’는 독일어로 ‘막대기 형태의 물건’을 칭하는 말로, 이름대로 길쭉하고 직선적인 형태의 잔이다. 좁은 잔 내부가 휘발성 물질을 응축시켜서 농도를 높게 유지해주므로 맥주의 풍미를 증폭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따랐을 때 공기와 맞닿는 맥주의 표면적이 좁기 때문에 탄산을 보존해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슈탕에 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한 번에 여러 잔을 서빙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차지하는 면적이 작고 무게

중심이 비교적 아래에 있어 넓은 쟁반에 여러 잔의 맥주를 담기 적합하며, 크랜즈 (Kranz)라는 슈탕에 전용 서빙 쟁반이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 러한 슈탕에 잔은 전통적으로 독일의 쾰쉬(Kolsch)와 알트비어 (Altbier)를 서빙할 때 사용되어온 맥주잔이다. 두 맥주 모두 저 온 숙성을 거친 에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이 지닌 섬세하고 은은한 풍미를 증폭해주고 강한 탄산감을 보존하는 데에 슈탕에가 좋은 역할을 한다. 참고로 톰 콜린스 잔(Tom Collins Glass)과 형태가 같으므로 대체가 가능하다.





2.바이젠 잔
이름 그대로 바이젠을 담기에 좋은 잔이다. 위쪽으로 길쭉한 형태를 하고 있기에 바이젠의 아름다운 색을 만끽하기 좋으며, 잔의 입구 쪽이 모아지는 형태의 굴곡을 지녔으므로 바이젠의 풍성한 거품과 특유의 향을 잘 보존해준다. 바이젠은 다른 스타일에 비해 거품 생성량이 많으므로, 바이젠 잔은 거품용 공간을 감안하여 용량을 크게 만들곤 한다.

3. 머그
손잡이가 달린 형태의 잔으로, ‘독일의 맥주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잔이다. 다른 잔에 비해 유리 두께가 두껍고 튼튼하며, 용량이 큰 편이다. 손잡이와

두꺼운 유리 두께 덕분에 맥주의 온도를 차가운 상태로 오래 유지할 수 있으며, 용량이 크므로 마시기 편한 맥주를 가득 따라 두고 정신없이 마시기에 좋다. 또한 맥주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잔이 튼튼하기에 깨질 걱정 없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대부분 머그 잔은 겉에 둥근 형태의 무늬(Dimpled)나 스트라이프 형태의 홈이 파여 있는데, 이는 잔을 들거나 세척할 때 잔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잔의 가장 큰 장점은 힘껏 건배하기 좋다는 점이며, ‘맥주 마시는 분위기’를 제대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헬레스, 메르첸 등의 독일 라거와 함께 쓰이나, 체코의 필스너를 비롯한 다른 라거에도 매우 잘 어울리는 잔이다. 또한 가벼운 영국 맥주와도 종종 매치되곤 한다.





4. 필스너 잔(Pilsner Glass)
잔이 가늘기에 맥주의 색과 탄산 등을 감상하는 데 적합한 잔이다. 바이젠 잔처럼 위로 길쭉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필스너 잔은 곡선이 없고 직선으로만 이루졌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바이젠 잔은 위쪽이 모이는 형태의 잔이나, 필스너 잔은 위로 갈수록 벌어지는 형태의 잔이다. 이처럼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잔은 맥주의 거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효과적이다. 맥주를 마실수록 맥주의 표면적도 작아지기 때문에 거품층 유지에 필요한 거

품의 양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필스너 잔’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통 필스너와 잘 어울리나, 머그잔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라거와 잘 어울린다. 독일 필스너 잔의 경우는 매우 짧은 스템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특별히 포칼(Pokal)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독일의 고제 또한 필스너 잔에 서빙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질소 맥주를 서빙할 때도 굉장히 좋은 잔이라 생각 한다. 폭포처럼 형성되는 서징(Surging) 현상을 관찰하기도 좋고, 부드럽고 농밀한 질소 거품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고블릿과 성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의도적으로 성배를 형상화한 잔이며, 잔 입구가 넓은 볼에 스템을 지니고 있다. 성스러움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금테등으로 림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으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잔 밑바닥에 각인을 새겨두는 경우도 있다. 전통적으로 두벨, 트리펠,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 도펠복 등 수도원과 연관 있는 맥주와 매치되는 잔이다. 이런 맥주의 섬세하고 화사한 향을 보다 풍부하게 즐기기 위해

선 입구를 모아주는 형태가 더 좋겠으나, 아무래도 잔이 주는 성스러움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주로 전용잔을 사용한다. 참고로 둘 중에 보다 스템이 가늘고 길며 유리가 얇은 쪽을 고블릿, 두꺼운 쪽을 성배라고 한다.





6.시슬 잔
스코틀랜드의 국화인 엉겅퀴(Thistle)를 형상화한 잔으로, 후에 나올 튤립 잔과 형태가 유사하다. 다만 튤립 잔보다 각져 있으며, 아래 동그란 부분이 작고 위쪽 부분이 더 길다. 스코틀랜드 국화를 형상화한 잔답게 스코틀랜드 맥주인 스카치 에일과 위헤비와 매치되는 잔이다.





7. 노닉 파인트
파인트 잔은 기본적으로 한 파인트(Pint) 용량의 맥주를 담기 위 한 잔을 일컫는 말이다. 문제는 이 ‘파인트’라는 사이즈의 정의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엔 법령에 따라 ‘1파인 트’를 568mL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1파인트’인 473mL보다 약 1.2배 정도 큰 사이즈다. 그래서 영국의 파인트 잔과 미국의 파인트 잔은 같은 이름임에도 사이즈가 서로 다르다. 분명 흔하게 봐오던 파인트 잔인데 뭔가 좀 더 크게 느껴졌다면 영국 파인트 잔인 것이다. 참고로 영국의 파


인트는 사이즈가 엄격히 정해진 반면 미국의 파인트는 딱히 사이즈가 엄격히 정해져 있진 않다. 대충 473mL의 언저리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파인트는 크게 아메리칸 파인트와 노닉 파인트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이 중 우선 노닉 파인트에 대해 얘기해보자.



머그잔이 가장 대표적인 독일 맥주잔이라면, 노닉 파인트는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잔이다. 영국의 캐스크 에일(Cask Ale)을 따를 때 사용하는 핸드 펌프(Hand-Pump)의 스완 넥(Swan Neck) 길이가 노닉 파인트의 깊이와 똑같게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 보니 영국 맥주 마니아들은 영국 맥주가 노닉 파인트에 따라져 나오지 않으면 괜히 불편을 호소하곤 한다. 다만 이는 1960년대 이후 노닉 파인트가 개발되고 나서야 자리 잡은 이

미지이고, 그전까진 영국에서도 머그 형태의 잔을 주로 사용했다. 어쨌든 임페리얼 스타우트처럼 지나치게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를 제외한 그 어떤 영국 맥주를 담아도 잘 어울리는 잔이다.

노닉 파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잔 상단이 볼록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다. 노닉 파인트의 정체성이 집약돼있다고 볼 수 있는 이 튀어나온 부분(Bulge)은 당연하게도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튀어나온 부분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잡음으로써 맥주잔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주고, 맥주잔들을 겹쳐서 쌓았다가 다시 뺄 때 잔이 잘 빠지도록 해주는 역할도 한다. 애초에 머그잔을 사용하는 펍이 줄어들고 노닉 파인트를 사용하는 곳이 늘어난 이유가 많은 맥주잔을 쌓아서 보관하기 용이하다는 점 때문 이었고, 그렇기에 이 튀어나온 부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맥주잔을 겹쳐서 쌓았다가 다시 빼도 흠집(Nick)이 생기지 않는다 하여 ‘노닉(No Nick-Nonic)’ 파인트라 이름이 지어졌다. 다만 너무도 많은 영국의 맥주집들이 노닉 파인트만을 선호했기에, 영국의 맥주잔은 벨기에나 독일에 비해 다양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됐다는 문제를 야기하긴 했다.

정확히 매칭 상대가 정해져 있진 않은 잔

Glass that is not matched specifically

앞서 언급한 잔들이 특정 맥주 스타일의 상징 같은 역할을 하는 잔들이라면, 지금부터 소개할 잔들은 굉장히 자유롭게 쓰이는 잔들이다. 틀에 얽매일 것 없이 상황에 따라 재량껏 잔과 맥주를 맞춰주면 된다.



1. 아메리칸 파인트/셰이커 파인트
가장 흔하디흔한 맥주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잔이다. ‘아메리칸 파인트’란 이름에 맞게 보통 473mL 내외의 용량을 가지고 있으며, 직선적인 원추(Conical)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액체 등을 담아 흔드는 셰이커(Shaker)와 모양이 같아서 ‘셰이커 파인트’라 부르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노닉 파인트처럼 겹겹이 쌓아 올려 보관하기 편하다는 점과 매우 넓은 범용성 때문에 많은 펍과 브루어리들이 사용하고 있다. 굴곡이 없

는 잔이므로 제작 가격이 다른 잔들에 비해 싸다는 점과 잔을 닦기 편하다는 점도 아메리칸 파인트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긴 하다. 아메리칸 파인트는 지나치게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맥주라면 어떠한 맥주에도 쓸 수있는잔이긴하다. 다만 맥주의 풍미를 즐김에 있어서 특별한 장점이 없다 보니 가벼운 라거류를 제외하곤 어떠한 맥주와도 완벽하게 잘 어울리진 않는 잔이기도 하다.





2. 튤립
이름 그대로 튤립 형태의 잔이며, 벨기에 맥주에 가장 많이 쓰이는 대표적인 벨기에 맥주잔이다. 짧은 스템이 있기에 잔을 바닥에 대고 스월링(Swirling)하기에 아주 적합한 잔이다. 더군다나 볼이 입구가 좁아지는 형태여서 맥주의 향기 성분을 모아주므로 맥주의 향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안쪽으로 모이는 형태의 볼에 반해 림은 바깥쪽으로 벌어지는 형태로 굽어있다. 덕분에 입이 닿았을 때의 저항감이 적고, 림이 안쪽으로 모이는 잔에 비해 거품과 맥주를 함께 들이켜기에


좋다. 벨기에 맥주는 대체로 거품이 굉장히 풍성하게 형성되기에 특별히 벨기에 맥주를 위해 만들어지는 튤립 잔은 다른 잔에 비해 사이즈가 큰 편이며, 볼 부분도 다른 잔에 비해 뚱뚱한 편이다. 세종, 벨지안 골든 스트롱 에일, 람빅 등을 비롯한 많은 벨기에 맥주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잔이나, 프룻비어, IPA, 와일드에일, 각종 사워에일 등 향을 풍부히 즐기고 싶은 맥주 스타일이라면 어떠한 것이든 잘 어울리는 만능 잔이다.





3. 플루트
입구가 모이는 형태의 길쭉한 볼과 적당한 길이의 스템을 지니고 있는 형태의 잔이다. 기다란 형태이므로 맥주 거품을 오랫동안 지속 해줄 수 있으며, 향기 성분도 잘 가두므로 향을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또한 스템이 있기에 스월링을 하기에도 좋은, 역시나 여러모로 만능인 잔이다. 다만 샴페인 잔의 형태에서 따온 잔이다 보니 어두운색 맥주보단 밝은색 맥주와 더욱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4. 스니프터
본래 브랜디나 코냑 등 도수가 높은 증류주에 쓰이는 잔이다. 뚱뚱한 볼과 짧은 스템을 지니고 있고, 다른 잔에 비해 림이 안쪽으로 많이 좁아지는 형태의 잔이다. 덕분에 향기 성분을 모아 주어 향을 증폭시켜주는 효과에 있어선 최고의 잔이므로, 보다 신중하고 자세한 시음을 할 때 많이 사용되는 잔이다. 대신 잔이 입에 닿을 때의 저항감이 다소 높은 편이라 빠르게 반복적으로 먹는 맥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로 발리

와인, 올드에일, 임페리얼 스타우트, 아이스복 등 알코올 도수가 높고 풍미가 풍부하며 중후한 맥주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맥주잔이다. 물론 더블 IPA처럼 향이 풍부한 맥주를 더욱 풍부하게 즐기기에도 좋지만 말이다. 참고로 스니프터잔에 맥주를 따를 땐 잔을 가득 채우지 않는 편이 좋다. 가득 찬 스니프터 잔은 맥주를 마시기가 썩 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니프터의 가장 큰 장점인 향을 풍부히 즐길 수 있는 효과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5. 테쿠
이탈리아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사에 의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잔으로, 최고의 크래프트 맥주용 잔으로 꼽힌다. 스니프터처럼 입구 쪽이 아주 좁아지는 형태의 잔이므로 향을 증폭하는 효과가 좋을뿐더러, 튤립 잔처럼 림 부분이 살짝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으므로 입에 잔이 닿는 저항감이 크지 않다. 거기다 길고 가느다란 스템을 지니고 있기에 손의 열이 맥주에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고, 스월링을 하기에도 정말 좋다. 무엇보다도 형태가 아름다우므로 분위기 있는 술자리를 만드는 데


에 탁월하다. 그나마 단점을 꼽자면 잔을 닦기가 힘들고 가격이 높다는 점을 꼽을 수 있지만, 단점을 상쇄하는 많은 매력 덕분에 많은 맥주잔 마니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잔이기도 하다. 어떠한 맥주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궁극의 만능잔이다.

이 외에도 독일에서 자주 쓰이는 윌리 베허(Willi Becker), ‘호가 든’의 전용 잔으로 대표되는 텀블러(Tumbler), 마부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잔인 야드(Yard), 유리잔 전문 회사인 슈피겔라우(Spiegelau)에서 만든 IPA잔, 스타우트잔, 윗비어잔 등 더 많은 잔들이 존재하나 널리 쓰이는 잔들은 아니기에 이 글에선 배제했다. 맥주잔이 뭐 그리 대수라고 머리 아프게 이런걸 다 알아둬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속는 셈 치고 몇 번만 맥주와 잔을 맞춰서 마셔보자.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것 외에 어떤 잔에 따라 마실까 고민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임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EDITOR 김정환
TRANSLATOR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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