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다. IPA에서는 코로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향이나 열대과일의 향이 들어오고 쌉쌀한 홉의 쓴맛을 중심으로 몰트의 단맛이 뒤를 받쳐준다. 그리고 맥주가 지나간 다음에는 홉의 잔향과 쌉쌀한 맛이 입안에 맴돈다. 스타우트는 구운 곡물의 향과 커피를 연상시키는 태운 곡물의 맛이 입안을 지배한다. 이처럼 장르나 주로 사용된 재료 또는 양조자의 의도에 따라 강조되거나 도드라지는 맛은 다르지만 홉과 몰트의 풍미를 중심으로 쓴맛, 단맛, 과일의 풍미나 볶은 곡물, 커피 등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맛이 어우러진다. 만약 맥주의 맛을 느낄 때 어떤 불편한 맛이 있다면 어떨까? 한 모금 들이켠 맥주에서 삶은 채소의 향이나 신문지의 냄새가 난다면 이러한 부분을 기분 좋은 향이나 풍미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맥주에 바람직하지 못한 맛이나 향을 이취(Off Flavor)라고 한다.
이취는 사전적인 의미로 식품 성분의 화학적 변화나 오염에 의해 발생하는 풍미를 말한다. 맥주에 있어서는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맥주에서 느껴지지 않아야 할 풍미를 말하며, 맥주의 이취는 양조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맥주에 나타나는 이취의 종류에 따라 발생 원인을 파악할 수도 있다. 또한 맥주에서 느껴지는 이취는 어느 한 가지만 나타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이취가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다. 다양한 이취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만큼 맥주가 많은 문제에 노출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대표적으로 발상하는 이취는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 알코올 향(Alcoholic), 떫음(Astringent), 클로로페놀(Chlorophenol), 다이아세틸(Diacetyl), 디메틸 설파이드(DMS, Dimethyl Sulfide), 에스테리/프루티(Estery/Fruity), 금속성 맛(Metallic), 산화취(Oxidation), 스컹키(Skunky), 산미(Sour/Acidic), 이스티(Yeasty)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취가 발생하는 원인과 맥주에서 어떻게 감지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아세트알데하이드는 효모에 의한 발효 중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다. 맥주에서 청사과(Green Apple)나 풀을 잘랐을 때의 향, 호박을 잘랐을 때의 향 등을 일으킨다. 시간이 지나며 알코올(에탄올)로 변화하게 되며 점차 감소하게 된다. 주 발효 후 충분한 숙성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맥주를 발효하는 데 필요한 양만큼의 효모가 투여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박테리아에 의한 오염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에는 특히 청사과의 뉘앙스가 두드러진다. 아세트알데하이드의 이취를 피하기 위해서는 맥주의 발효 후 충분한 숙성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으며, 발효에 투여되는 효모의 건강 상태와 함께 맥즙의 비중에 맞는 충분한 양의 효모를 투여해야 한다.
모든 맥주는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인 만큼 알코올이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알코올의 쓴맛, 아세톤, 페인트, 시너 등을 연상시키는 강렬하면서 날카롭고 기분 나쁜 알코올의 맛은 이취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분 나쁜 알코올을 퓨젤 알코올(Fusel Alcohol) 또는 퓨젤 오일(Fusel Oil) 이라고 하는데, 발효 시의 온도가 너무 높거나 맥즙의 낮은 pH 등으로 효모의 활동이 제약될 때 생성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효 시 온도가 26도를 넘지 않게 하는 것이 좋으며, 맥주 하부에 퇴적되는 트룹(Trub)과의 접촉 시간을 줄이는 것이 도움을 주므로 발효조를 옮기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맥주의 맛에서 떫거나 톡 쏘는 날카로움이나 식초 등을 먹었을 때의 입이 마르는 듯한 느낌, 가루를 먹었을 때와 같은 느낌을 준다. 폴리페놀이나 타닌 등을 원인으로 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특히 타닌의 경우 과일의 껍질뿐만 아니라 곡물의 껍질에도 존재한다. 매싱 시간이 지나치게 길거나 매싱 시 사용되는 곡물을 너무 곱게 빻을 경우에 곡물의 껍질에서 타닌이 추출될 수 있다. 또한 매싱 시 pH가 5.2-5.6의 수준을 초과하거나 과도한 호핑에 의해서도 떫은 느낌이 맥주에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매싱 시 적정한 곡물의 분쇄도를 유지하는 것과 함께 스파징에 사용되는 물의 양이 과도하거나 온도가 적정 수준보다 높지 않아야 한다. 또한 과일을 첨가하는 맥주는 과일을 끓일 경우 타닌이 추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
염소 소독 처리된 수돗물을 사용하여 맥주를 양조할 때 물에 녹아 있는 염소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았을 경우에 발생한다.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맛이 나타나며, 양조에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비를 세척하게 될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다. 몇몇 야생 효모가 양조과정에 유입되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 염소 처리된 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사용해야 하는 경우 염소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15분 이상 물을 끓인 뒤 식혀서 정수 필터를 사용하여 염소를 제거해야 한다.
모든 효모의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질로 생성 뒤 효모에 의해 재흡수된다. 그러나 맥주에 다이아세틸의 농도가 높을 경우 버터, 버터 스카치 또는 산패한 버터, 미끈한 질감으로 나타난다. 응집도가 높은 효모를 사용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효모 또는 변이된 효모를 사용할 경우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맥즙 내 산소 포화도가 적절하지 못한 경우, 발효 온도가 낮은 경우, 끓임 과정의 시간이 짧은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 생성된 다이아세틸의 재흡수를 돕기 위해서는 건강한 효모를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효모 사용 전 스타터를 만들어 효모의 초기 증식을 돕는 것과 함께 효모 피칭 후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고 충분한 발효시간을 확보하며 과도한 산소의 유입을 피하는 것이 좋다.
DMS는 곡물의 맥아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로 맥주에서 삶은 옥수수나 야채의 맛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은 맛이 생성되는 원인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끓임 과정이나 끓임 후 냉각시간 지연 등이 원인이 된다. DMS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맥즙을 끓이는 시간을 적어도 1시간 정도 유지하여 DMS가 휘발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끓임 시간뿐만 아니라 충분한 DMS의 휘발이 일어날 수 있도록 뚜껑을 열어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맥즙을 끓인 후 식히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되면 DMS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최대한 빨리 맥즙을 냉각해야 한다.
맥주를 마시다 보면 마치 철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씹은 것 같은 금속의 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때때로는 피의 맛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맛은 주로 철분을 다량 함유한 물을 사용하거나 손상된 케그나 병 마개를 사용할 경우 또는 표면 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금속 양조 장비를 이용해서 맥주를 양조할 경우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맛을 피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맥주를 구입할 때 병뚜껑이 녹슬어 있거나 손상되어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것이다. 양조의 과정에서는 철이나 알루미늄 등의 금속으로 된 장비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장비를 사용하면 금속성의 맛이 맥주에서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맥주도 산소와 접촉할 경우 산화가 일어나게 된다. 물론 효모를 투여하기 전에 효모의 원활한 번식을 위해 맥즙이 충분한 산소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발효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가 마시기까지의 과정에서 산소는 맥주의 맛을 변질시키는 원인이 된다. 산소와의 접촉으로 인해 산화가 되면 젖은 골판지, 신문지, 썩은 야채 등을 연상시키는 맛이 발생한다. 이러한 맛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산소와의 접촉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맥주를 용기에 옮길 때 맥주를 옮겨 담기 전 이산화탄소를 가득 채운 뒤 맥주를 주입하고, 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빈 공간은 최소화하는 것이 산화 방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맥주는 직사광선에 취약하다. 맥주의 필수 재료인 홉은 알파산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 알파산이 특히 자외선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햇빛이나 형광등에서 쏘아져 나오는 자외선은 알파산을 분해하고, 황화수소와 반응하게 되는데 이 반응으로 스컹크가 뿜는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가진 물질인 메르캅탄(Mercaptan)을 생성한다. 그래서 직사광선에 노출된 맥주에서는 스컹크 냄새, 곰팡내, 태운 고무를 연상시키는 냄새가 난다. 맥주를 짙은 갈색의 유리병에 담는 이유도 이와 같은 직사광선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갈색 병의 경우에는 약 95% 정도의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반면, 초록색 병은 약 20-40% 정도 밖에 차단하지 못하며 투명한 병의 경우에는 거의 차단하지 못한다. 직사광선으로부터 맥주를 지키기 위해서는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알루미늄 캔이 우월한 성능을 보이며, 종 이로 만들어진 맥주 박스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의도적으로 신맛을 가지도록 양조한 사워 맥주를 제외하면 날카로운 산미나, 식초를 연상시키는 신맛은 이취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야생 효모를 이용한 람빅 스타일의 맥주에서 느껴지는 신맛은 야생 효모와 박테리아에 고의적으로 노출하는 과정을 통해 유도되는 맛이지만, IPA에서 느껴지는 신맛은 이취인 것이다. 신맛은 박테리아나 야생 효모의 감염을 통해 발생되는데, 이러한 맛을 피하기 위해서는 양조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살균이 필요하다.
어떤 맥주가 우리의 입맛에 맞을 때 또는 장르의 특성에 부합하는 맛이 잘 나타날 때 우리는 ‘맛있는 맥주’ 혹은 ‘좋은 맥주’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반대로 맥주에서 불쾌하거나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맛이나 향이 느껴질 경우에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이처럼 맥주는 우리가 마시는 음료로 풍미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 이때 개인의 영역에서는 어떤 맥주가 가지는 맛이 입맛에 맞느냐로 판단할 수 있지만, 맥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경우에는 조금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즉, 각 장르에 따라 도드라져야 하는 특징과 함께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풍미의 영역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식 IPA의 경우에는 미국이나 신대륙 홉이 가지는 시트러스나 열대 과일을 연상시키는 홉의 향과 홉의 쓴맛이 살아나야 하며, 효모의 캐릭터는 거의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만약 효모의 특성이 지나치게 부각되거나 홉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미국식 IPA라는 장르로 분류하는 것이 부적합하다’ 또는 ‘장르 분류가 잘못되었다’는 식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즉, ‘효모적 특성이 도드라지는’ 것이 바람직한 스타일에서 에스테르나 페놀의 캐릭터가 도드라진다면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스타일에서는 이취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사워 맥주의 영역에서 신맛은 바람직한 맛이지만, 사워 맥주가 아닐 경우의 신맛은 이취로 취급된다. 다이아세틸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맥주 스타일, 특히 라거의 영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아야 할 맛이지만, 영국식 ESB(Extra Special Bitter) 영역에서 약간의 다이아세틸은 허용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장르의 관점에서 이취에 접근하는 경우 특정한 스타일의 맥주에서는 허용되는 풍미이지만 또 다른 스타일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맛이나 향이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이취는 절대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하다. 재료의 준비, 양조 과정, 유통 과정에 걸쳐 잘못된 방법에 의해 생겨나는 불쾌한 맛과 향은 절대적인 관점에서 이취라고 볼 수 있지만, 장르의 특성에 따라 일정 정도는 허용되기도 하고 권장되기도 하는 맛의 특성이 다른 장르의 맥주에서는 이취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취를 기준으로 ‘맥주의 맛있음’을 평가하는 것은 단일의 기준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며, 장르적 특성을 고려한 스타일의 정합성을 평가하는 도구 중 하나로 유용한 것이 이취의 평가다. 맥주는 아주 민감하고 섬세한 음료다. 만드는 과정에서 오염에 쉽게 노출되기도 하고, 어떤 한 가지의 과정에서 부족함이 있을 때 여실히 맛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홈브루잉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장비가 취약하기 때문에 상업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맥주에 비해 더 다양하고 강렬한 이취를 맛보게 되기도 한다. 유통과 보관 역시 마찬가지로 이취의 원인을 역 추적해서 어떠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찾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어쩌면 이 맥주가 얼마나 순탄한 혹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 내가 맛보게 되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이자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취가 맥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맥주라고 할지라도 서브에 이르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는 만큼, 이취를 기준으로 맥주의 절대적 평가를 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