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이해함에 있어, 아니 모든 주류를 이해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효모다. ‘인간은 맥즙(Wort)을 만들 뿐이고, 진짜 맥주는 효모가 만든다’는 말이 있듯 효모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고 맥주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온 인류에 술이라는 행복을 하사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하는 효모는 대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맥주에서의 효모는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흔히 ‘미생물’하면 세균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동물이 어류, 조류, 파충류, 포유류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듯 미생물도 세균뿐 아니라 고세균, 곰팡이, 조류 등 다양한 강(Class)으로 나뉜다. 효모도 이러한 미생물의 강 중 하나다. 같은 포유류에서도 기린, 사자, 소, 늑대, 인간 등이 생김새나 특징이 완전히 다르듯 같은 효모여도 종이 다르면 다른 서식환경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생산 물질 또한 다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효모라 부르는 미생물은 그런 온갖 효모 중 독성이 없고, 당분을 알코올
과 이산화탄소로 바꾸는 능력이 특별히 탁월하며, 만들어내는 맛까지 좋은, 정말 신이 내렸다고 할 만큼 극소수의 몇몇 종류만을 칭하는 말이다. 이렇게 생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효모를 그저 단순히 당분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바꾸어주는 특정 물질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름이 비슷하단 이유로 ‘효소’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효소는 그저 특정 화학 반응을 도와주는 단백질 분자에 불과하며 효모는 그러한 효소들을 생산하며 이를 이용해 살아가는 하나의 생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많이 다르다.
효모 중에서도 맥주에 사용하는 효모는 한정적이다. 맥주에 사용하는 효모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 그리고 기타 여러 야생 효모들이다. 맥주는 이중 어떤 효모를 썼느냐에 따라 에일과 라거, 기타 특수한 맥주(대표적으로 람빅)로 나뉘게 된다.
이들 셋은 서로 종(Species)부터가 다르다. 일단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만 살펴보자면, 에일 효모의 학명은 Saccharomyces cerevisiae(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 라거 효모 의 학명은 Saccharomyces pastorianus(사카로마이세스 파스토리아누스)다. 이 둘의 속(Genus)은 ‘사카로마이세스’로 같으나 종(Species)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큰 틀에선 유사하나 세부적인 부분이 다른 효모라는 것이다.
반면 야생 효모는 아예 속부터가 다른 경우가 많다. 람빅이나 미국의 와일드 에일(Wild Ale) 양조에 많이 이용되는 대표적인 야생 효모인 ‘브렛(Brett)’의 학명은 Brettanomyces bruxellensis(브레타 노마이세스 브뤼셀렌시스)로 이름부터 에일 효모나 라거 효모와는 크게 다른 효모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라거와 에일의 차이는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은 반면, 야생 효모가 들어간 맥주는 맛이 아주 다르니 쉽게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는 앞서 말했듯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최적 발효 온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에일 효모는 비교적 따뜻한 온도에서 발효를 하는 데 많이 이용하고 라거 효모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를 하는 데 많이 이용된다. 간혹 에일 효모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고, 라거 효모는 추운 곳에서 잘 자란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라거 효모도 다소 따뜻한 곳에서 키워야 더 잘 자란다. 다만 따뜻한 곳에서 발효를 시키면 라거에서 기대되는 깔끔함이 떨어지고 맛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맥주 스타일이 라거 효모로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켜 만든 캘리포니아 커먼(California Common)이다. 라거 효모는 에일 효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운 곳에 대한 내성이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이에 대한 생물학적 뒷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지금의 라거 효모는 에일 효모와 Sacchromyces eubayanus(사카로마이세스 유바야누스)라는 효모가 서로 교잡되어 만들어진 잡종이다. S.eubayanus는 아르헨티나의 숲에서 처음 채취된 야생 효모의 일종인데, 저온에서도 발효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덕분에 둘의 잡종인 라거 효모는 에일 효모의 알코올 발효를 잘 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으면서 S. eubayanus의 저온에서 발효를 잘 하는 특성 또한 동시에 지니게 된 최적의 효모가 된 것이다. 이 둘이 어쩌다가 교잡이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나, 이 우연의 산물 덕분에 우리는 라거라는 매력 넘치는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최적 발효 온도의 여파로 에일 효모는 발효를 빠르게 진행하고, 라거 효모는 발효를 천천히 진행한다는 결과 또한 나오게 된다. 대부분의 화학 반응은 온도가 높을수록(물론 적당히 높아야겠지만) 더 빠르게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리고 맛에 대한 차이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에일 효모는 라거 효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스테르 등 여러 향미 물질을 생성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반면 라거 효모는 에스테르 생성 능력이 떨어지기에 에일은 상대적으로 다채롭고, 라거는 상대적으로 깔끔한 맛을 지니게 된다. 추가로 라거 효모는 발효과정에서 여러 황화물을 만들어 내는데 이 황화물은 굳이 비유하자면 썩은 달걀이나 유황 온천에서의 그런 구린내를 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황화물은 효모가 다시 섭취하거나, 장기간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날아가 버려 완성 시엔 구린 향이 많이 사라지게 된다.
이외의 차이가 몇 가지 더 있지만 미미한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라거 효모는 에일 효모가 생성하지 못하는 멜리비아제(Melibiase)라는 효소를 생성하여 라피노오즈(Raffinose)라는 당을 완전 분해 가능하다. 그러나 맥즙내 라피노오즈의 함량이 워낙 적기에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 또 에일 효모는 효모 서로 간에 달라붙는 성질(응집력)이 전반적으로 강한 반면 라거 효모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도 있긴 하지만 바이젠 효모 등의 예외도 존재하므로 이 또한 크게 중요하진 않다.
여기서 의문을 품은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는 각각 딱 한 종의 효모라는데 각 맥주마다 느껴지는 효모의 맛은 왜 천차만별일까. 인류는 모두가 다 똑같은 학명(Homo sapiens)이지만 문화별, 나라별로 인간 개개인의 개성은 천차만별인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인류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술을 만들어 왔고, 양조장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맛을 위해 연구와 시행을 거듭한 끝에 지금과 같이 다양한 맛을 내는 여러 효모들이 인위적으로 선별된 것이다(비록 효모의 존재는 몰랐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S. cerevisiae여도 잉글리시 에일 효모와 바이젠 효모가 내는 맛은 한눈에 봐도 구분이 될 정도로 차이가 확연하다.
그렇다면 효모가 내는 맛의 차이는 효모마다 만들어내는 물질이 다른 것에 기인한다. 효모는 앞서 설명했듯 단순히 당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알코올만을 뱉어내는 기계가 아니다. 효모는 주로 당을 먹지만 당이 없을 땐 자신이 만들어낸 아세트알데히드나 디아세틸을 먹거나 다른 죽은 효모를 분해하여 먹기도 하며 산소가 주어지면 알코올마저 다시 먹어 치우기도 한다. 그리고 만들어내는 물질 또한 자신이 성장한 환경(온도, 영양상태 등)과 균주에 따라 서로 다르며(심지어 발효조 모양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한다),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다양한 에스테르와 페놀, 글리세롤과 이취 물질들 등을 추가로 만들어내게 된다.
이중 효모의 맛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에스테르와 페놀이다. 에스테르는 알코올(우리가 흔히 ‘알코올’이라 칭하는 에탄올뿐 아니라 화학적 의미로서의 모든 알코올)과 산이 세포 내부의 효소작용인 에스테르화 반응을 거치며 생산된 물질로서, 쉽게 표현하자면 과일 맛을 주로 내는 화합물이다. 에스테르는 여러 종류가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바이젠의 바나나 맛을 담당하는 아세트산 이소아밀(iso-amyl acetate)이라던가 사과, 배 등의 맛을 내는 카프릴산 에틸(ethyl caprylate)과 카프로산 에틸(ethyl caproate) 등이 있다.
반면 페놀은 향신료나 약 같은 향미를 주로 내는 화합물이라 보면 된다. 보통 일반적인 맥주에서의 강한 페놀 풍미는 이취로 여겨지기에 페놀 생산을 억제하곤 하지만, 벨지안 맥주를 필두로 한 몇몇 맥주에서의 페놀 캐릭터는 맥주에 매력을 더해준다. 대표적인 것이 바이젠에서의 정향과 같은 풍미를 주는 4-비닐 구아야콜(4-Vinyl guaiacol)이며, 야생효모인 ‘브렛’이 들어간 맥주에서 느낄 수 있는 흔히 ‘말 안장’이라 부르는 구릿한 캐릭터도 페놀의 일종인 4-에틸 페놀(4-ethyl phenol)로 인해 나는 향이다.
페놀을 표현하는 말은 굉장히 다양하며 실제로 맛을 접해보기 전까진 들어도 감이 안 잡힐법한 맛들이 많다. 사진의 정향(Clove), 말안장(Horse Saddle), 밴드(Band-aid like), 소독약( Medicinal Aroma) 외에 스모키(Smokey), 알싸함(Spicy) 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양조가들은 이러한 여러 효모의 풍미 중 자신이 원하는 맛을 맥주에 입히기 위해 신중히 균주를 고르고, 효모가 지낼 환경 또한 신중하게 만들어준다. 자칫 효모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풍미는커녕 좋지 않은 향들만 풍기는, 양조가로선 최악의 상황에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지금까지 효모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이러한 효모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맥주를 완성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