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나이더 바이스 브로이하우스, 호프브로이하우스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도시. 베를린, 함부르크에 이은 독일 3대 도시 중의 하나인 뮌헨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단연 가보고 싶은 도시로 1등일 수밖에 없습니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매년 6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하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지역 축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뮌헨의 인구는 약 150만 정도로 우리나라 수원의 인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사는 인구의 네 배나 되는 사람들이 2주 동안 방문한다니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맥주를 좋아한다면 죽기 전에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축제인 것 같은데요, 뮌헨은 꼭 옥토버페스트 기간이 아니어도 도시 자체가 너무 아름답고 곳곳에 맥주를 마실수 있는 명소가 있으니 가볼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독일에 출장을 와서 저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하루의 시간이 뮌헨에서 생겼습니다. 뮌헨이 처음이라 하루 동안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나 구글 지도를 켜놓고 검색을 하면서 수십 가지의 계획을 세워봅니다. 뮌헨에서 제법 가까운 안덱스(Andechs) 수도원과 바이에른 뮌헨 축구팀의 홈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도 가보고 싶고, 뮌헨의 유명한 맥주도 마시고 싶고,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크다는 도심의 공원인 잉글리시 가든도 보고 싶은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참 난감합니다. 이러다가 피곤해져서 포기하고 그저 담담해집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시차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일찍 일어난 덕에 호텔 조식을 먹으면서 결정되지 않은 여행을 생각해봅니다.
‘일단 나가자.’
독일 여행이 처음인 사람은 크게 두 가지만 인식하고 가면 별 실수는 하 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것은 ‘중앙역(Hauptbahnhof)’과 광장(Platz)입니다. 기차가 발달한 독일에서 숙소는 중앙역 근처에 잡으면 시내 이동이 쉽고 특히 공항과 연결이 잘 되어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좋은 거점이 됩니다. 뮌헨 중앙역 근처에는 다양한 수준의 호텔들이 많아서 각자의 형편에 맞는 숙소를 예약하면 좋습니다.
여행자들이 많아서 여러 국적의 음식점도 있으니 소시지가 질릴 때 즈음에 아시안 누들 한 그릇 하기에도 좋습니다. 일단 나가서 중앙역을 지나 뮌헨 도시의 한가운데 있는 마리엔광장 (Marien Platz)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오늘 여행은 수필처럼 형식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이 발길 닫는 데로 걸음을 옮기다가 멋진것이 나오면 보고 목마르면 마시고 배고프면 먹는 진정 리버럴한 여행자 모드로 세팅을 합니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건물이 옛것을 보존하면서 현대화 되었기 때문에 걸어 다녀도 전혀 심심하지 않습니다. 중앙역에서 마리엔 광장까지 가는 트램이나 전철이 있지만 걸어가는 동안 옛날 건물들과 사 람들을 보니 걷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트램이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과정마저 귀찮아서 일단 걷기 시작한 뮌헨은 걸어서 보니 더 매력적인 도시인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도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골목의 매력이 있듯이 하루 정도는 걸어서 천천히 도시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새삼 뮌헨에서 깨닫습니다.
도시는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계획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리엔 광장에는 벌써 많은 여행자들이 있습니다. 마침 나의 하루는 일요일이라서 독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아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문 닫은 상점 앞에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수준급의 버스커들을 보는 재미가 그 아쉬움도 잊게합니다. 일정 간격을 두고 연주하는 버스커들은 꽤나 실력이 좋아서 지나가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일단 멈추게 합니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어우러진 버스커들의 음악은 마치 오늘 하루 일상에 지친 여행자들을 달래주는 신들의 메시지 같습니다.
‘가끔은 그렇게 느리게 걷고 주변의 소소한 것을 돌아보라’고 말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리엔 광장에는 뮌헨 신 시청사가 있는데요, 시청 건물이 무슨 옛날 왕궁같이 멋지게 생겼습니다. 여기에는 뮌헨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뮌헨 투어센터가 있는데, 여기서 시청사 꼭대기까지 가는 엘리베이터 탑승권을 살 수 있습니다. 3유로를 내고 뮌헨 시내를 한눈에 보고 싶어서 올라가봅니다. 때마침 날씨가 좋아서 파란 하늘에 빨간 지붕들로 지어진 옛날 건물들로 이루어진 뮌헨 시내는 그야말로 ‘뷰티풀’입니다. 도시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성당의 첨탑 일뿐, 고층 빌딩이 하나 없는 도시는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멀리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풍광입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슬슬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파집니다. 이럴 땐 딱 시원한 맥주 한잔에 슈니첼이나 소시지, 슈바인 학세를 곁들이면 제격일 것 같습니다.
광장을 지나 이끌리듯 나타난 맥줏집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슈나이너 바이스 브로이하우스(Schneider Weisse Brauhaus)’입니다. 슈나이더는 바이에른의 밀맥주 역사를 이어가는 양조장입니다. 짧게 스토리를 정리하자면 옛날에 뮌헨 지역은 와인을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뮌헨 맥주가 맛이 없어서 맥주는 독일 북부 지역의 맥주를 수입해서 마셨습니다. 그 수요가 많아서 재정 지출이 커지자 빌헬름 5세가 1589년에 궁정 양조장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호프브로이 하우스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독일 맥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맥주순수령’입니다. 맥주를 만들 때 보리, 홉, 효모 외에 다른 재료를 넣을 수 없다 는 법인데요, 이 맥주순수령을 만든 사람이 빌헬름 4세이고 1516년이었습니다.
밀맥주는 당시 시장성이 좋아서 맥주순수령의 예외로 인정하고 특정가문에만 양조허가권을 주다가 이 것이 장사가 잘 되는것은 보고 빌헴름5세의 아들 막시밀리안 1세가 밀맥주 양조권을 독점하게 됩니다. 적어도 체코의 플젠 지역에서 맑은 황금색 맥주 필스너가 탄생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1842년 탄생한 필스너는 그 전까지의 탁하고 어두운 색깔의 맥주 시장을 완전히 뒤집어 놨는데요, 뮌헨의 밀맥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막시밀리안1세는 인기 없는 밀맥주 양조 권한을 팔게 되고 그것을 인수한 사람이 게오르그 슈나이더입니다. 지금은 그의 6대손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곳 이 뮌헨의 슈나이너 바이스 브로이하우스입니다
일요일 오후 2시 정도인데도 1, 2층 모두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독일 전통 의상인 레더호젠(Lederhosen)과 던들 (Dirndle)을 입은 사람들이 신나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대낮에 맥줏집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것도 우리에게 는 참 신기한 일입니다. 2층 한구석에 혼자 앉아도 미안하지 않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해봅니다. 일단 오리지널 밀맥주 Schneider Weisse TAP7 Unser Original을 기본으로 밀맥주에 홉을 넣어 아로마가 풍부한 호펜바이세 Schneider Weisse TAP5 Meine Hopfenweisse와 조금 진한 복비어 Schneider Weisse TAP6 Unser Aventinus 그리고 안주겸 점심으로 슈니첼을 시킵니다. 혼자 이렇게 많이 주문을 하니 던들을 입고 주문을 받던 직원이 깜짝 놀라는 눈치입니다. 이 많은 사람 중에 아시아인은 내가 유일 했으니 좀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나 한국에서 맥주 좀 마시는 사람이야’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오리지널 밀맥주 한 모금을 마시는데 신선한 바나나 향이 터지면서 부드럽게 입안 가득 채워주는 촘촘한 맥주 거품이 이내 목을 타고 꿀꺽꿀꺽 빈속을 채워줍니다. ‘캬 ~이게 본토 밀맥주 맛이구나~’ 긴 밀맥주 잔을 한 모금에 반쯤은 비우고 잔을 내려놓고 혼자 실실 웃으면서 비로소 뮌헨에 왔음을 깨닫습니다. 밀맥주에 홉을 넣어 만든 호펜바이세는 미국의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협업하여 만든 퓨전 맥주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마셔본 맥주라서 현지에서 마시는 맛이 궁금해서 시켜본 TAP5 는 홉 아로마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거의 미국식 IPA에서 느낄만한 호피(Hoppy)함이 있어서 한 모금 마 시고 향기를 맡고 또 한 모금 마시고를 반복합니다. 맥주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시다가 어느 순간 알딸딸해지고 도수높은 TAP6는 다 마셨다가는 오후 여행에 지장이 있을까 봐 적당히 내려놓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왜냐하면 아직 마실 맥주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슈나이더에 밀맥주 양조권을 넘긴 오리지널 양조장 호프브로이하우스 (Hofbräuhaus)를 아니 가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89년에 빌헬름 5세에 의해 바이에른 궁정 양조장으로 만들어져 1830년이 돼서야 일반인도 이용이 가능해졌다는 호프브로이하우스는 3000석에 달하는 규모와 역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뮌헨 대표 비어홀입니다. 옥토버페스트를 가지 못하더라도 이곳에 가면 언제나 옥토버페스트를 맛볼 수 있는 분위기와 맥주가 있으니 꼭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사람들이 다녀간 이곳은 모차르트가 뮌헨에 머물 때 자주 방문했다고 하며 1920년 히틀러가 군중들에게 연설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커다란 실내에 뮌헨 전통 악단이 관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전통의상을 입은 직원들이 1리터짜리 큰 잔 마스-크루크로 쉴새 없이 맥주를 서브합니다. 커다란 테이블에 합석이 자연스러워서 혼자 가도 금세 맥주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벌컥벌컥 술술 들어가는 마시기 편한 뮌헨식 라거 맥주는 1리터 한잔이 금세 사라집니다. 슈니첼 이나 슈바인 학세 같은 전통 음식도 좋지만 겨울에는 굴라쉬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비어홀이라 그런지 다른 음식 점처럼 짜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기분 좋게 먹고 마시고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나오니 바로 맞은편에 그 유명한 하드록 카페 (Hard rock café)가 있습니다. 전 세계 유명한 도시에는 하나쯤 있는 하드록카페는 전통의 호프브로이하우스 앞에서는 왠지 초라해 보였습니다. 뮌헨의 밤거리를 걸으며 다시 마리엔 광장을 지나 숙소로 오는 길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음악으로 시간과 공간을 채워주는 버스커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악기와 소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던 어떤 인종이든 나이가 많고 적던지 상관없이 하나로 만들어 줍니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특별히 사랑스럽다. 이곳에서는 훌륭한 맥주가 계급 간의 모든 차이를 없애 준다." 레닌이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방문하고 이렇게 썼다고 하는데 맥주는 역시 예나 지금이나 모두를 친구로 만들어주는 음료인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출장을 왔다가 혹여 하루 정도 시간이 생긴다면 뮌헨을 걸어보세요. 시간을 거슬러 맛있는 맥주를 마주하며 그동안 마주하기 힘들던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