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종량세 채택… 한국 맥주 주세 가장 높아, 맥주 주세법의 해외 사례 비교
해외 주요국의 맥주 주세법을 비교, 분석해 주세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2002년 주세법 개정 이후 국내에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이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몇 년 못 가 250개 업체가 넘게 사라졌다. 25% 정도 되는 60여 업체가 살아 남았는데,
이 정도면 블랙잭 승률보다도 못하다.
‘차라리 블랙잭을 하는 게 나았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파악하고 전 세계적인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대처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종가세와 종량세
종가세는 쉽게 말해 ‘비싼 것 사먹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라’는 방식이다. 고가 제품에 대해 고율의 세금을 매긴다는 것이다. 종가세 체제에서는 대기업 맥주 사업자에 비해 중소기업(일반맥주) 및 소규모맥주 사업자들의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한국, 터키, 이스라엘, 칠레, 멕시코 5개국 외 국가들이 종량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기본 토대는 알코올 도수가 같은 경우 1리터 만들면 1원 내고 100리터 만들면 100원을 내는 방식이다.
종량세는 알코올 도수 및 생산량에 따라 과세하는 것으로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호주등 주요국이 채택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 및 소규모 맥주 사업자가 격차 없이 생산량만큼 세금을 부담할 수 있다.
일본(맥주 제외), 영국, 호주 등은 알코올 함량에 따라 상이한 세율을 적용하고 독일, 프랑스 등은 생산규모 구간 별로 세율이 다르다. 대다수 국가에서 생산량 2000만 리터까지는 주세를 경감해준다.
한국의 주세율 72%는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교육세 30%까지 붙기 때문에 다른 나라 맥주 전문가들이 한국의 높은 주세에 깜짝 놀라곤 한다.
미국
미국이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맥주 사업이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구도 많고 좋은 재료가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율이 3.9%라는 점이 맥주 산업을 키웠다.
미국에서 맥주의 정의는 알코올 도수 0.5% 이상의 발효주다. 미국의 세금은 연방세와 주(state)세 두 가지다. 맥주에는 소비세 개념의 Excise Tax가 종량세로 적용되는데 연방 세금(Federal Excise Tax)과 주마다 다른 State Excise Tax가 붙는다. 참고로 오레곤주는 세금이 없다. 여기에 부가가치세 개념의 State Sales Tax가 종가세로 붙는다.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경우 200만 배럴까지는 배럴당 7달러, 리터당 0.06달러에 불과한 세율이 적용된다. 작은 업체가 처음 정착하기 위해 정부가 도와주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주류에 대해 누진세도 없고 연방 소비세(VAT)도 없다.
연방세, 주정부 세금을 모두 내도 맥주에 붙는 세금이 3.8리터에 0.2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은 맥주 비즈니스를 한번 해볼 만한 곳이다. 미국 브루어 협회(Brewers Association)에서 이것도 많다고 2015년에 연간 200만배럴 미만 소규모 양조장은 세금을 7달러에서 3.5달러로 반을 깎아달라고 건의했다. 또 일반 맥주 제조자들도 배럴당 16달러로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본
일본은 94년 4월 주세법이 개정돼 소규모 맥주 양조장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8년이 빠른 셈이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 업계의 유행 레시피, 법규, 기업 활동, 브루어 움직임, 심지어 패션까지도 몇 년 있다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다. 일본에서 미국의 트렌드를 일부 받아들이고 한국에는 일본의 일부가 들어오고 이후 중국에 전파된다. 때문에 일본의 사례에 시사점이 많다.
일본에서는 주세법이 개정되고 3년 내 200개의 맥주 양조장이 생겼다. 그러나 99년 이후 많은 양조장들이 맥주 품질과 경쟁력 저하 등의 이유로 문을 닫았다. 현재 일본에는 262개 양조장이 있고 몇 년 간 전체 브루어리 숫자는 변함 없지만 소규모 맥주의 판매량은 계속 늘고 있다. 일본 맥주협회 고문에 따르면 소규모 맥주 판매량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역시 양조장 숫자가 계속해서 늘지는 않겠지만 판매량은 계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본다.
일본 크래프트 맥주의 점유율은 1% 정도다. 전체 맥주 시장은 정체 상태지만 크래프트 맥주는 성장하고 있다. 2013년 1월~8월과 2016년을 비교하니 해당 기간에 성장한 양조장의 비율이 82.9%에 이른다.
일본 맥주의 정의는 ‘맥아, 홉, 물을 원재료로 발효한 알코올’이고 몰트를 2/3 이상 사용해야 하며 부가물(쌀, 옥수수, 감자, 전분류, 설탕 등)의 함유량은 전체량의 1/3이하여야 한다. 또 알코올 함유량이 20% 미만이어야 한다. 일본에서 한국을 부러워하는 게 마지막 부분인데 과일, 향신료 등이 들어가면 일본에서는 맥주가 아니다. 오렌지필, 고수씨 같은 재료가 들어가면 비맥주로 취급된다.
비맥주에 주세 할인 혜택이 있으니 좋다고 볼 수도 있지만 벨지안윗 같은 스타일이 맥주 정의에 못 들어가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일본은 맥주 1리터에 세금이 220엔이다. 하포슈(발포주)는 178엔으로 상대적으로 싸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싼 발포주가 인기 있는데 일본에서 생긴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것 같다.
일본에서 주세 개정 움직임이 있다. 2019년부터 점차 적용될 것 같다고 한다. 맥주의 정의와 부가물에 대한 수정과 맥주 355ml 당 세금이 77엔에서 55엔으로 하향 조정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일본에서 세금이 불평등하다는 지적이 있어서 맥주와 하포슈 모두 55엔으로 통일된다.
또 일본 대형 맥주 회사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표방하는 맥주가 나오고 있다. 많은 양조장에서 지역 재료를 가지고 맥주를 만들고 미소 된장, 우메보시 등 특이한 재료를 넣는다. 이런 것을 볼 때 한국에서 맥주에 유자, 복분자 등을 넣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국 대기업에서도 크래프트를 표방하는 맥주를 만들 것 같다.
독일, 영국, 호주 그리고 중국
독일은 종량세 방식으로 과세하고 있으며, 생산 규모에 따라 감면된 세율이 적용된다. 2000만 리터보다 적은 양을 생산하는 ‘소규모맥주제조장(Kleinere Brauereien)’은 세율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과 비교하면 규모가 4배 되는 양조장에도 할인을 적용해주는 셈이다. 독일은 중소기업 장려 차원에서 세율 혜택을 준다.
영국은 역시 종량세 방식으로 과세하고 있으며, 알코올 함량에 따라 적용되는 세율이 달라진다. 유럽 국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나 한국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호주는 알코올 도수 1.15% 이상은 맥주로 취급된다.
중국에서는 시간당 1만8000병 규모의 패키징 장비가 없으면 맥주 면허를 받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가짜 음식에 대해서 문제가 많았다. 이 문제는 국가 브랜드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돈 없는 사람은 음식을 만들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가 보기에 크래프트 맥주는 돈 없는 사람에 해당한다.
대신 브루펍은 허가가 되는데 맥주 공장은 못 만들어진다. 플래티넘 중국 연태 공장에서도 드래프트 맥주만 양조할 수 있다. 언젠가 이 규제가 풀리는 날 중국은 크래프트 맥주의 블랙홀이 될 것이다.
EDITOR_윤정훈(플래티넘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