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 풀려야 소매점 유통이 풀린다, 국산 크래프트 맥주 마트 유통 한달 점검
# 지난 5월 중순 프리미엄 식품 매장 PK마켓의 한 지점. 해산물 코너 옆에 진열돼 있는 속초 동명항 풍경이 그려진 맥주캔이 한 고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어느 새 그의 카트에는 오징어와 맥주캔이 나란히 담긴다.
한국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캔맥주의 시음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같은 마켓의 맥주 코너.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모여든다. 독특한 맛에 반한 이들은 따로 마련된 토종 크래프트 맥주 냉장고에서 캔과 병을 집어 든다.
마트가 국산 크래프트 맥주를 전파하는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4월 주세법 개정으로 마트, 슈퍼, 편의점, 보틀숍 등 소매점에서 국산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를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국산 크래프트 맥주의 홍보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일반 맥주 제조자 면허를 갖고 있는 세븐브로이,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플래티넘, 장앤크래프트 등의 맥주는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소규모 맥주 제조자(용량 120㎘ 이하) 면허를 갖고 있는 브루어리들은 맥주를 양조한 브루어리에서 맥주를 판매하거나 펍, 식당 등에만 납품할 수 있었다.
크래프트 맥주 소매점 판매 ‘순항’
규제가 풀리면서 5월 초부터 국산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가 소매점에 등장했다. 5월 말 현재 국산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가 유통되고 있는 소매점은 이마트 계열 14개 점포다. 스타필드 하남, 스타필드 고양 등 PK마켓 4개점과 와인앤모어 10개점에 들어가있다. 6월에는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일부 지점에도 국산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가 입점될 예정이다.
이들 지점에서는 화수, 플레이그라운드, 크래프트루트, 버드나무 4개 브루어리의 총 27종 맥주가 병 · 캔 당 5500~79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화수와 플레이그라운드, 크래프트루트는 캔맥주로, 버드나무는 병맥주가 공급된다. PK마켓은 “4개 브루어리의 대표 상품들을 시작으로 경쟁력을 갖춘 로컬 소규모 양조장을 추가로 발굴해 국산 수제맥주 라인업을 연내 25개 브루어리, 75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의 소매점 판매는 비교적 잘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달 남짓이지만 하루 평균 두 박스 이상씩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PK마켓 맥주 공급업체 관계자는 “시장 반응이 예상보다 좋다”며 “주말마다 진행하는 시음행사 때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마트 계열 마트, 보틀샵뿐만 아니라 다른 유통 기업들도 공급업체를 통해 국산 소규모 맥주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브루어리 대표는 “마트에 들어가면서 확실히 소비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세금 내면 남는 게 없다”
국산 소규모 맥주의 소매점 유통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소매점 유통이 브루어리들에게 실질적인 수익원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세금. 맥주에 대한 세금은 가격을 기준으로 매겨진다. 기본적으로 크래프트 맥주는 재료비가 높고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없어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런데 크래프트 맥주의 소매점 유통을 위해서는 캔병 및 라벨 구매, 패키징 장비 마련 등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생산 단가가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이다.
높아진 생산비에 높은 세율(주세 72%, 교육세 30%, 부가가치세 10%)이 적용되기 때문에 케그 유통에 비해 세금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 브루어리 관계자는 “생산량에 따른 과세표준 경감을 받더라도 원가의 절반 가량에 이르는 세금이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매점에 유통되는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과세표준은 ‘출고가(납품가)’다. 케그로 펍, 음식점 등에 공급할 때의 과세표준이 ‘제조원가’인 것과 다른 점이다. 제조원가에 포함되지 않던 비용이 출고가에는 포함되기 때문에 과세표준 자체가 높아질 수 있다. 또다른 브루어리 관계자는 “출고가가 기준이기 때문에 출고가를 낮추면 세금을 적게 낸다”며 “하지만 출고가를 낮추면 생산비마저 건지기 어렵기 때문에 세금까지 녹여서 출고가를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출고가를 5000원으로 할 경우 세금이 2500원, 브루어리 매출은 2500원이 된다.
출고가를 3000원으로 낮추면 세금이 1500원이고 브루어리 매출이 1500원이라는 계산이다.
모 브루어리 대표는 “순수익은 캔 당 100~200원 정도로 보고있다”며 “현재 주세 구조에서 소매점 유통은 브루어리의 존재감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홍보, 마케팅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높은 출고가는 결국 높은 가격으로 이어져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킨다. ‘6캔 1만원’에 판매되는 수입 맥주나 ‘3캔 1만원’ 할인 행사를 수시로 하는 수입 크래프트 맥주에 맞서 국산 크래프트 맥주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주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결국 주류에 붙는 세금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앞으로 조세 당국에서 맥주 산업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세금 부과 체계를 재검토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품질’은 기본 덕목
과연 현재 소규모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캔 유통을 할 준비가 됐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크래프트 맥주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유통하기 위해서는 산소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캔입 기술이 필요하고 열과 빛을 피할 골드 체인이 제대로 구축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캔입 장비들은 보급형이 대부분이고 수동으로 캔입을 진행하고 있다. 유통 과정에서 맥주 맛과 품질이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국산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가 널리 퍼질수록 품질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비싸면서도 맛없다’는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크래프트 맥주가 시장에 확산되는 중요한 시점인 만큼 브루어리들이 캔, 병맥주의 품질 유지에 있어 각별한 관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