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제맥주협회 가입 기준 마련, 국내 ‘크래프트 맥주’의 기준 서나
사단법인 한국수제맥주협회가 회원사 가입 자격 기준을 공표했다. ‘수제맥주 관련 제조업체’라는 기존의 단순하고 모호했던 자격 기준을 명료화 및 구체화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협회의 가입 기준을 확립한 것을 넘어 ‘수제맥주’ 혹은 ‘크래프트 맥주’라는 이름에 적합한 맥주 회사의 구체적 자격요건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4월 세계 최대 글로벌 맥주 기업 AB인베브(AB InBev)가 국내 ‘크래프트 맥주’ 회사 ‘더 핸드앤몰트’를 인수한 것과 맞물려, 국내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크래프트 맥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돌아보고 정의를 확립하기 위한 논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한국수제맥주협회가 마련한 기준안은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작용한다.
소규모 생산, 독립 자본, 국내 생산
이번에 개정된 한국수제맥주협회 가입 조건은 다음과 같다.
협회 측은 각각의 기준이 정해진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항의 ‘연간 생산량 10,000kl(킬로리터)’는 국내 맥주 생산량의 약 0.5%를 기준으로 설정한 값이다. 하나의 업체가 독점
적으로 거대화되어 다양성이 결여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현재 국내 맥주 생산량은 연간 약 200만kl이다.
2항의 ‘주류 관련 대기업 지분율 33%’는 우호지분 확보를 통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최대의 지분을 1/3로 판단하여 나온 결과다. 협회 측은 막강한 산업 자원을 보유한 대기업의 시장 진입으로 인해 공정한 경쟁 환경이 저해되고, 시장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을 막고자 대기업의 지분율을 가입 기준에 포함했다는 취지를 밝혔다. 한편, 이러한 취지를 살리면서도 협회가 너무 배타적인 성질을 띠지 않도록 운영의 묘를 살려갈 계획이다.
여기서 ‘주류 관련 대기업’의 범위는 주류 제조업체는 물론 주류 수입업체 및 유통업체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렇듯 포괄적인 범위 설정의 이유는 대기업의 경우 그룹 내에 주류 제조와 유통 등을 각각 담당하는 별개의 회사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통합적으로 고려 및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주류 관련’이 아닌 대기업이 회사를 100% 인수할 경우, 협회 가입이 가능할까? 협회 측 대답은 ‘그렇다’이다.
주류 관련 대기업의 시장 진입에는 우려 사항이 따르는 게 사실이지만, 업계의 발전을 위해 대기업의 진입을 무조건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기업 자본이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수제맥주 업체 창업자의‘엑싯(EXIT)’, 즉 ‘출구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기업의 참여로 인해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고 새로운 판로가개척되는 등 시장이 전반적으로 확대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으리라 판단합니다.”고 했다. 이같이 자본의 유입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수제맥주 업계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소비자에게 다양하고 품질 좋은 맥주를 제공하는 것이 협회의궁극적인 목표이며, 단순히 몇몇 회원사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호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3항의 국내 생산 비율의 경우 초기에 50% 기준으로 안건을 상정하였으나, 국내생산 비율을 높이고 국내 생산을 장려하자는 취지를 강조하여 80%로 결정했다. 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제맥주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최근 해외에서 양조한 맥주를 국산 맥주인 것처럼 포장하여 판매하는 업체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소비자의 맥주 경험을 해치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기존 회원사 중 3개 회사 탈락⋯ 어떤 변화 있을까
이번 기준안 마련에 따라 한국수제맥주협회의 기존 회원사 중 3개의 회사가 제외되었다. 롯데클라우드스테이션, 더핸드앤몰트 브루잉 컴퍼니, 그리고 더부스 브루잉 컴퍼니이다. 롯데클라우드스테이션과 더핸드앤몰트는 ‘주류 관련 대기업 지분율’ 항목에서, 더부스는 ‘국내생산 비율’ 항목의 조건을 만족하지 않아 탈락했다.
협회 측은 기준안을 통해 수제맥주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현상들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당장 눈에 띄는 변화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국내 수제맥주 산업의 보호와 성장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국내 수제맥주의 존립 근거를 뒷받침하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업체의 입장에서는 소비자에게 ‘크래프트 맥주’의 정체성을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 또한 덧붙였다.
‘한국적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일까
한국수제맥주협회에서 정의한 ‘회원 자격 기준’이 ‘한국적 크래프트 맥주’의 정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 묻자, 협회는 소비자의 선택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답했다.
“한국적 크래프트 맥주’의 기준을 협회가 정의 내릴 수도 없거니와, 정의한다고 해서 시장에서 강제성과 구속력은 없으며, 저희가 정의한 부분은 한국수제맥주협회의 회원 자격 기준일 뿐입니다.”고 했다. 대신, 국내 수제맥주에는 ‘다양성’과 ‘신선함’의 두 가지 장점이 있다는 생각을 전하며, 그러한 장점들을 유지함과 동시에 산업을 보호함으로써 소비자 경험을 지키려는 뜻을 내비쳤다. “협회 회원의 자격 기준이 ‘한국적 크래프트 맥주’를 정의하는지에 관해 소비자들께서 어떤 결정을 내려주실지 모릅니다. 다만 이제 저희 회원사들을 비롯하여 기준에 부합하는 국내 수제맥주 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더욱 다가가 국내 크래프트 맥주가 어떤 것인지 맥주의 맛과 다양성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를 위한 많은 활동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