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과 탄산, 색깔을 만드는 맥주의 주춧돌 ‘맥아’
맥주의 주 재료는 맥아(몰트), 홉, 효모, 물이다. 이 중에서 맥주의 주 재료를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맥아다. 맥아는 맥주의 알코올과 탄산을 생성시키기 위한 당분을 공급하며, 맥주의 색깔과 풍미에 관여한다. 맥주를 양조할 때 검은색 맥아를 사용하면 검은색 맥주가, 붉은색 맥아를 사용하면 붉은 빛을 띠는 맥주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맥아는 ‘맥주를 맥주답게’가 아닌 맥주(麥酒)라는 ‘술’의 한 종류로 분류되기 위한 알코올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맥아다. 도대체 맥아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질까.
맥아의 분류
맥아는 곡물을 발아시킨 뒤 말린 것을 말한다. 이 때 곡물을 발아시키고, 말리는 일련의 과정을 맥아화(몰팅)라고 하며, 맥아란 맥아화라는 가공 과정을 거친 곡물을 뜻한다. 맥아는 맥주와 위스키 같은 술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며, 식초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맥주의 재료로서 맥아를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물은 보리일 것이다. 그것은 보리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맥주를 빚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곡물이자 대표적이고 핵심적인 곡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맥아의 재료로 보리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밀을 맥아화할 경우 밀 맥아, 호밀을 맥아화할 경우 호밀 맥아라고 부른다.
맥아를 사용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베이스 몰트와 스페셜티몰트로 분류할 수도 있다. 베이스 몰트는 맥주의 양조 과정에서 알코올 생성을 위한 당분의 공급을 목적으로 사용되며, 스페셜티 몰트는 맥주의 바디와 풍미 및 향기를 생성하고, 맥주의 색깔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된다.
맥아는 맥주에만 사용하지 않는다
맥아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술은 맥주뿐만이 아니다. 위스키 역시 맥아를 이용해 만들어진다. 위스키 중 몰트를 이용해 만드는 위스키를 몰트 위스키, 몰트가 아닌 곡물로 만든 위스키를 그레인 위스키라고 한다.
몰트 위스키는 100% 맥아를 사용한 발효주를 증류한 위스키를 뜻한다. 몰트 위스키 양조장 중에서는 자체적으로 몰트를 생산하는 몰트하우스를 갖춘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여러 양조장의 몰트 위스키를 블렌딩한 것이 아닌 한 곳의 양조장에서 생산된 몰트 위스키를 특별히 싱글 몰트 위스키라고 부른다. 반면 싱글 몰트 위스키와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블렌디드 위스키가 있다.
몰트 위스키용으로 제조되는 몰트의 경우 발아 후 건조 과정에 뜨거운 공기를 공급하는 연료로 피트1(이탄, peat)을 사용한다. 보통 ‘피트향’이라고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싱글 몰트 위스키 특유의 향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탄은 퇴적된 수목의 종류나 주변 환경에 따라 태웠을 때의 향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스코틀랜드의 몰트 위스키 주요 생산지역인 하이랜드, 로우랜드, 아일레이, 스페이사이드의 몰트 위스키는 그 지역적 특성에 따라 몰트에 입혀진 이탄에 의한 향의 강도와 특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후 증류되어 위스키로 완성된다. 맥주의 경우에도 이탄을 사용해 건조한 몰트를 사용하기도 하며, 이 경우 피트의 향을 느낄 수 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다.
맥아 식초는 맥아를 당화시킨 맥즙을 끓인 후 물로 희석한다.
이후 맥주와 같이 효모로 알코올 발효를 시킨 다음 아세트산(초산)균을 이용해 발효를 시킨 것이다. 끓이는 과정에서 홉의 첨가가 없고, 물로 희석하는 과정이 추가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맥주 중 신맛을 특징으로 하는 ‘사워 에일’의 양조 과정과 같은 점이 많다.
곡물에서 맥아로의 변신
현대의 맥아 제조는 맥아를 제조하는 전문 기업에서 이루어지게 되며, 기술적인 세부사항이나 진행 방법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맥아의 제조 공정은 곡물에 섞여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물에 담가 발아에 필요한 수분을 공급하는 침맥(steeping), 싹을 틔우는 발아(germination), 생장을 멈추고 수분을 제거하며, 맥아의 사용 목적에 따라 열을 가해 가공하는 배조 (kilning)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보리가 잘 여물어 수확했다고 생각해보자. 잘 익은 보리를 보리 맥아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품질검사와 건조 과정을 거친다. 수확된 보리에 수분을 공급한다고 해서 곧바로 싹이 트진 않는다. 싹을 틔우는 능력인 발아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수확 후 일정 기간이 경과해야 하는데, 이를 종자의 휴면기라고 하며, 약 6주 정도다.
저장되어 있던 보리를 맥아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은 수분을 공급하는 것이다. 건조되어 있던 보리를 물에 담가 수분을 머금게 한다. 이 과정을 침맥이라고 하는데 13% 이하의 수분을 가지고 있던 건조된 보리에 수분을 공급해서 43-48%정도의 수분을 머금게 한다. 이 과정에서 목표한 수분 함량에 도달하기 위해 물에 담그고 배수하는 과정을 2-3회 정도 거치게 된다.
충분한 수분을 머금게 된 보리는 싹이 트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발아라고 하는데, 이때의 보리를 녹색 맥아(green malt)라고 부른다. 발아는 보리 내부의 효소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발아 과정에서 활성화된 효소는 맥주를 만드는 과정 중 매싱(mashing) 과정에서 맥아가 가지고 있는 전분(다당류)를 단당류 또는 이당류로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보리가 발아하는 과정은 섭씨 10-16도 정도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발아 과정에서 보리 자체에서 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 온도 유지가 필요하며, 온도 유지를 하지 못할 경우 보리가 타 버릴 수 있다.
발아를 마친 녹색 맥아는 발아를 멈추기 위해 수분함량 5% 이하로 건조한다. 이 과정을 배조라고 한다. 먼저 발아를 멈추고 녹색 맥아에 생성된 효소의 변형을 막기 위해 온도를 낮춘다. 이후 섭씨 50-60도 정도의 뜨거운 바람으로 맥아를 말린다. 목표한 수준으로 수분 함량이 낮아지면 온도를 섭씨 80도 이상으로 상승시켜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건조하며 마무리 된다. 이 때 밝은 색 맥아 또는 베이스 몰트는 이 과정으로 건조 과정이 끝나지만 스페셜티 몰트의 경우 볶거나 굽는 등의 가공 과정이 추가된다. 건조를 마친 맥아에 서 싹을 제거하고 불순물을 제거하면 맥주나 위스키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원료로 제품화된다.
맥주에는 왜 맥아가 필요할까?
이와 같은 맥아화 과정을 거친 맥아를 맥주에 사용하는 이유는 곡물을 맥주의 양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어주기 위해서다. 곡물은 전분질, 단백질 및 지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곡물 안의 성분들은 싹을 자라게 하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이 때 내부의 성분을 분해해서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해 전분, 단백질, 지질을 분해하기 위한 효소가 활성화되며, 이 효소는 곡물 내의 성분들을 분해해 생장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효소를 활성화시킨 상태로 더 이상의 생장을 정지시키는 것이 맥아화 과정인 것이다.
맥아화를 거친 맥아를 파쇄하여 섭씨 60-70도의 물에 담그는 당화과정에서 맥아의 성분이 물에 우러나오게 된다. 또한 효소가 활성화되면서 섭씨 62도씨 근처에서 맥아가 가지고 있는 다당류가 단당류나 이당류로 쪼개지는데 이 것이 맥주 효모가 알코올과 이산화 탄소로 분해하는 당분이다. 섭씨 67-70도 정도의 온도에서는 당분이 주로 다당류의 형태로 추출된다. 다당류는 쪼개지지 않고 남게 되는데, 이 것이 맥주에서 느껴지는 곡물의 단 맛과 함께 바디감을 만들어준다. 맥주의 색을 만들어주는 스페셜티 몰트의 경우 배조 과정에서 고온으로 가공되며 맥아의 성분이 변성되어 맥주의 발효에 필요한 당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만 가공 방법과 정도에 따라 카라멜, 훈연, 로스팅 등의 풍미와 향에 영향을 주며 맥주의 색을 형성하는데 역할을 한다.
EDITOR_ 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