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튼 보리 빵부터 타워 몰팅 시스템까지 : 맥아의 연대기
맥주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기록된 문헌에 따르면 최초의 맥주는 빵이 물에 잠겨서 알코올 발효가 되는 것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원전 3500-4000년 이전부터 양조되기 시작했으며,
당시의 맥주는 보리로 만든 빵을 이용해 양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는 이집트에서도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맥주의 역사는 보리의 경작으로 대표되는 농경사회의 정착과 이들 곡물을 이용한 식품의 가공과 함께 이어져왔다. 맥아(몰트)의 역사도 이와 함께 시작되었다.
맥아의 발견
기원전 38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추정되는 쐐기문자 석판에는 수메르인들이 만들던 빵의 기록이 있다. ‘Bappir’라는 이 빵은 보리를 물에 담가 수분을 흡수하게 하여 발아시킨 뒤 빻은 것으로 만든 빵이다. 이 빵을 분쇄하여 물에 섞은것은 당시 수메르인들이 만들던 맥주의 재료로 쓰였다. 이 방법은 나일강 유역의 지역에서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데, 이집트의 나일 계곡(Nile Vally)에서 빵과 맥아로 만드는 술을 “Booze”라고 부른다. 이들 과정을 고대의 초기적인 맥아화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현대적인 맥아 제조 공정과 비교하면 수분을 흡수시키고 발아시키는 과정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다만 발아된 보리인 녹색 맥아를 말리는데 있어서 고대에는 햇빛으로 말렸으나 현대에는 뜨거운 바람을 이용한다는 차이점만 있다.
유럽의 경우 로마제국의 기록에서는 유럽 대륙의 북부 지역에서 맥주와 맥아가 생산되었다고 하며, 맥아를 이용한 맥주의 양조 과정은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세와 근대의 맥아
기록에 따르면 중세에는 맥아 제조가 대부분 소규모로 이루어졌다. 각 가정의 여성들에게 맥주를 빚는 것과 맥아를 만드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으며, 어머니가 딸에게 전수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는 발아를 마치고 건조과정이 시작되기까지 21일 이상이 걸렸는데
오늘날 기술과 공정의 발전으로 4-5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매우 긴 시간이다.
몰트의 품질에 관한 규정 역시 발전하게 되었는데, 1482년 런던에서 만들어진 품질 규정에는 몰트는 깨끗하고, 향기로워야 하며 잘 건조되어야 하며, 덜 건조되거나 축축한 상태 또는 덜 자란 보리이거나 바구미 등의 해충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에는 몰트 제조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바구미 등 곡물의 해충이었다. 건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해충이 번식될 경우 맥아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중세를 지나 초기 근대에 들어서면서 맥아 건조 공정에 쓰이는 연료에 대해 연구가 크게 발전했다. 석탄, 이탄, 짚, 나무 등 녹색 맥아를 건조하는 공정에서 쓰이는 연료의 장단점과 연료에 따른 건조과정이 연구되었다. 또한 건조 온도에 따른 건조시간 및 맥아의 색깔 변화 등에 대한 실험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화학자Luise Camille Mailard는 맥아의 색 변화가 아미노산과 당분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산업혁명과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19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맥주 양조에 과학적 기법과 연구가 적용되기 시작하고 비중계, 기초화학 등을 양조에 적용한 서적들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맥아 제조 및 맥주 양조 등에 있어서 과학적 연구와 이론이 적용되며 맥주를 만드는 것은 보다 전문적인 일이 되어 갔다. 맥아 제조에 있어서도 증기기관의 발달과 함께 사람이 하던 일들이 기계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농가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지던 맥아의 제조를 대규모 공장에서의 상업적 맥아 제조로 이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녹색 맥아의 건조방식에 있어서 영국과 아메리카 대륙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영국의 경우 19세기 중반까지 연료의 연소에서 발생하는 열과 배출 가스를 이용한 직접 가열 방식으로 맥아를 건조시켰다. 독일의 경우 1820년 이전부터 간접 가열 방식의 맥아 건조기법을 사용하였다. 구멍이 뚫려 있는 진흙 기와 위에 말갈기나 말총으로 만든 직물에 맥아를 넓고 얇게 펴서 가열해서 말리는 방식이었다. 19세기 중후반 2차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며 금속 가공 기술이 발전하며 진흙 기와와 직물은 금속으로 대체되었다. 증기기관의 발달로 증기선과 기차가 발달하며 영국의 버튼 지역에서 생산되는 에일의 양은 1840년부터 1870년까지 30년의 기간 동안 20배 증가했으며, 버튼 지역의 맥주 생산을 위해 100개에 이르는 몰트 하우스가 맥아를 공급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게 된다.
산업혁명과 함께 찾아온 영국의 성장은 영국 식민지를 중심으로 맥주를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했다. 북미대륙의 경우에도 맥주 산업이 발달하며 영국의 양조 기법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미국은 일명 도금시대(the Gilded Age)로 불리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미국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경제 규모의 급격한 성장이 이루어졌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몇 소수의 장인들이 몰트를 제조하는 것에서 기계화하고 비숙련 노동자들을 이용해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기업형 몰트 하우스로 변화해 갔다.
도시화로 인해 사람들은 큰 도시로 몰려들고, 이 지역에 맥주를 공급하는 양조장 역시 거대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많은 맥주를 생산해야만 했으며, 몰트 하우스 역시 그러했다. 또한 곡물에 수분을 공급하고 넓게 펴서 발아시키고 말리는 공정으로 맥아를 제조하는 것은 더 이상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의 시스템으로 발전
1880년대 드럼 몰팅 시스템(Drum Malting Systems)의 소개를 시작으로 몰팅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일어났다. 바닥에 곡물을 넓게 펴서 제조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몰트 제조법인 플로어 몰팅 (Floor Malting)은 많은 공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데다 몰트의 품질이 날씨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효율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고, 대량생산에 적합한 방식이 20세기들어 발전하기 시작했다. 플로어 몰팅에 있어서 수분을 흠뻑 머금은 맥아를 바닥에 넓게 펴고 온도를 조절해주며 발아를 시키는 과정에 많은 노동력이 소모되었다. 맥아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는 것과 함께 맥아를 넓게 펴 놓은 그레인 베드의 위쪽과 아래쪽을 뒤집어줘야만 했다. 이를 개선한 것이 드럼 몰팅 시스템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1960년대 개발된 타워 몰팅 시스템 (Tower Malting Systems)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공장 자동화 시스템의 발달과 함께 수분의 공급부터 발아, 건조에 이르는 과정을 소수의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 발아 챔버에서는 발아 중 발생하는 열을 빼 내며, 몰트를 뒤집어 준다. 건조 과정에서는 몰트의 특성에 맞게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이렇게 현대의 몰팅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곡물을 심으면서부터 수확하여 맥아를 만들고 한 잔의 맥주로 만들어지기까지 수 많은 공정과 노력이 녹아 있다. 그 중 맥아를 만드는 과정은 수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고대로부터의 전통이자 경험이 배어 있는 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옛날 맥주에 맥아를 사용하게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세부 공정과 방법은 변화했지만 맥아의 향기에 빠져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맥아는 여전히 맥주의 주 재료이고, 맥주에 있어서는 안될 존재로 남아있다.
농경과 곡물의 역사 그리고 몰팅의 역사는 어쩌면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역사와 함께다.
EDITOR_장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