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년들, 국산 맥주보리 생산의 미래를 이끈다
충북 음성의 "청년 농부" 4人 인터뷰
맥주에 관련된 직업을 떠올리면 어떤 직업이 떠오를까? 대부분의 사람은 브루펍의 양조사나 펍의 직원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맥주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숨은 직업들도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맥주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맥주보리를 생산하고 맥아로 가공하여 판매하려는 농부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과 열정으로 맥주보리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청년 농부’ 4인의 농장을 방문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도시에서 시골로, 젊은 도시 청년들의 컨트리 라이프!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으로 이루어진 4명의 청년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우선, 사업을 이끌고 있는 청년 농부 대표 허성준 씨는 충북 음성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던 집안의 장남이다. 처음부터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었지만, 서울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고시 준비를 하던 중 국내 농업의 쇠퇴를 눈으로 보았다. 젊은 세대가 농업으로 진출해야 지역 사회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뜻을 가지고 내려와 가업을 이어받게 되었다. 그러나 농사를 짓기에는 너무나 일손이 부족했다. 뜻이 맞는 지인 한 명을 불러 함께 농사를 짓게 되었다.
박명균 씨는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남들과 같이 성적에 맞추어 대학교에 진학은 했지만, 전공에 흥미가 맞지 않았고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학년을 마치고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가게 되었다.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고군분투하던 그는 캐나다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캐나다로 삶의 터전을 옮기려고 영주권 신청을 생각하던 중 지인이었던 성준 씨가 시골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천성과 캐나다 소도시의 소소하고 조용한 삶이 좋았던 명균씨는 그렇게 귀농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음성에 내려온 명균 씨는 서울에 있던 죽마고우를 불렀다.
이렇게 넷이 된 청년 농부는 모두 허성준 대표의 포부와 비전을 듣고 농촌에서 값진 결과를 맺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농사일이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한국의 농업과 맥주 산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왜 맥주보리였을까?
귀농하고 나서 가까이서 보는 농촌 사회의 문제점은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 FTA로 인해 붕괴된 농산물 수매 가격, 비합리적인 유통 환경, 고령화, 지역 텃세 등의 어려움은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허성준 씨는 1차 농산물 생산만 할 경우 타 농업인들과 차별화되지 않아 생계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맥주보리를 생산하고 맥아로 2차 가공하여 판매할 것을 제안했다.
맥주보리라는 작물을 선택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 농업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쌀 수급 문제이다. 쌀의 생산을 줄이고 타 작물을 심어서 기본적인 농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벼농사를 짓던 질고 배수가 잘되는 땅은 보리의 생육에 최적의 조건이다. 벼를 심던 논에 다른 작물을 심으면 국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에, 맥주보리를 심는다면 국가와 농업을 하는 사람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다.
둘째, 기계화된 방식으로 생산 가능하다는 점이다. 맥주보리는 파종부터 수확까지 자동화된 기계로 가능하기 때문에 생산에 특별히 큰 힘이 들지 않는다.
셋째, 이모작의 가능이다. 만약 논에 벼농사를 짓는다면 1년 내내 벼농사에 매진해야 한다. 반면 봄보리를 심는다면 보리를 봄에 파종하고 6월 말에 수확을 한 뒤에 그 땅에 콩을 생산할 수도 있다. 유기농 벼를 지어서 가격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콩과 보리 두 가지
를 같이하는 것이 소득 면에서도 훨씬 더 이점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음성 보리 청년들, 국산 맥주보리의 미래를 보다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가적으로도 국산 맥주보리를 활용한 맥주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얼마 전 기존에 맥주보리 재배를 하지 않던 중부지방에도 맥주보리 및 맥주 연구팀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국산 원재료들을 활용하여 맥주를 만드는 것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면 자연스럽게 국산 맥주보리에 대한 품질 개선도 이루어질 수 있다.
박명균 씨는 많은 사람이 외국의 기후가 보리의 재배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질 좋은 맥주보리를 만든다고 오해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의 기후에 맞는 맥주보리에 대한 품종 개량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고, 이미 개발 품종도 여러 종 나왔기 때문이다. 요즘도 전문 서적을 읽고 맥주보리에 대한 공부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그는 맥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국가 기관에 꾸준히 자문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외국 못지않은 품질 좋은 국산 맥주보리 품종이 개발될 것이고, 그 맥주보리를 가공하여 맥아를 만든다면 국산 맥주보리의 수요도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확신이 있었다.
수입 맥주보리vs국산 맥주보리
농진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재배한 맥주보리가 수입 맥주보리와 비교하여 수율이나 단백질 함량, 발아율에 있어서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 국산 맥주보리에 대한 수요가 매우 낮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수입 맥주보리와 비교했을 때 세 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아무래도 현재 국산 맥주보리로 맥주를 제조한다면 수입 맥주보리를 사용했을 때보다 원재료비가 올라간다.
둘째, 대형 맥주 공장을 제외하고는 맥아 가공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국산 맥주보리로 맥주를 양조하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브루어리에서는 설비가 없기 때문에 맥아로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맥아를 만들기 위해 가공 설비를 추가로 설치하기에는 큰 비용을 동반하기에 어쩔 수 없이 외국의 맥아 공장에서 가공한 맥아를 수입하는 것이다.
청년 농부 측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맥주보리를 생산하는 농업인이 직접 보리를 맥아로 가공하여야 한다고 봤다. 이러한 원스톱 생산 과정으로 맥아 생산 원가를 절감할 수 있어 수입 맥주보리와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위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다면 국산 맥주보리를 사용하여 맥주를 양조하는 것은 여러 이점이 있다. 첫째, 신선도에서의 강점이다. 수입 맥아의 경우 아무리 보관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운송 과정 중 신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산 맥아의 경우에는 갓 만든 맥아를 사용해서 맥주를 양조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보다 신선한 맥주를 제공 할 수 있다.
둘째, 지방자치단체 지원의 활용 가능성이다. 지역 브루어리의 경우에 그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해서 양조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다면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맥주는 타 브루어리와의 경쟁 속에서 차별화를 줄 수 있는 좋은 마케팅적 요소가 될 수 있다.
셋째,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역 경제의 발전과 청년 일자리 창출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맥주보리 생산이 늘어나고 수요가 활성화된다면 청년 농부와 같은 맥주 관련 농업을 하는 젊은 세대의 유입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차 산업에서의 새로운 맥주 관련 전문 직업도 생겨날 수 있다.
맥주보리 생산, 언제나 순항 중?!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차근차근 맥주보리 생산 기반을 다지고 있는 청년 농부들에게 맥주보리를 키우면서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 물음에 ‘아직은 크게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았다.’라는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국산 맥주보리의 생산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맥주보리를 생산하기로 처음 마음먹었을 때는 가을에 벼를 수확한 뒤 겨울 보리를 심는 이모작을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부지방의 겨울 기온이 너무 낮아 원하는 만큼의 생산량을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1년 동안 벼와 보리를 둘 다 재배하면 아무래도 각 작물에 전달되는 토양의 양분도 줄어들어 고품질의 보리 생산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여러 생각 끝에 올해부터 봄보리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기농 보리를 목표로 파종 후 농약을 치지 않고 수확할 때까지 오며가며 관리만 해주었다. 처음 재배해 보는 맥주보리였지만 예상보다 훨씬 수확량이 잘 나왔다고 한다. 올해의 결과를 통해 봄보리를 재배하면 중부 지방에서도 충분히 맥주보리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고민은 있 다. 명균 씨는 “앞으로도 유기농 맥주보리를 생산할 계획이기 때문에 병충해에 대한 부분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라며 운을 떼었다. 여러 변수가 작용하는 농업에서 올해 맥주보리를 재배할 때 해충 피해가 없었다고 해서 다음 해에도 해충 피해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맥주보리 공부를 하면서도 농진청 식량과학원의 전문가에게 관련 부분에 대해 꾸준히 조언을 구하고 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그는 “아직은 내년 농사에 대해서 걱정 반 기대 반인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여태껏 식량 작물을 계속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피해 예방이나 조치를 충분히 해낼 수 있다.”라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보리 청년들이 그려가는 국산 맥주보리 산업
청년 농부들은 크래프트 맥주 산업에 큰 획을 긋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맥주보리에 대한 지금과 같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끊임없이 보완점을 찾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와 개인의 꾸준한 연구가 더 좋은 품질의 맥주보리를 생산해 내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올해 맥주보리 생산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들의 다음 계획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맥아 공정 시설을 구축하는 것이다. 맥주보리 생산에서 가공까지 진행하여 ‘최고급 품질의 맥아를 생산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라고 한다. 장기적인 목표는 수준 높은 맥아를 생산할 수 있을 때 ‘직접 가공한 맥아로 맥주를 양조하는’ 사업 확장이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홉, 맥주보리 생산과 같은 원재료 산업도 점차 늘어나서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나라만의 특색이 담긴, 말 그대로 ‘대한민국 크래프트 맥주’가 많이 생겨나는 것이 바람입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명균 씨는 “앞으로도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크래프트 맥주 문화도 성장해 관련 행사들도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라고 덧붙이며 웃음지었다. 맥주보리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농업의 최전선에서 땀 흘리며 농사짓는 청년 농부들, 앞으로의 그들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