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에 빠져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는 사람들 구충섭·이선재를 만나다
맥주 수입, 공방 겸 보틀샵, 펍. 어느 한 가지 쉬운 일이 없다. 저마다 맥주와 관련된 전문적인 업종이자 직업이며,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연일 끝없이 새로운 맥주가 소개되고 있는 우리나라 맥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그 하나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맥주 공방 역시 마찬가지다. 맥주를 담그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공방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고, 취약한 재정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골몰해야 한다.
펍 역시 남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모두 해내고 있는 두 사람, KnR 코리아와 보리마루의 공동대표이자 비어랩 협동조합을 꾸려가고 있는 구충섭·이선재 대표를 만났다.
Q 우선 직업과 관련된 두 사람의 직함을 알려달라.
구충섭(이하 구)- 많이 있다. 비어랩 조합장이자 KnR 파운더이기도 하고, 보리마루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그것 외에도 브루웍스 주말반과 경희대 과정에서 강사를 맡고 있다.
이선재(이하 이)- KnR 공동대표이자 보리마루 공동대표이고, 비어랩에서 감사를 맡고 있다.
Q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어떻게 이런 많은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두 분이 공동으로 세 가지 일을 같이하고 있는데, 셋 중 어떤 일을 제일 먼저 시작했나?
구- 사실 우리는 굉장히 운이 좋아서 비어랩과 KnR을 한 달 안에, 거의 동시에 시작하게 되었다. 법인 사업자를 등록한 시점이 2014년 12월이다.
예전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맥주잔을 모으다 만났다고 했다. 구충섭 대표는 의류 분야에서 생산 담당이자 구매를 담당하는 MD 쪽 일을 했고, 이선재 대표는 일반 기업의 회계 담당 직이었다. 맥주 쪽으로 발을 들이게 된 계기와 더불어 특히 홈브루잉 공간인 비어랩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Q 맥주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홈브루잉을 했나?
이- 맥주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홈브루잉을 하지 않았다. 구충섭 대표님이 수수보리 아카데미 수업을 들을 때 몇 번 간 적은 있다.
구- 2013년 하반기에 수수보리 아카데미 3기 수업을 들었다. 비어랩을 만든 것도 처음에는 수수보리 동기 졸업생들을 모아서 취미로 브루잉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규모가 커져서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게 되었다.
Q 회사가 커진다고 해서 이전 직장을 그만두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보통은 병행한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나?
구- 원래는 병행이었다. 처음에 사무실을 알아보는데 마땅한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비어랩 총회를 앞두고 벨기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혹시라도 비즈니스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연락할게.’라고 가볍게 던져 놓고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우연히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된 거다. 그래서 비어랩과 KnR을 같이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2-3개월 정도 준비를 하다 보니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충섭 대표가 한 번 갔다 온 뒤 제가 두 번째로 다녀오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더 이상 회사에 다닐 필요가 없다
고 판단해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준비하면서 2014년 12월 사업자를 내게 되었다.
구 주류업무를 하려면 사무실 등록지가 필요한데, 우연히도 비어랩 자리를 구할 때 거기에 딸린 작은 사무실을 그냥 준다고 해서 비어랩과 KnR을 같이 시작할 수 있었다.
비어랩 협동조합과 수입사의 공존
Q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공방이 사무실이 붙어 있어 관리하기 좋을 것 같다.
구- 공방 자체가 손이 가는 것에 비해 수익성이 좋지 않지만, 사무실이 붙어 있어 관리에 좋은 점이 있다. 낮에는 우리가 공방을 관리하고, 저녁 시간에는 납품하러 가거나 보리마루로 간다. 뒷정리는 비어랩 협동조합 조합원분들이 해주신다.
초기 조합원은 우리 둘을 포함해서 20명 중 6명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새로운 분들이 가입하셔서 현재 20명의 조합원이 있다.
이- 협동조합의 특징인 것 같다. 처음에 관심이 있어서 가입했다가 자연스럽게 관심이 적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유입된다. 비어랩이 맥주라는 주제로 매개체가 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보리마루 역시 조합원이 공유할만한 펍이 필요할 것 같아서 2차 산업으로 시작한 것이다. 조합 운영 초기에는 주인이 없어서 어려운 점들이 있었는데, 최근 때마침 맡아줄 조합원분이 생겨 지분을 넘겨드렸고 그분이 운영을 맡고 계신다.
Q결과적으로는 비어랩과 KnR로 출발하여 보리마루는 2차 산업이 된 것인가?
구- KnR의 직영점 형식으로 맥주를 공급하는 동시에 비어랩 조합원만이 드나들 수 있는 창구로 보리마루가 시작됐다. 이후 2-3개 정도 지점이 생기고 나면, 작은 규모의 브루어리를 차리고 싶어 하는 조합원이 있으면 함께 브루어리를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사실, 3년 전부터 양조장을 차리자는 조합원도 있는데 리스크가 크다 보니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보리마루라는 펍이 있고, 두세 개 정도가 되면 맥주를 받아줄 곳이 있으니 그때는 브루어리를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수입사 역시 다양한 맥주를 수입하다 보면 재고 부담이 크다. KnR의 맥주를 비어랩과 보리마루에 나누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재고 부담을 줄이고 있다. 한편으로 수입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신제품 정보에 있어 아무래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이- 우리 사업 시스템이 혁신적이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저 탄탄하게 단계를 밟아가면서 조심스럽게 키워가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모인 조합원들이 새롭게 맥주 비즈니스를 시작하고자 할 때, 위험이 적도록 여러 가지를 도와드리려고 한다.
구- 수입사는 재고 문제가 있다. 소비할 수 있는 판매처가 없다. 예를 들어 라벨 불량 같은 문제가 있을때 보리마루에서 할인하여 원가로 판매하면 최소한의 현금 회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수입사, 공방, 펍 - 어려운점이 있다면?
Q지금 하는 세 가지 일 중에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무엇인가?
구- 셋 중에 쉬운 것은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은 보리마루다. 초기에 매니저를 두고 운영을 했는데 손익 관리가 안 돼서 힘들었다. 주인이 없다 보니 관리가 안되고, 그러다 보니 인력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인력이 빠졌을 때 사무실에 있다가 쫓겨나가 서브를 하기도 했다. 계획했던 것 외에 부수적인 문제가 많았던 곳이 보리마루였다. 이 부분을 깨닫는데도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제는 안정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 KnR이라는 수입사와 비어랩이라는 공방으로 시작해서 새로운 일이 시작되다 보니 시행착오나 마찰이 많을 수밖에 없던 것 같다. 아마 다른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또 같은 문제에 부딪 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이제는 다른 사업을 할 경우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확실히 시행착오가 중요한 것 같다. 첫 사업부터 시행착오를 거치며 노하우가 쌓였다. 다음에 조합원 중 누군가 어떤 사업을 한다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Q장 수입사를 하면서 어떤 점이 힘든가? 그리고 처음에 힘들었던 점과 지금 힘든 점이 같은가?
이- 처음에는 맥주 시장을 모르는 상황에서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했는데, 지금은 쏟아져 들어오는 맥주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힘든 점이다. 그만큼 시장의 구도가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맥주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매달 들어오는 흔한 맥주 중 하나가 되면 안 되지 않나. 다품종 소량 수입을 하다 보니 재고 부담이 엄청나지는 않지만, 종류가 다양해서 우리 제품간에도 경쟁이 일어난다.
장- 일반적으로 조합을 생각하면 생협(생활협동조합)과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조합을 통해 맥주 비즈니스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대단히 신선했다. 지금 하는 일에서 조합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
구- 2014년 시작한 조합이 이제 4년 차다. 제가 생각하는 조합은 본래 맥주를 매개체로 맥주 문화를 만들어가고, 좋은 사람을 불러들여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헤드쿼터다. 맥주 하나로, 맥주를 좋아해서 모이다 보니 시너지가 크다.
이- 여러 사람이 자기 일이 있지만 하나의 재미를 위해 모이는 장소라는 점에서 비어랩은 스케이트장 같은 느낌이다. 저 역시도 KnR이라는 맥주 수입업을 하는 동시에 비어랩 조합원 중 한 명이다. 목적과 생각, 하고 싶은 것이 각자 다른 사람들이 맥주라는 매개체로 모여서 내는 시너지가 크다고 본다.
Q 비어랩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구- 이제 설립 4년 차인데 처음 2년은 열정페이였다. 무조건 조합원들이 그 공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열정으로 근무한 것인데 그러다 보니 근무하는 사람만 힘들었다. 지금은 조합원 배당을 근무비로 바꾼 시스템이 정착되어 조합원들은 근무하면서 불만이 줄어들고 조합은 여력이 늘어나는 등 안정화 되었다.
Q 비어랩에 오는 사람들은 초기에 비해 많이 달라졌나?
구- 계속 바뀐다. 맥주를 양조하는 사람들은 꾸준하지 않다. 꾸준히 하는 분들은 이미 양조사가 되었다. 양조 강의를 들었던 분들이 한동안 꾸준히 오다가 또 사람이 바뀌고 한다.
이 접근성 문제인 것 같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양조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열어뒀다면 지금은 원데이 클래스 같은 수업을 통해 오는 분들이 많다. 그러면서 시장이 점차 커지는 것을 느낀다.
맥주와 관련된 직업의 매력
맥주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 맥주만의 매력에 빠져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 두 사람은 맥주와 관련한 수입업, 공방 겸 보틀샵, 펍 세 가지나 되는 일을 하고 있다. 각각이 이들에게 직업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을까?
Q 맥주를 수입하는 것이 직업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나?
구- 아내가 디자이너인데, 디자이너는 모든 제품을 기획하고, 상상해서 만들고 팔아야 한다.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양조사
가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 품질관리인데, 수입사는 맛보고 평가하고 선택을 하면 된다는 점에서 제일 부러워하고, 스스로 제일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 새로운 맥주를 선택하면서 이제까지 못 마셔본 맥주를 맛보고 고르는 순간이 너무 재미있고 좋다.
구- 제일 두려운 것은 국내 맥주의 품질이 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종 뒤퐁을 예로 들자면, 그만큼의 품질을 만들어내는 세종이 국내에 있다면 위험한 것 아닌가.
Q 그렇다면 비어랩과 보리마루는 직업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나?
구- 공방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고 생산적이지 못하다. 혼자 공방을 연다면 절대 반대다. 비어랩은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에 서로 시간을 나누면서 운영할 수 있지만, 개인이 한다면 매우 힘들다. 보리마루는 초기에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썼다. 많은 분이 음식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식에 신경 쓸수록 인건비도 많이 들어가고, 관리도 힘들었다. 음식을 포기하는 데 1년이 걸렸다. 맥주에 올인하니 수익성도 개선이 되었다.
이- 펍 특성마다 다른 것 같다. 워낙 매니악한 맥주를 다루는 곳이다 보니 보리마루에 오는 손님들도 맥주에 집중하고, 음식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스로 음식을 제어할 만한 능력이 안 되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를 못 했고, 이 부분을 포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맥주에 대한 이해가 맥주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있게 만든다
Q 두 사람 모두 다른 일을 하다가 맥주 시장으로 왔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맥주에 대한 이해를 높인 다음 맥주 관련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맥주와 관련된 어떤 일이건 맥주와 맥주 재료 등에 관한 세세한 이해가 중요한 것 같다. 막연하게 맥주 관련 일을 꿈꾸는 것은 실패 확률이 너무 높다. 비어랩 협동조합을 예로 들면, 취미로 맥주를 마시다가 맥주를 만들고 이후 조합에 가입하고 펍을 여는 등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Q 지금의 맥주 시장이 공급 주도의 시장인 면도 있는 것 같다.
구- 맥주 수입업은 이 맥주가 시장에서 통용될 것인가에 대한 트렌드 예측 혹은 맥주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의 맥주 시장에선 신제품이 인기가 많지만, 다시 들여왔을 때 인기가 급격히 줄어든다. 그런 면을 고려해야 한다. 보틀샵, 펍, 공방 같은 곳은 무엇보다 맥주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Q 이제 자영업 4년 차다. 4년 차 자영업자로서 맥주는 매력적인가?
이- 분명히 매력은 있다. 엄청나게 다양한 맛과 폭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정말 재미있는데 사업성에서는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가시가 삐죽 나온 장미 같은 느낌이다.
구- 맥주를 좋아하지만, 업자로서 겪는 경험이 호기심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종류의 맥주를 마시고, 최고의 품질을 지닌 맥주를 주로 마시다 보니 맥주를 좋아하는 맥덕으로서 호기심이 줄어드는 것 같다. 좋은 맥주를 찾기보다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면서, 경험치를 쌓기 위한 호기심은 줄어드는 느낌이다. 정말 좋은 맥주가 아니라면 찾아 마시는 일이 줄어들었다. 맥덕으로서의 삶은 끝난 것 같다.
맥주는 다채롭다. 다양한 맛과 스타일이 있고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 매력에 빠져 맥주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도, 이미 직업으로 삼은 사람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도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그 직업은 최고의 직업이지 않을까? 어쩌면 구충섭·이선재 두 대표는 자신이 가장 재미를 느끼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을 만난 것 같았다.